캠핑놀이 에피소드
9월 가을 어느 주말 캠핑 이야기다.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의 캠핑장. 하지만 그날은 4시간 걸려 캠핑장에 도착했다.
연휴가 껴서 캠핑장 예약도 어려웠던 걸 생각하면 4시간 걸려 캠핑하러 올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보조석에 앉아 신랑을 보좌(?)하다 어느 순간 졸음을 참지 못하고 쿨쿨 잤다.
운전자인 신랑은 잠이 와도 잘 수 없다.
오후 2시 가까이 도착한 캠핑장. 이미 많은 사람은 도착해서 텐트 치고, 고기 구워 먹고 술 마시는 캠퍼도 보였다. 복잡 복잡... 캠핑을 좋아하지만 복잡한 캠핑은 내 스타일 아니다.
가장자리, 조용한 자리를 선택한다.
하지만, 여기 캠핑장은 '선착순'이다. 이미 선착순에서 밀려 '남아 있는 자리'에서 고를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캠핑장은 넓었다. 계곡 바로 앞자리로 소개해 주셨고, 이미 양쪽에는 캠핑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 자리다. 넓고, 앞에 물도 흐르고 좋았지만 이상하게도 소개해 준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자리 없냐고 물었다. 캠핑장 끝쪽으로 조용한 자리가 몇 군데 있다고 소개해 주셨다.
맨 가장자리였고, 옆 사이트분들은 루프탑 텐트(차 위에 올리는 텐트)로 캠핑을 하고 있어서 자리가 여유로워 보였고 마음에 들었다.
늦게 도착한 만큼 빠르게 텐트 치고 준비했다. 내가 텐트 안을 정리하는 동안 늦은 점심을 위해 신랑이 오늘의 메뉴인 바지락 칼국수 육수를 끊이고 있겠다고 했다. 각자 맡은 일을 일사천리로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준비를 부랴부랴 마치고, 테이블에 앉아 칼국수를 먹으려는데...
신랑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 속상한 얼굴이다. 어라 상하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열심히 텐트 준비하고, 식사 준비 잘 되고 있냐고 물어가며 각자 할 일을 잘했던 것 같은데...
오빠 표정은 왜 그런 걸까? "오빠 무슨 일 있어? 힘들어?" 하며 물어보면 될 텐데...
나도 이상하게 신랑의 얼굴을 보는데 괜히 짜증이 밀려왔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래! 하는 마음만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맛없는 바지락 칼국수'를 먹었다.
괜히 신경질이 났다. 마음 알아주는 '한 마디'를 전하면 되는데, 알고 있으면서도 힘들게 왔는데 이게 뭐야~ 하는 마음에 안 좋은 감정만 가득 품고 있었다. 상황의 크기와는 다르게 마음의 크기는 더 깊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식사 후 함께 계획했던 놀이를 하자고 졸랐다. 엄마 아빠가 어떤지도 모르고...
그래도 아이들과는 놀아야지 하는 마음에 놀거리를 꺼내서 함께 준비했다.
신랑은 설거지를 하러 가며 자연스레 자리를 피했다.
아이들과 준비해 온 놀이를 꺼내어 최대한 안 좋은 감정은 잊으려 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참 대단하다. 아빠가 속상한 이 상황에도 나는 아이들과 놀이를 했으니...
내 모습이 웃기기도 했지만 그냥 내 할 일을 했다.
아빠가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음을 알고 있는 딸은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담아 클레이로 만들었다.
아빠의 마음을 녹여 줄 선물을 만들었다. 아이의 마음은 나 보다 낫다.
그렇게 놀이가 마무리되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온 아빠를 보며 아이는 계곡으로 이동해서 놀자고 한다.
"애들이 계곡으로 놀러 가자는데?"라고 말을 걸었다. 말없이 조용히 따라오는 신랑.
아래로 내려가니 계곡으로 가는 길이 나왔는데, 건너가는 길이 영... 불편했다.
물을 건너 반대편으로 가야 놀 수 있는 구조였다. 그냥 돌아가자고 말했다.
무슨 이런 구조로 되어 있냐며 툴툴... 신랑과 사이가 이러니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이 깊지는 않았지만 가을이라 아이들과 나는 운동화였고, 신랑만 크록스였다.
신랑은 안아서 옮겨 주겠다고 한다. 아이를 하나 둘 옮기고, 나도 평소 같으면 품에 안겨 넘어갔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태. 여기서 구경하고 있겠다고 했다.
신랑이 얼른 오라고 재촉했다. 나를 번쩍 안아 반대편으로 옮겨 주었다.
자연스레 신랑에게 안겨 옮겨졌고, 웃음이 났다. 서로의 모습이 웃겼다.
우리의 마음은 사소한 것에 속상하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풀려 나갔다.
신랑은 생각보다 힘들게 도착했는데, 운전하느라 고생했을 자신은 뒤로 한 채. 힘들게 예약한 캠핑장 자리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식사 준비도 재촉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신랑은 늘 나를 즐겁게 해 주려고 노력했는데, 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고생한 마음도 몰라주니 더 속상했을 것이다.
"운전하느라 고생했지?" 이 한 마디가 그날은 알면서도 그렇게도 어려웠을까?
평소와 달랐던 알 수 없는 그날의 기분.
다른 어떤 큰 것을 주기보다 마음을 알아주는 한 마디가 필요했을 텐데 말이다.
종종 그 한마디가 어려워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기도 한다.
엄마, 아빠 싸워도 아이들은 놀아야죠?
딸의 편지를 고이 운전석 위에 모셔둔 아빠.
비운의 수제 클레이 만들기 아니! 행운의 수제 클레이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