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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007) 병든 할아버지의 식사 당번이 된 10살 아이

by 우상권

10살이 된 해에 우리 집에 또 다른 식구가 늘어났다. 할아버지께서 우리집에 함께 살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여느 때와 같이 가족회의를 소집하셨고 한 이불에 모두 모여 손을 붙잡고 이야기 하셨다. 현재 작은 아버지 집에 계시는 할아버지를 우리 집에 모시고 온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는 우리 4남매에 외삼촌까지 함께 지냈던 터라 할아버지가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우리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4남매가 지내기에도 너무나 작은 집이었지만 노총각 외삼촌에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까지 우린 어느 날 갑자기 7식구가 되었고 어머니께서는 7명의 의식주를 책임 지셔야 했다. 외삼촌은 직장인이라 집에서 잠만 자는 수준 이었지만 우리 4남매와 할아버지의 의식주는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었다. 식당일을 다니시던 어머니께서는 늘 남들보다 좀 더 늦은 시간동안 일을 돕다 퇴근하셨다. 혹시나 직장을 잃을까봐 조마한 마음으로 그렇게라도 식당주인의 눈도장을 얻고 싶었던 것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집으로 오신다는 소식에 형과 함께 잠자던 방을 비우고 할아버지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할아버지께서 작은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다음날 아주 오랜만에 어머니께서 서럽게 우시는 장면을 목격했다. 할아버지께서 옷에다 대변을 누신 것이다. 할아버지는 중풍이 심해져서 대소변을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지금에도 생각을 해보면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인데 너무나 불편한 관계가 아닌가? 대변을 옷에 누셨고 그것을 치울 수 있는 사람은 상황 상 오직 어머니 뿐이셨다.

아침마다 전쟁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어린 우리 4남매에게 차마 그 일을 시키지 못했고 외삼촌은 할아버지와는 그냥 남처럼 먼 관계라 기저귀를 갈아내는 일에 참여할 수도 없었고 오직 어머니만 그 일을 해야만 했다.

아침마다 기저귀를 갈고 대소변이 묻은 기저귀를 밖의 베란다구석에 두었다. 아직도 베란다에 베 겨진 시큰한 냄새가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께서 오시고 우리4남매는 저마다 분명한 역할이 생겨났다. 누나 둘은 집안 빨래와 청소 그리고 설거지 담당이었다. 형은 할아버지의 몸을 닦아내고 면도 그리고 주말이면 목욕을 시키는 담당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할아버지의 점심을 책임 져야 했다. 그 당시 나의 나이는 10살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어머니께서 밥솥에 넣어둔 반찬을 꺼내고 밥을 퍼서 할아버지 방에 갔다드리고 앉을 수 있게 일으켜드리는 것이 나의 담당이었다. 그리고 식사를 다하시면 밥상을 치우고 할아버지께서 다시 눕는 것을 도와드렸다. 학교를 마치면 나는 항상 곧장 집으로 향해야 했다. 한번은 친구들이 조금만 놀다가 가자고 해서 그 유혹에 참지 못하고 잠시 놀다가 집에 들어갔는데 할아버지께서 점심을 못 드시고 굶주리고 계셨다. 그 당시 나만 알고 넘어갔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할아버지께 참 죄송한 일이었다. 누구의 부축을 받지 못하면 일어나지도 눕지도 못하지는 분인데 내가 잠시 놀고 싶은 마음에 할아버지를 굶게 만든 것이었다. 이렇게 나는 10살의 하루 종일 뛰어놀고 싶은 어린 나이지만,

또한 부모님의 사랑을 한참 받을 나이었지만 나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아버지의 아버지에 식사를 책임 져야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 친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를 마치면 늘 집으로 향해야 했던 나에게는 함께 놀아줄 친구가 없게 되었다. 한번은 여느 때처럼 할아버지께서 영호(집에서 부르는 나의 이름)야~ 영호야~라고 부르는 할아버지 소리에 나도 그날만큼은 할아버지가 미웠는지 방에서 꿈적도 하지 않았다. 집안에는 할아버지와 나 둘만 있었고 그날은 할아버지의 그 어떤 부탁도 들어주고 싶지가 않았다. 많이 급하셨는지 계속해서 할아버지는 영호야~ 영호야~ 목이 쉬어가며 나를 애타게 부르셨고 나는 끝내 고집을 내려놓고 할아버지께 가니 기저귀에 대변을 보신 것이다. 화장실에 가시고 싶어 나를 애타게 불렀지만 그날은.. 그날 만큼은 할아버지를 도와드리고 싶지 않았나보다. 그렇게 그날 처음으로 할아버지 지저귀를 갈아 보았다. 그리고 손을 씻는데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큰방에 들어가 큰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껴 울었다. 할아버지께 들릴 정도로 소리 내어 울었다. 그리고 10살의 나이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생에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으면 또다시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삶을 사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살 나이에 할 수가 없는 생각이지만 그 당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울어서인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형이 학교에서 맨 처음 돌아왔고 나의 눈을 보고는 나의 이야기를 차근히 들어주었다. 형은 나에게 앞으로는 할아버지 식사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며 그날이후로는 할아버지의 화장실과 기저귀까지도 형이 섬세하게 점검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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