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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008) 방황의 시작

by 우상권

나는 12살이 되었다. 할아버지 식사를 챙겨드리고는 곧장 밖으로 나와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냥 집이 싫었다. 할아버지께서 나를 부르는 소리도 싫었고 가난한 집도 싫었고 모든 것이 싫었다. 어쩌면 사춘기의 시작이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학교를 가는 내내 다른 길로 새고 싶었고 조금 마음에 안 드는 친구나 형들이 있으면 주먹부터 휘두르며 세상모든 것과 맞서 싸운 것 같다. 그냥 이유 없이 삐뚤어지고 싶었다. 담배를 배우기시작하고 친구들과 동네 오락실에서 이유 없이 시간을 때우며 지냈다. 해가 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집에 들어오면 늘 내가 잘못한 것이 한두 가지가 있었기에 우리 집 주택옥상으로 올라가 형에게 회초리를 맞았다. 그 당시 정말 겁이 없던 때라 두세 살 위의 나이는 정말이지 1초의 고민도 없이 달려들었던 때라 형이 회초리를 들면 형에게 달려들 만도 했겠지만 차마 그러지는 않았다. 형에게 까지 달려들면 나는 정말 쓰레기 같은 인간인 것만 같았고 형은 나에게는 아버지와 같아서 차마 작은 원망이나 달려드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매일같이 형이 명령하는 대로 옥상바닥에 업 드려 맞을 자세를 잡았고 내가 잘못한 것을 복명복창하고 회초리를 맞았다. 그리고 형은 먼저 집으로 내려갔고 나는 한참이나 옥상에 있던 안테나를 고정하기위한 시멘트 돌덩이에 걸터앉아서 하늘을 쳐다 보다 내려왔다. 어느 날 하루는 그날도 여김 없이 형이 나를 옥상으로 불렀고 나에게 눈물을 보이며 물어봤다. 형이 나의 숙제 노트를 점검하다 내가 적은 것을 본 것이었다. 부모님의 직업을 적는 란 이 있었는데 나는 그 당시 아버지 없는 것이 창피스럽고 해서 공장에 다닌다고 적었다. 형은 눈물을 보이며 형 자신도 그런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시절 부모님의 직업이 뭐가 그리 중요한 것 이였는지 새 학기만 들어가면 집안 호구조사를 하는데 부모님의 직업을 꼭 물어 적었고 아버지 없는 사람, 엄마가 없는 사람은 손을 들게 했다. 매번 아버지가 없는 사람에 손을 들고는 친구들이 놀려댔고 창피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형은 자신도 그런 적이 있는데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었고 그날만큼은 회초리를 들지 않았다. 형은 그 당시 중학교3학년 전체 학생 중 공부를 제일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형과 함께 자는 작은 방에는 형이 받아온 성적 우수상으로 벽에 도배가 되었고 나의 상장은 단하나 달리기 상장뿐 이었다.

나의 방황은 계속되었고 6학년이 되자 더욱 겁이 없이 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동네에 옷을 훔치러 다니기도 해보았고 동네 깡패 형들과 어울려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나쁜 짓을 하기도 했다. 한번은 학교수업을 하는 중에 학교선생님께서 나를 앞으로 나오라고 소리치시고는 수업 중에 떠드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혼을 내시고 회초리로 손바닥을 수없이 내리치셨다. 그날은 지금도 억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떠든 적이 없었고 옆자리 앉은 친구가 웃으며 떠들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나로 오해를 하신 것이다. 분명 내가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선생님의 마음은 더욱 완강히 나를 혼내셨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할아버지 밥을 차려드리고 방에 누워있는데 억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학교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 문은 단단히 잠겨있었고 들어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다가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 담임선생님책상을 넘어뜨리고 부셔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학교로 향했고 담임선생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확신에 찬 눈으로 나를 교무실로 데려가 부셔진 책상을 보여주면 추긍 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고 다음날 어머니께서는 또다시 선생님께 불려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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