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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숨기지 않을 겁니다

by 무명독자

저는 글을 쓰는 걸 숨기며 지내왔습니다.

지인들도 모르고, 심지어 친구들도 모릅니다.

아는 사람이 가족을 제외하곤 같이 일하는 사서 선생님 한 분 밖에 없네요.

(사실 인간관계 매우 좁아서 말할 사람도 없습니다ㅋ)


가끔 지인들이 제게 안부를 물으면

'그냥 똑같죠,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같이 상투적으로 대답을 합니다.

'저 요새 글 쓰면서 지내요!' 하며 기분 좋게 말하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여전히 더웠던 7월 31일.

복지관 팀장님께서 잠시 할 얘기가 있다며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00님! 잠시 얘기 좀..^^"

"넵!"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시며 하신 말씀이,

"8월 직원 전체회의 때 발표 한 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제가 왜 발표를.."


잠시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복지관 직원이 아닌 장애인 일자리 시간제로 참여하고 있는 장애인입니다.

쉽게 말해, 복지관 안에 있는 도서관에서 4시간 동안 일하는 시간제 아르바이트생이죠.


이런 제가 무슨 발표를, 심지어 직원 전체회의 때..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와 독서모임에 대한 얘기를 해주시면 됩니다!”

(작년 이맘때부터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도 하고 있습니다.)


"하핳.. 발표라는 단어가 엄청 부담되네요."

라고 대답 하자마자, 같이 계셨던 사서선생님이,

"00님!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글도 잘 쓰잖아요! 브런치스토리 작가잖아요!"


사서쌤..ㅠ


“아 진짜요? 저 그거 알아요! 카카오에서 하고 있는 거잖아요. 거기서 글 자주 읽어요. 아 그럼! 이 얘기도 같이 하시면 정말 좋을 거 같은데.. “


"작가 얘기는 좀 쑥스러운데요.."

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습니다.

발표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제 글을 복지관 직원분들께 소개를 한다는 사실이 설레기도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작가 얘기까지 준비 잘해올게요!”


이후 글쓰기와 작가를 주제로 대화를 더 이어 나갔습니다. 팀장님과 사서 선생님 모두 진심으로 제 얘기를 경청해 주시고, 존중해 주시는 게 느껴져서 속으로 너무 감동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슬펐습니다. 만약, 내 지인들이랑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한다면 이분들처럼 진심으로 응원해 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건설적인 대화에 막힌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15분간의 짧은 대화였지만, 신기하게도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이 치유해 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느낌, 꽤나 달콤하네요ㅎㅎ




발표 당일.


회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팀장님과 사서 선생님께서 긴장하지 말라며 독려를 해주셨지만, 이미 머릿속은 하얘졌습니다.


제 이름이 불려졌고, 복지관 직원분들의 박수와 함께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정형화된 분위기 속 발표가 아닌, 사람들 눈을 보며 대화하듯 자연스러운 발표를 지향했습니다. 뜻대로 잘 마무리한 거 같아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는 거짓말이고 그냥 망했습니다.

발표가 부끄러운 테토남 호소인ㅋ

“저는.. 솰라솰라 블라블라 어리바리..”


아이고..(긁적)

100%를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10% 밖에 못 보여드린 거 같아 너~무 아쉬웠습니다.


발표가 많이 부족했음에도 끝까지 경청해 주신 모든 복지관 직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날의 용기를 기억하고, 앞으로 저는 글을 쓰며 지내는 걸 숨기지 않을 겁니다!



사진 찍어주신 복지관 체육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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