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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를 통해 얻은 돈의 가치

by 무명독자
18살.


이때 당시에 저는 한 달 용돈으로 7만 원, 설거지 한 번 하면 500원씩 받았습니다.

7만 원+몇 천 원으로 버스비 하고, 학교 매점에서 가나파이 사 먹고, 가끔 김밥천국에서 떡라면 사 먹고 남은 돈은 저금했습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모았던 돈과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받은 세뱃돈까지 해서 총 80만 원이라는 거금을 모았습니다.


TMI - 저는 고등학생 때 단 한 번도 PC방에 가본 적이 없는, 게임에 흥미가 없는 ‘노잼’ 학생이었습니다.

PC방 비용, 유료 아이템비용에 쓸 일이 없으니 돈이 생각보다 잘 모아졌죠. 제가 지금까지 가장 열심히 했던 게임은 중학생 때 서든어택과 고등학생 때 아이폰 4s로 했던 앵그리버드입니다..ㅋ


“와 미쳤다. 이 돈이면 반스 슬립온 깔 별로 사고도 남는 돈이잖아!? “

학생인데도 불구하고 큰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이 든든한 마음 그대로 두 달쯤 지났을까요?

갑자기 저희 집에 큰돈 나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발작견이었던 빼찌(강아지) 상태가 심각해져 MRI를 찍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고민했습니다.


“모은 돈 다 드릴까? “

….

“저 결혼할 때 주세요.”

온갖 쿨한 척 시크한 척은 다하며 빼찌 치료비에 보태 쓰시라고 80만 원 전부 부모님께 드렸습니다.

이후 검사와 약물치료를 통해 빼찌의 건강은 많이 호전 됐지만, 제 주머니 건강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한순간에 ‘거지’가 됐죠. 생명을 살린 것에 대한 뿌듯한 마음과 모아둔 돈이 한순간에 사라져 허전해진 마음이 공존했었던 기억이 있네요.


19살.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만 들어도 신발장까지 달려오는 우리 빼찌. 밥 잘 먹고, 애교 부리고, 혀 내밀며 웃고 있는 건강한 빼찌를 바라보고 있으면 80만 원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1분 동안만요.

나머지 23시간 59분은 아까워했습니다..


1만 원 오른 용돈과, 20만 원가량의 세뱃돈으로는

큰돈이 사라져 허전해진 제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머니클립에 꽂혀있던 몇 장 안 되는 지폐를 바라보며 다짐했습니다. 알바를 해보자!


그저, 내 수중에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일념하나로 인터넷 구인사이트와 하교 후 ‘알바 구함’이 써져 있는 식당을 찾아다녔습니다.


TMI - 제가 다녔던 공업고등학교는 야간자율학습이 선택제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안 함’을 선택했죠..

그래서 하교 후에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고등학생 신분으로 알바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학업 성적이 아닌 알바를 못 구하는 과정에서 깨달았네요.. 하핳(머쓱)


“그래. 고등학생이 무슨 알바냐. 내가 사장이어도 고등학생 안 뽑는다.”

…….

“아냐. 마지막으로 좀만 더 구해보자.”


정말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학교 주변 골목에 위치한 쭈꾸미 식당에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갔습니다.

구인사이트에도 없었고 ‘알바 구함’이 붙어있지도 않은 식당이었는데 말이죠. 들어가니 사장님 부부 두 분께서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실례합니다!”

“어서 오세요~ 학생 혼자예요? “

“네 저 혼자인데.. 사장님 혹시, 알바 구하시나요?”

“우리 알바 안 구하는데?”

“저 그럼, 면접이라도 볼 수 있을까요?! “

아니..ㅋㅋ 저 때의 ‘나’야. 알바 안 구하신다잖아..


패기 넘치게 면접이라도 보게 해 달라는 저를 귀엽게 보셨는지, 사장님께서 웃으시며 대답하셨습니다.

“면접? 학생 재밌네^^”


이후에 학교는 어디 다니는지, 부모님 허락은 받았는지, 집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면접’을 통해 확인하셨습니다. 다음 날 저는 부모님 동의서와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들고 쭈꾸미 식당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갔습니다.

‘피 고용인’ 입장으로요!


그렇게 저는

하교 후, 한 달 동안 주 3회, 화/목/금 18시부터 22시까지 알바를 하게 됐습니다.


30분 일찍 와서 사장님 두 분과 식기류를 닦았고, 불 피워진 연탄을 나르고 치우는 일, 서빙과 계산, 이외 각종 허드렛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사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창피하지만.. 사장님께서 저 보고 “너 A급이다? 일 잘하네. “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대망의 월급날!

고생했다며, 한국인은 5의 배수를 좋아한다며 원래 월급에서 조금 더 주신 25만 원. 만 원짜리 지폐 25장을 두 손으로 받았을 때의 희열과 감격스러움. 아직도 생생합니다ㅎㅎ


검정 봉투 안에 담긴 연탄향 진하게 배인 쭈꾸미를 들고 탄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여태 부모님께, 어른들께 받아왔던 용돈과 세뱃돈은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이었구나.

1만 원을 벌려면 두 시간 넘게 연탄 나르고 서빙하고 테이블 닦고 치우고를 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네?

내가 모았던 80만 원은 사실 내 돈이 아니었네? 내가 번 돈으로 모은 게 아니니 아까워할 필요도 없었잖아?

집으로 가는 길에 항상 똑같게만 보였던 가로등 불빛이 나를 위해 비치는 것 같았던 그 느낌, 노동을 하고 난 후에 따뜻한 물로 땀을 씻겨 내릴 때의 그 느낌, 80만 원보다 25만 원이 더 값지게 느껴졌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월급 받고 중고 라코스테 카라티를 산 19살의 저..ㅋㅎ



추신.

“면접이라도 보게 해 달라는 말이 이쁘게 보여서 더 준 것도 있다?”하며 저를 안아 주셨던 여사장님. 제 이름을 부르고 등을 두 번 토닥여 주시며 커서 멋진 사람이 될 거라고 말씀해 주셨던 남사장님. 그날의 따뜻한 감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어린 저에게 돈의 가치를 몸소 느끼고 경험하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부디,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 하루를 보내고 계시길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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