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보다 강한 질문의 힘
아이들은 세상 모든 일들이 궁금하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모든 질문에 부모가 정확하게 답을 말하기란 쉽지 않다. 아이의 끝없는 질문에 자세하게 대답하는 것이 실제로 아이를 위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아이가 질문할 때, “글쎄, 엄마도 잘 모르겠는데, 우리 한 번 찾아볼까?” “엄마도 궁금한데, 네가 찾아보고 엄마한테도 알려줄래?” 이렇게 말해보자.
아이들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집중력과 문제 해결력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찾은 답을 부모에게 알려주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신감과 자존감이 생긴다. 넘을 수 없는 벽 같던 어른에게 자신이 이루어낸 성취를 알려주면서 아이는 한 뼘 더 자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강요당하는 것보다 질문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때 더 쉽게 받아들인다. 식당에서 아이가 소란스럽게 한다면, “네가 밥을 먹는데, 옆에서 소란스럽게 떠들고 뛰어다니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해라. 아이가 신발을 신은 채 지하철 의자 위로 올라가려고 하면 “사람들이 앉아야 하는 지하철 의자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라고 질문해라.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무조건 야단치고 혼을 내면, 그 순간은 부모의 말을 듣지만, 부모나 다른 어른이 없을 때는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강압에 의한 타율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밥을 먹기 싫어하는 아이가 “밥은 왜 매일 먹어야 해요?”라고 물으면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하지 말고, “밥을 안 먹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라고 되물어라. “왜 매일 이를 닦아야 해요?”라고 물을 때에도, 이를 닦아야 하는 이유를 끝없이 설명하지 말고 “이를 안 닦으면 어떻게 될까?”라고 되물어라. 아이들의 수많은 “왜?”라는 물음에 반대 질문으로 그들의 두뇌를 자극해라.
모든 질문에 꼬박꼬박 성실하게 대답해주는 부모보다 아이의 질문에 질문으로 응답한 부모의 아이들이 더 창의적일 수밖에 없다. 남에게 들은 이야기는 오래 기억되지 않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해서 찾은 답은 나의 확고한 지식으로 남게 된다. 친절하게 질문에 척척 대답해 주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사실은 아이의 생각하는 힘을 억제하는 셈이다.
아이에게 매번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아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일일이 미주알고주알 대답해 주는 더 솔직한 이유는 대답을 통해 아이들을 더 많이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잘 모를 때는 아이에게 먼저 물어라. 사람들은 보통 아이보다 어른이 세상일을 더 많이, 더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답도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달을 목걸이로 갖고 싶은 공주가 있었다. 공주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수많은 학자, 전문가들이 달을 어떻게 가져올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어릿광대가 공주에게 묻는다.
‘달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얼마나 멀리 있는지’. 공주는 달이 노란색이니까 ’당연히 금으로 만들어졌고’, 언제나 창밖 나뭇가지 위에 걸려 있으니까 ‘아주 가깝다’고 말한다.
금으로 만든 달 목걸이를 선물 받은 공주는 기뻐하는데, 밤이 되어 달이 떠오를 무렵이 되자, 무슨 일이 생길지 걱정이 된 대신들은 또 고민을 한다. 역시 어릿광대가 다시 공주에게 묻는다. 공주는 뭐라고 답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