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욕심이 아이의 뇌를 망친다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아래층에 이사 온 집에는 같은 학년 여자아이가 있었다. 길에서 마주치면 순한 표정으로 배시시 웃던 아이였다. 어느 늦은 밤,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12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사람들이 잠든 한밤중에 아이에게 받아쓰기 연습을 시키느라 지르는 소리였다. 그러다가 때로는 이를 악 물고 내뱉는 듯한 목소리도 들렸는데, 어른인 내가 듣기에도 오싹할 정도였다. 직장 다니느라 본인도 피곤했을 텐데,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잠도 안 자고 받아쓰기 연습을 시키다니...... 비슷한 일이 그 후로도 몇 차례 되풀이 되었다.
아이들 두뇌 발달의 상당 부분은 취침 중에 이루어진다. 기억을 담당하는 뇌 속의 해마는 잠자는 동안에 활성화되어, 오늘의 경험 중 인상 깊었던 순간을 반복적으로 추체험하면서 지식을 만들어낸다. 그러기 때문에 밤에 잠을 충분히 자야 낮에 배운 지식이 정리되고 통합되면서 온전히 내면화된다. 그러므로 두뇌 발달이 급격하게 일어나는 어린 나이일수록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이 풀리지 않는 어려운 일 때문에 고민하다가 잠을 잔 후에 오히려 좋은 해결 방법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아티스트나 디자이너, 학자들 중에는 “생각이 막히면 잠을 청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신기하게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또한 뇌는 잠자는 동안 필요 없는 기억을 지움으로써 다음날 새로운 정보가 원활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는다. 따라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이러한 ‘청소’가 이뤄지지 않아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 힘들고 두뇌 회전도 느려진다.
게다가 천문학적인 양의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뇌는 손상될 확률이 높아 신속히 수리되지 않으면 정보가 왜곡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망가진 신경세포들은 뇌가 쉴 새 없이 사용되는 낮보다는 밤에 수리하는 게 안전하다. 그래서 밤에 충분히 잠을 자야 뇌를 온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어렸을 적의 밤샘 공부야말로 뇌 과학적으로 볼 때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수면 시간이 1시간 줄어들 때마다 지능 검사 점수가 평균 7점 하락했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몸의 성장도 자는 동안에 이루어진다.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키고 해마를 활성화시키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량이 절정을 이루는 때가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이다. 그래서 아이의 몸을 성장시키고 머리를 좋아지게 하려면 그 시간에는 반드시 잠을 재워야 한다.
그 시간에 아이를 재우기로 계획했다면, 적어도 잠들기 한 시간 전에는 게임이나 컴퓨터, 자극적인 방송 같은 전자적 시각 자극을 차단해야 한다. 이러한 시각 자극들은 차단 후에도 한동안 뇌하수체에 잔상이 남아서 뇌를 흥분시킨다. 그런 상태에서는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가만히 누워 있다 보면 체온이 조금씩 낮아지면서 신진대사가 느려지고 서서히 잠들게 되므로 정해진 시간이 되면 일단 자리에 눕도록 습관을 들여야 한다.
아이의 뇌를 발달시키고 싶다면, 부모는 아이에게 좋은 수면 습관이 생기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밤늦도록 받아쓰기 공부에 시달리던 그 아이는 다음날 시험을 잘 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