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게 없는 듯하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27쪽)
대개 드라마는 사랑이 시작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끝을 맺는다. 썸 타는 주인공들, 서로의 마음을 오해하여 멀어지는 두 사람, 하지만 서로를 그리워하는 그와 그녀, 그리고는 마침내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나면 드라마는 급격하게 마무리 된다. 그 후로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클리셰의 반복이다. 진부하지만 낭만적이다. 그래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이야기 전개 방식이 아닐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랑을 확인하고 난 이후, 연애보다 훨씬 오랜 시간동안 더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사랑으로 인해 모든 것이 용납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나의 오만함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10년 연애를 하고도, 결혼하니 딴 사람 같다는 그 말. 남의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라비와 커스틴은 사랑에 빠진다. 여느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행복과 우울의 모든 이유는 상대방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신으로 인해 세상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행복감을 맛보다가도, 당신으로 인해 세상 누구보다도 비참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어른인 척하지만 실은 아직도 어린시절의 그 상처에 머물러 있는 나의 불완전함을 그대라면 다 이해하고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 당신은 이 모든 것을 포용해 줄만큼 완전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 이러한 믿음과 확신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오해가 된다. 왜 날 이해해주지 못하는거지? 이제는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 건가? 그래, 마음이 떠났기 때문에 예전처럼 날 받아주지 못 하는거야. 그게 아니라면 다른 무슨 이유가 있겠어?
'우리 눈에 정상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아직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 뿐이다. 사랑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236쪽)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는 내게 더이상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감정을 배제한 채, 눈 딱 감고 맞춰줄 수 있는 상사가 아니다. 오늘 보고나면 내일은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고객이 아니다. 완벽한 척, 아무 문제 없는 척 깔깔거리다 헤어지는 옆 집 이웃이 아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하나가 되기로 약속한 사이, 나의 분신과도 같은 아이의 보호자.
그렇기에 서로 많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그 과정에서 각자의 불완전함과 상처를 내보일 수밖에 없다. 내가 그를 알지 못하던 시절 속에서 그는 나와 다른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쌓아왔고, 오늘에 이르러 나는 도무지 그가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그렇게 이기적인지, 내 생각을 하긴 하는건가 싶지만, 알고보니 그의 선택의 이유 중 가장 우선순위가 나였다는 사실이 고통스럽다.
내가 그를 온전히 이해해줄 수 없다면, 나도 그에게서 완전히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내려놓아야 한다. 사랑은 낭만주의의 열정을 넘어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고, 모순 투성이인 서로를 아파도 감싸 안는 현실이다.
'그는 이제 거의 어떤 것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처럼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293쪽)
그렇다.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와 너무 다른 그 사람과 끝까지 살아낼 용기, 불안에 굴복하지 않고 사랑을 지켜내는 용기, 세상의 부주의함에 상처받더라도 주저앉지 않고 함께 나아갈 용기. 이젠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주는 것에 내 관심을 두기로 한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