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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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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앙다 Jul 10. 2021

10분의 여유가 주는 선물

우리는 인생의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약속이 있어 DMC역 근처에 가는 길이었다. 2호선을 타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가면, 약속 장소 바로 앞에서 내려준다. 이 길을 자주 다녀봤기 때문에, 약속시간에 딱 맞추어 길을 나섰다. 지하철 몇 번 칸에 타야 빨리 내리는 지도 알고 있을 정도니까. 홍대입구역 2번 출구로 나가 이전과 다름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간 그곳에는 공사장에나 있을 법한 접근금지 테이프가 정류장 전체에 마구 감겨 있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공사로 인해 잠시 기존 정류장을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임시 정류소로 옮겼다는 것이다. 날씨가 좋아 기분 좋게 걸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버스 도착시간이 임박해있었다. 조금 빨리 걷자. 종아리 근육이 뭉쳐지도록 빨리 걸었지만, 어느새 두 버스는 내 옆을 지나갔고, 저 앞에 있는 임시정류소에 미리 도착해있는 승객들을 태우고는 슝-


그 당시 홍대입구역의 상황. 초조해지는 마음, 빨라지는 발걸음, 멀기만 한 임시정류장의 기억.


결국 약속시간에는 5분 정도 지각을 했다. 여러 사람과의 약속이었기에 굉장히 민망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급히 오느라 가쁜 숨이 힘들었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꼭 그래야만 했냐, 서울시!라고 생각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좀 더 여유 있게 나올걸, 그러지 못한 나 자신만이 원망스러울 뿐, 다른 이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10분만 빨리 나와도 좋으련만, 점점 시간을 맞춰 나오는 습관이 생겼다. 애플리케이션이 버스 도착시간을 알려주니까, 지하철 정차 시간도 다 알고 있으니까, 내 시간을 최대한 허비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내비게이션도 갈수록 발달해서, 도로 교통상황까지 반영해서 도착시간을 알려주니 시간에 점점 더 각박해진다. 빨리 갈 필요 없잖아? 가서 기다리면 뭘 하겠어.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건 나의 교만이다. 인생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가 없다.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것처럼 시간을 계산하고 있다. 시간은 분명히  영역이 아니다. 내가 과거의 일에 다시 손댈  없듯이, 미래의 일도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현재만을 살아간다.


그다음 주, 다시 동일한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10분 여유 있게 나왔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이 내가 예측한 대로 지하철이 왔고, 버스도 내가 생각했던 그 임시정류소에 멈춰 나를 데려가 주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좀 남는다. 10 일찍 나왔는데, 15 넘는 시간이 남아버렸다. 마을버스 한 정거장을 남겨놓고 미리 내렸다. 날씨가 정말 좋아서, 따뜻하고, 바람 불고, 미세먼지도 없는 날이라서, 여유 있게 걷고 싶었다.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동네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차가 다니던 고가도로 아래 사람이 다니는 길에는 예쁜 꽃들이 조금씩, 여러 종류가 심겨 있었다. 사람들이 보인다. 한 아저씨는 카센터에 오래된 차를 가지고 와서 엔진오일을 교체했고, 사장님은 서비스로 칙- 칙- 차 위의 먼지도 털어주었다. 코로나인데, 동네 카페에 사람들이 참 많기도 많구나. 버스 정류장 사이가 이렇게 짧았나 생각하며, 좀 더 걷고 싶은 아쉬움을 안고 약속 장소에 들어간다.


10분의 여유는 내게 10분 그 이상의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현재를 누리는 기쁨이라는 선물을. 그래서 '현재'가 영어로 Present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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