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사랑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단 몇 분도 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오고 싶었던 회사에 취직했다.
4수만이었다.
이 회사에 입사한 것만으로도 날아갈 것 같았고,
회사 바로 근처로 다세대 주택에 월세를 내고 입주했다.
회사 바로 근처이기 때문에 몇 명의 입사 동기들이 나와 같은 건물에 입주했다.
다세대 주택은 4층짜리 건물에 세대 수는 많지 않은 낡은 빌라였고,
1층은 따스한 분위기에 카페 겸 저녁에는 술을 파는 바였다.
같은 건물에 사는 입사 동기들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1층에 모여 아침을 먹고, 저녁에 술을 한 잔 기울이게 되었다.
꼭 대학교 기숙사 같이 너무나 즐거운 일상이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원하던 회사에 취직도 해서 돈도 벌고, 아직 신입이라고 연수 기간이었기 때문에 우리끼리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아직 업무를 시작하지 않아 상사 스트레스, 성과를 내라는 압박에서도 자유로웠다.
꼭 대학교 신입생이 된것 같이 매일이 즐겁기만한 하루하루였다.
그럼에도 갈등은 있었다.
신입 연수는 조를 짜서 신규 프로젝트 기획안을 발표하는 것이었고,
나름 다 어디서 한따까리 하던 이들이니까 자아가 셌고, 주장이 부딪히는 일들은 많았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니까”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생각하는 우리 프로젝트는 이용자 패턴 분석이 먼저야”
우리는 새로운 어플리케이션 기획안을 제출하기로 했지만
우리들은 서로가 그리는 방향성이 달랐다.
‘진짜 안 맞는다‘
그를 보며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한 문장이었다.
진짜 안 맞았다. 그와는.
일 적인 면에서도 매번 사사건건 부딪혔고,
그럼에도 끝나고 다 같이 가지는 술 자리에서 그는 내가 기겁할 만한 얘기들만 늘어놓았다.
특히나, 20대 후반 30대 초반 또래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연애 얘기에 있어서는
가치관이 너무나 달랐다.
“나는 2주 썸타고 한달만에 사귀는 사람들 이해 안돼. 무조건 오래 보고 알던 사람이어야 그 사람을 잘 알고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아?”
나는 여기서 사귀는데 한 달이 걸리는 것도 길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무조건 많이 낳을거야. 첫째가 동생들 케어하고 도와주면 다 키울 수 있어. 오히려 형제가 많은게 좋아”
다자녀 첫 째인 나한테는 정말로 발작버튼 눌릴 얘기였다.
“오래 만났던 사람을 잊는데 1년은 걸렸던 것 같아. 그럼에도 안잊혀서 전국일주를 하기도 했지.”
왜 1년이나 걸린단 말인가, 헤어지면 빨리 다음 사람을 찾아나서야지.
이렇게나 안맞았던 그에게 연애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그도 나를 별종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안맞는다고 생각만 한게 아니라 사사건건 그와는 반대의 의견을 피력하며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으니까.
남들이 보면 둘이 싸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행히, 손절을 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싸움 아닌 싸움을 하고도 다음날이면 뒤끝이 길거나 그다지 생각이 많지 않던 그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을 걸었고,
나 또한 사사건건 부딪혔지만 이젠 그러려니 하게 되어 처음 일주일간 불편했던 그도 어쨌든 편한 동기 중 하나가 되었다.
집도 가깝고, 우리가 모이던 1층 아지트에서 그 날도 술을 마시며 젊은 또래가 모이듯 또 시끌벅적해졌다.
그날 오전부터 피곤해보이던 그는, 일찍 올라간다며 자리를 떴다.
그런데 왠걸, 가방을 두고 갔다.
타고나길 여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생각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가방은 애석하게도 내 눈에만 보였고, 선심쓰듯 그에게 가방을 갖다주러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와 같은 건물에 살고 있었고, 바로 몇층만 올라가면 그의 방이니까.
남자의 방에 들어간다는 자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그냥 동기 중 한 명이니까.
“오, 고마워. 아 맞다, 내가 키우는 화분 보고 갈래?”
그날 오전, 그는 안어울리게도 화분을 많이 키운다고 했고,
그 말은 들은 나는 “왠 화분? 진짜 안어울린다. 다 죽이는 거 아냐” 라며
여느 때와 같이 핀잔을 주고 받았었다.
그는 자신의 취미인 화분 키우기와
자신의 애완 화분들을 꼭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나 또한, 취기가 올랐고, 그 화분이 실재하는 것인지 봐야겠다는
장난기 섞인 마음이 들었다.
그의 방은 정돈되지 않은 평범한 방이었다.
물건이 좀 많았다.
그리고 물건들은 다 그의 것이었다.
당연히 그의 물건이니 그의 방에 있었겠지만,
그의 삶이 담긴 물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