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너저분한 방은
그의 삶을 담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의 삶이 내 삶에 들어온다고 했던가.
그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 그의 방에서,
그의 물건들은 그냥 물건이 아닌 나에게 생경한, 그의 삶을 나에게 통채로 쏟아부어 적시는 바다와 같았다.
그의 엄마가 출장갔다 사왔다는 달무티 카드부터,
정말로 그가 신실하게 키워 생생하게 뻗대는 식물들,
그가 조립했다는 프라모델,
플레이어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모았다는 엘피들,
해리포터 시리즈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도감, 쇼펜하우어까지 도무지 어느 하나의 취향으로 정의되지 않는 책들,
널브러져 있던 전단지들까지.
막상 집에 들이고도 민망했는지 쭈뼛대며 하나씩 설명하는 그를 뒤로 하고
사건 현장에 들어온 탐정처럼
물건들을 하나하나 샅샅이 관찰했다.
보물섬에 들어온 듯 하나하나가 다 신기했다.
그리고 그 물건들에 담긴 그의 삶을 설명하는 그의 말들이 하나하나가
귀가 아닌 마음에 꽂혔다.
놀라웠다. 마냥 생각 없어 보이던 그 또한 삼십몇년간을 착실히 인생을 쌓아왔다는 생각을 하니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록 머리에 종이울리는 것 같았다.
부엌에는 조리도구가 아닌 이상한 전단지들이 널려있었다.
그의 앳된 얼굴이 있었고, 조잡한 디자인의 전단지를 들여다 보는 순간
그가 뒤로 다가왔다.
“아, 내가 대학때 연극동아리였어. 연극했을때 전단지인데,
나름 주연이어서 안버리고 갖고 있었어.“
연극이라고?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려 그를 보는데,
그의 뒤로 과학시간 프리즘을 갖다대면 하나의 광원이던 빛이 그 뒤로 여러 색의 빛으로 퍼지는 것처럼
그의 인생이 보이는듯 했다.
그의 가족, 그의 취미, 그의 가치관, 그리고 그의 연애사.
여러 색깔의 갈래로 이루어진 빛이 모여 그가 되었을 생각을 하니
순간 그가 멀게도, 너무나도 가깝게도 느껴졌다.
너무 가까웠다.
그리고 심장이 가라앉았다. 온몸에 피가 빠지는 기분.
롤러코스터를 타고 가다가 급하게 뚝 떨어지는 코스에서 몸은 그대로인데
심장만 툭 가라앉는 그 기분.
그가 너무 가까웠다.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있다가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더 설명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냥 도망쳐 나왔다. 무작정 다급한 걸음으로 뒤돌아 나왔다.
그도 놀랐는지 나를 따라 현관까지 나왔지만
빠른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나를 그저 뒤에서 잘 가라는 소리와 함께 보냈다.
무슨 감정인지 도저히 수습하지 못한 채 나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1층 바에서 여전히 시끄럽게 자리를 갖고 있던 동기들 사이로 앉았다.
너무도 혼란스러웠지만, 그냥 태연한척 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무 일 없어야만 했다. 그는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니,
이 이상의 어떤 감정도 드는 것이 맞지 않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그 롤러코스터 위에 있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