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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막대치즈 데이트

by 김이안


"오늘 나 발제야. 4시에 기쁨이 데리고 오고 나 신경 안 쓰게 해 줘."



아내가 당부했다.



오후에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도서관에 잠깐 들른 뒤 서둘러 집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늦지 않게 아이가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는 곳에 도착했다.



"아빠, 왜 오늘은 아빠가 왔어? 엄마는?"



"어, 엄마는 오늘 발표래. 그래서 기쁨이랑 아빠랑 집에 잠깐 들렀다가 나가서 놀고 와야 돼. 우리 뭐할까?



아내는 색종이랑 펜, 만들기 도구 같은 걸 챙겨서 카페에 가면 혼자서 잘 놀 거라고 조언했다. 나도 그러면 차 한잔 하면서 책 읽다 오면 되겠다 생각하고 아이에게 제안을 했다.



그러나 아이가 가고 싶은 곳은 따로 있었다. 뭐든 다 있오 있오 다이소. 아내는 얼른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달라는 눈치를 계속 보냈고 결국 행선지를 다이소로 정했다.



집 근처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총 세 곳의 다이소가 있었다(다이소 역세권 우리집). 그중 가장 멀리 있는 다이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내가 발제 준비에 집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어야 하니까.



◇◇◇


해질녘 공기가 그렇게 차갑지 않아 걷기 좋았다. 가면서 바로 1년 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도 일부러 통과해서 지나갔다. 어차피 가는 길목이기도 했지만 거기서 살 때가 나름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것 같다. 굳이 이렇게 통과하며 추억들을 되짚으려 한 걸 보면.



추억의 아파트를 지나 횡당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 아이가 말했다.



"아빠, 우리 이따가 오다가 편의점에서 막대치즈 사서 데워먹을까? 그거 진짜 맛있다?!"



"뭐? 그거 언제 그렇게 먹어봤는데?"



"응, 전에 엄마랑 유치원 갔다 와서"



편의점에서 막대치즈를 전자레인지를 데워먹는다는 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아이는 그때 치즈를 먹은 기억이 좋았는지 연신 설레는 표정으로 데워먹는 치즈 얘기를 했다.



꽤 오래 걸은 끝에 드디어 도착한 다이소. 아이는 이리저리 둘러보고 꽤 고심한 끝에 강아지가 그려진 노란색 동전지갑과 역시 강아지가 그려진 자석 북마크를 샀다.



원래 딱 하나만 사기로 했으나 두 개 모두 천 원이라 특별히 두 개 다 사는 걸 허락해줬다. 그랬더니 세상 만족하고 행복한 표정. 그리고 내뱉은 한 마디.



"오늘은 진짜 좋은 날이야"



그래, 이 말 듣는 맛으로 아빠도 널 다이소에 데려온다.



◇◇◇


편의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보다 아이의 걸음이 빨라진다. 아무리 아이가 아이엄마와 먼저 그렇게 먹은 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편의점에 들어갈 갈 때부터 어색한 느낌이다.



아이는 막대치즈를 이것저것 들춰보더니 '이게' 바로 엄마와 먹었던 막대 치즈라며 내 손에 쥐어줬다.



계산을 하고 막대 치즈의 끝 부분을 살짝 뜯었다. 그리고 10초 버튼을 누르고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차가웠던 치즈가 말랑하고 따듯해졌다.



아이와 편의점 의자에 마주 보고 앉아 막대치즈를 조심스럽게 뜯은 뒤 드디어 먹기 시작.



맛이 꽤 괜찮았다. 롯데리아에서 파는 치즈 스틱 안의 그 치즈와 상당히 비슷한 맛이었다. 고소하기도 하면서 약간 느끼하기도 하면서 짭조름하기도 한 맛. 이런 식감과 맛이라면 가끔씩 와서 데워먹고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나는 치즈를 다 먹어버렸다. 아이는 야금야금 최대한 아껴서 먹다가 마지막 부분은 조금 크게 남겨 놓고 한 입에 넣어 오물거리며 치즈의 맛을 온 입 안으로 느꼈다.



◇◇◇


일곱 살 기쁨이는 다이소에서 귀여운 물건 사기를 좋아하고, 편의점에서 막대치즈 데워 먹기를 좋아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금 걸으면 징징대고 업어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꽤 긴 거리도 거뜬히 걷는다.



아이와 함께 걸으면서 어느덧 아빠랑 귀여운 데이트를 할 정도로 컸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또 어떤 모습으로 함께 하고 있을까. 이제 몇 년 후면 엄마 아빠의 자리를 밀어내고 친구가 마음의 중심부에 있게 될 텐데.



그전까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아이와 최대한 데이트를 많이 해둬야겠다고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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