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처음으로 재택근무를 해봤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머리까지 기댈 수 있는 편안한 캠핑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한 15분은 더 잤던 것 같다. 잠이 참 달았다.
출근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시간에 맞춰 업무를 하려고 머리를 감고 아침을 먹었다.
오늘 해야 할 작업의 소스를 동료팀원에게 받았다. 도무지 설명을 해주기를 힘겨워하는 그와 최소한의 연락만 주고받으려고 했다.
영상작업을 내가 집에서 한다 해도 회사 계정이 집에 있는 노트북으로는 들어가지지 않으니 본인이 그냥 회사 계정으로 들어가 내가 완성된 영상을 보면 업로드만 해주면 되건만, 번거롭게 또 일을 진행을 한다. 살짝 마음이 답답해졌지만 어쨌든 최대한 그를 안 거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같이 일하기 피곤한 사람이다.
점심 즈음에는 누군가로부터 밀키트를 선물 받았다. 감동이었다. 밖에 나가서 식사하기 어렵고 또 아내가 지금 아프니 잘 챙겨주라고 보냈단다. 감동이었다. 아내가 요리를 못하니 그동안 계속 국을 못 먹었는데 주신 부대찌개 밀키트 덕에 오랜만에 시원하게 국물 있는 식사를 했다.
늦은 점심 식사 후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아이와 '고 피시'게임을 했다. 한자를 놀이로 익힐 수 있다는 나름 학습 카드게임이지만 솔직히 학습 효과는 그리 크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동일한 카드 2장씩을 수집하는 맛이 있어서 그런지 아이가 참 좋아한다. 딱 세 판을 해주고, 아이에게 이제 아빠는 업무를 해야 한다고 말한 뒤 책상으로 왔다.
30여분 후에 아이가 방에 들어와 말한다. "아빠, 나랑 잠깐만 더 놀아주고 다시 일하면 안 돼?"
솔직히 빨리 업무를 다 마치고 맘 편히 쉬고 싶었지만 아이의 요청에 안쓰런 마음이 생겨 딱 20분만 더 같이 놀기로 했다. 이번엔 나무조립블럭으로 세계문화유산 만들기. 스페인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과 독일에 있는 백조의 성을 예시 그림을 보고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시간이 금방 갔다.
오후에 업무를 하면서도 아이가 요청하면 틈틈이 같이 놀아주려 했다. 저녁시간을 앞두고 막판 스퍼트로 업무에 집중할 땐 아이가 서재의 다른 쪽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기특했다.
저녁 7시 즈음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근했다. 방을 떠나 거실로 나가는 퇴실이 곧 퇴근이다. 소파에 발라당 누워 홀가분함을 만끽한다.
세끼 밥도 나름 잘 챙겨 먹고, 아이와 틈틈이 놀아주고, 업무도 나름 성공적으로 잘 끝낸, 3박자가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이제 자기 전에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조금 읽다 잠들면 이보다 더 좋은 마무리도 없을 듯.
하루 종일 집에 있었지만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던 소중한 하루. 꽤 괜찮았던 재택 근무 1일차가 이렇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