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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온종일 있으면서 얻은 팁들

by 김이안


이번이 두 번째다. 릴렉스 체어에서 15분만 좀 쉬었다가 방에 와서 글을 쓰며 하루를 정리하고 잠들려 했건만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자정 즈음에 눈을 떴지만 결린 목을 부여잡고 그대로 침대로 가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밀려오는 찝찝한 마음. 어제 집에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있었는데 또 몇 줄도 못쓰고 하루를 마감하다니. 앞으로 릴렉스 체어에서 잠깐 쉬는 걸 조심해야겠다. 쉬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리니까.



정 피곤하면 차라리 책상에 엎드려서 쪽잠을 자야지. 그러면 몇 분 있다가 저려오는 팔 때문에 아예 잠들지는 않을 거다.





아이가 유치원을 못 가게 되면서 지난 일주일 간 함께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됐다. 계속 놀아달라는 아이의 요청에 고피쉬 카드게임과 나무 블록으로 세계문화유산 건물 만들기, 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트리기 레슬링 등을 반복했다.



하지만 아이와 계속 무언가를 같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몇 번은 같이하다가 자연스럽게 빠져서 책을 읽거나 필사를 하는 등 내 활동을 하려고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팁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고 피쉬 카드게임


1) 아이와 일단 같은 장소에 있는 게 중요하다.



언젠가 부부싸움을 하는데 아내가 뜬금없이 말했다. "그리고 말야. 방에 틀어박혀 있지 좀 마! 하숙생이야? 거실에 좀 나와 있어!!"



나는 당연히 방에서 책을 읽거나 좋은 문장들을 타이핑하거나 이런저런 것들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랑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일단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아이에게는 안정감을 준다는 걸 발견했다.



돌아보니 내가 서재방에 있을 때 아이는 자기 책을 가지고 와서 내 옆에서 읽으려고 하고 뭔가 꽁냥꽁냥 만드는 것도 재료를 가지고 와서 옆 책상에서 같이 하려고 했다. 뭔가 각자 할 걸 하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하고 싶어 하는 거다.



그리고 같이 놀지 않더라도 내가 거실 소파에서 책을 보면 아이도 나름대로 자기 할 걸 하면서 알아서 놀았다. 종종 뭔가를 물어보고 또 얘기를 하지만 확실히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것과 한 공간에 있는 건 차이가 있었다. 같이 있다는 온기가 느껴진달까.



2) 아이와 같이 있을 때 책을 읽거나 필사를 하면 적절히 아이의 말에 답도 해주면서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



이때 책은 소설보다는 한 편 한 편 길이가 길지 않은 에세이가 좋은 듯했다. 소설은 아무래도 좀 더 집중을 요하니까. 어쨌든 책을 읽으면 아이가 그때그때 걸어오는 말들, "아빠 나 다 만들었어, 멋지지?" "아빠는 무슨 색이 좋아?" 같은 물음들에 간단한 대답을 해주면서 독서에 집중도 가능하다.


거실 소파에 기대 책을 보니 아이도 어느새 옆에서 책을 본다


필사도 마찬가지다. 필사는 어제 시도해봤는데 아이에게 반응해주면서 필사하는 내용에 대한 몰입도 가능했다.


하지만 글쓰기는 어려웠다. 물론 뭘 쓰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글쓰기는 쓰다가 흐름이 끊어지면 안 되고 상당한 집중을 요하기에 그런 것 같다.



3) 아이가 요청하면 일단 1~2분이라도 먼저 해주는 게 좋다.



이것도 상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일단 조금이라도 아이가 요구하는 걸 조금은 같이 해 준 다음에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 할 일로 돌아오는 게 에너지가 덜 들었다.



"아빠가 이것만 끝내고 갈게." "조금만 기다려줘" 이렇게 얘기한다 해도 아이가 금세 다시 와서 "아빠 언제 끝나? 언제 나랑 같이 놀 거야?" 이렇게 되묻기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던 작업에 집중도 안 되고.



그래서 진짜 급한 상황이면 아이에게 다급하고 단호하게 "꽁냥아 조금만 기다려줘!"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먼저 몇 분을 놀아준다.



일단 아이도 자신의 요청을 아빠가 들어줘서 무언가를 조금 같이 했기 때문에 아빠가 다시 일이라든지 다른 작업으로 돌아가도 어느 정도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나무 블록 버전..




그런데 물론. 아이와 같이 충분히 신나게 놀아주는 게 제일 좋다. 그러나 부모에게도 체력과 감정에너지에 한계가 있는 법. 20-30분은 몰입해서 같이 놀아준다 해도 그 이후엔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그럴 때 아이와 같은 공간에 있되, 독서나 필사 같은 걸 하면 아이에게 간단한 말대답을 해주며 꽤 괜찮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단, 글쓰기나 영상을 보는 건 어렵다는 것.



이제 아이가 다시 유치원에 가고 나도 더 이상 낮에 집에 있지 않으니 요 며칠처럼 이렇게 온종일 통째로 아이와 함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분명 수월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벌써 애틋해진다.



오늘 저녁엔 아이와 진하게 같이 있으며 함께 놀았던 것들을 일기로 써보자고 해야겠다. 추억을 오래 기억하고 간직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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