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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Jan 23. 2021

당신과의 이야기가 시작된 날

언젠가 딸아이에게 들려줄 이야기



기쁨아 안녕? 오늘은 아빠가 엄마랑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얘기해주려 해. 갑자기 왜 얘기하려 하냐고? 음 그건, 해마다 이맘때쯤 아빠 휴대폰 이런 알림이 뜨기 때문이야.


'OO와의 이야기가 시작된 날'


맞아, 이날은 너희 엄마와의 이야기가 시작된 날이거든.  올해가 2021년이니까 벌써 8년 전 이야기가 됐구나.


아빠랑 엄마랑은 2012년 5월에 교회에서 처음 만나게 됐어. 당시 아빠가 다니던 교회에 엄마가 새로 오게 됐지. 그런데 예배 광고 시간에 새로 어떤 분이 왔다고 인사할 때 네 엄마를 본 후, 마주치거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지.


그러다가 11월에 교회 청년들끼리 식사를 같이 하는데 그때 이야기를 처음으로 나누면서 조금 친해지기 시작한 거 같아. 가끔씩 카톡도 주고받고 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지.


이때부터 너희 엄마에게 관심이 생겼던 거 아니냐고? 음, 그건 아니야. 왜냐하면 아빠가 12월에 다른 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길 예정이었거든. 그래서 어차피 이제 곧 못 볼 사람이라 딱히 마음을 둘 수 없었어.


아빠는 예정대로 12월에 다른 지역으로 떠났어. 근데 말이야, 다른 지역으로 온 지 이틀 만에 너희 엄마에게 카톡이 하나 온 거야. 외근으로 아빠가 있는 지역으로 뭔가를 알아보러 오게 됐는데 혹시 점심 같이 할 수 있냐고 말이야.


아빠는 반가운 마음에 오면 맛있는 밥을 사주겠다고 답장했지. 그런데 정말 그다음 날 직장 동료 한 명과 같이 아빠가 있는 곳으로 온 거야. 그래서 이런 곳에서 다시 볼 줄은 몰랐다고 반갑게 인사하면서 식당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지.


그리고 다시 아빠는 회사로, 너희 엄마는 외근 업무를 하러 가려고 인사를 하는데 그때 참 눈이 많이 내린 게 기억나. 어쨌든 서로 잘 가라고 하고 그렇게 헤어졌지.


그런데 이때 잠깐이지만 생각지도 않게 만났던 이후로 너희 엄마와 카톡을 주고 봤는 횟수가 좀 많아졌어. 좀 더 친해졌나봐.


아빠도 낯선 곳에서 특별히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너희 엄마와 카톡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꽤 주고 받았던 거 같아. 그렇게 하다 보니 연말이 되고 한 해가 지나게 됐지.


그런데 새해 첫날 주아씨에게 카톡이 왔어. 1월 3일에 서울에 아는 사람을 만나러 서울에 가는데 그때 잠깐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이야. 아빠가 그때는 서울 가까이에서 살고 있었고 1월 3일에 특별한 일정도 없었기에 좋다고 했지.


그래서 1월 3일날 너희 엄마와 다시 만나게 돼. 어떻게 보면 처음으로 둘이 만나게 된거지. 이날 참 추웠는데 서울에 에이프릴 마켓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카페에서 이야기도 좀 나눴어.


이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즐겁게 많이 나눈 거 같아. 밤이 되어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됐는데 아빠는 이런 생각이 들었지.


'아, 이제 이 누나와는 더 볼 날은 없겠구나'

(이 당시에는 누나라고 불렀단다)


왜냐하면 너희 엄마와 아빠는 이제 먼 지역에서 떨어져 살고 있으니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만날 일은 없겠구나 생각한거야. 그리곤 이제 고속터미널역에서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지게 됐어.


그렇게 아빠는 버스를 타려고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는데, 있잖아, 너희 엄마가 아빠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거야. 아빠는 놀라서 말했지.


"어 아직 안 갔어요? 무슨 일이예요?"


"응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아, 무슨 얘기요?"


그런데 주아씨가 이후로 얘기를 안 하는 거야. 아빠는 순간 지갑이라도 잃어버렸나? 생각했지. 일단 밖에 있기에는 추워서 고속터미널 안으로 들어갔어.


그렇게 고속터미널 안을 같이 걷는데 서로 말이 없는 거야.


'아니, 이 누나가 왜 그러지? 설마.. 아닐 거야.. 괜히 김칫국 마시지 말자..'


그런데 너희 엄마도 뭔가 말하려는 것 같은데 못하고 있고, 그렇다고 아빠도 뭐라고 이야기를 못하겠는거야. 그렇게 서로 어색하게 한 15분간을 걸었던 것 같아.


그러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아빠가 김치국이든 뭐든 일단 먼저 마셔보기로 했어.


"누나 혹시 저 좋아하는 감정이 있는 거..."


아빠 스스로도 참 이런 말을 먼저 하는 게 민망해서 차마 말을 끝까지 못 했는데 너희 엄마가 글쎄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응 맞아.."


이때 아빠의 마음이 어땠을 거 같니? 설마 설마 했는데.. 이런 대답을 들으니까 아빠도 어쩔 줄 모르겠는거야. 전혀 예상을 못했거든. 정말로. 전혀.


그렇게 서로 멈춰서 정적이 흘렀는데 아빠가 이렇게 말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  


"누나, 그럼 우리 오늘부터 서로를 좀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까요? 아직은 우리가 서로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사이니까.."


"아, 그래 좋아"


그렇게 아직은 여전히 어색한 채 아빠는 다시 너희 엄마를 지하철 역 앞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탔지. 집으로 오는 길에 아빤 생각했어.


'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그리고 아직은 너희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그냥 좋은 누나라고만 생각했기에, 진짜로 서로 어떤 사람인지 알아간다는 마음으로 계속 만나봐야겠다고 마음먹었지.


푸른 바닷물 속에 어떤 풍경이 있을지 잘 모르지만 일단 물에 첨벙 뛰어보자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 그렇게 이 날을 기점으로 아빠랑 엄마의 이야기가 시작된거야.


그래서 1월 3일이 되면 휴대폰에 띠링 하고 알람이 뜨는 거란다.


'주아와의 이야기가 시작된 날'


오랜만에 이날의 기억을 되살려 이야기를 해주다 보니 아직도 좀 닭살이 돋고 그러네. 아빠랑 엄마는 이렇게 만나게 되었어.


나중에 아빠가 정식으로 고백하긴 했지만, 엄마는 이 날을 떠올리며 이렇게 얘기하곤 했단다.


"내가 그때 앞으로 살아가면서 낼 용기를 미리 당겨서 썼으니까, 나중에 우리가 싸우고 화해해야 할 일 있을 땐 자기가 먼저 용기 내서 다가와줘야 돼"


음, 다시 돌아보니 아빠가 결혼하고 이 부분을 잘 못했던 것 같네. 앞으론 아빠가 너희 엄마에게 더 먼저 다가가야겠어.


어때, 재밌었니? 아빠도 다시 떠올리며 옮겨 적어보니까 기억이 새록새록 나고 마음에 다시 설레네. 네 엄마와 이런 때가 있었는데.. 감회가 새롭구나.


앞으로도 종종 아빠 엄마의 옛날이야기 들려줄게. 엄마는 네가 태어난 이후로 아빠랑 연애하던 시절 기억이 거의 안 난다고 하는데, 아빠는 꽤 많이 기억하고 있어. 아빠는 이때가 참 좋았나봐. 물론, 지금도 좋고.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끝..!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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