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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Oct 25. 2021

아이에게 줄 선물을 사며



방문이 '펑'하고 열리더니 아이가 이불속으로 달려든다.


"아빠! 아빠 오는 쉬는 날이지. 오늘 그럼 내 선물 사줘야지!"



며칠 전부터 아이는 작은 정사각형 상자 모양의 파우치를 갖고 싶다고, 선물로 사달라고 졸랐다. 아이 엄마가 얼마 전에 귀걸이 보관용으로 산 베이비핑크색 사각 파우치가 발단이었다. 아이는 아내에게 자기도 갖고 싶다고 사달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니 사줄 수 없다고 거듭 얘기했고 결국 아이는 타깃을 아빠로 정한 것.   




"아빠, 나 선물 언제 사줄 거야? 내가 전에 말했던 거 있잖아. 그거!"


"아빠, 오늘까지만 기회를 줄게. 오늘 꼭 사 와~"


가만 듣고 보니, 선물에 대한 갈망이 부탁에서 명령으로 바뀌고 있다.



"기쁨아, 너 왠지 아빠한테 선물 사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심부름시키는 거 같은데?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인데?"


"아니 그게 아니고~~ 나도 엄마 같은 파우치에 작은 강아지 인형 꼭 넣고 다니고 싶어 아빠 그러니까 사주라 응? 아빠~~"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이소에 갔다. 아내가 샀던 사각 파우치는 딱 봐도 꽤 고급스러워 보였고 다이소에서는 팔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비슷한 게 혹시 있을까 해서 매장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다행히 크기는 작지만 정사각형 모양의 나름 귀여운 파우치(?)는 아니고 동전지갑을 발견했다. 색깔은 바닐라 라떼 색과 슈크림색 두 가지. 고민 끝에 좀 더 밝은 색상인 슈크림 색으로 결정했다.



책상 위에 막 사온 동전 지갑을 올려놓고 다시 하던 일을 시작한다. 과연 아이가 좋아할까? 살짝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마음이 왠지 뿌듯하다.




선물이라는 눈에 보이는 물상에는 그 사람이 선물을 고르기 위해 고민한 시간, 선물을 사기 위해 오고 간 발걸음, 그리고 선물 받을 나를 상상하고 생각한 그 마음 등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선물을 받을 땐 그 선물이 마음에 들고 들지 않고 보다는, 그 사람이 선물을 고민하고, 사고, 내게 주기까지의 전 과정을 헤아려보려 한다. 올림픽에서 메달 수여식 때 선수들이 받는 메달도 그런 의미가 있지 않나. 그동안 흘린 땀과 눈물과 시간과 노력에 대해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주는,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이런 의미에서 선물은 선물 받을 사람에 대한 마음이 담긴 하나의 '상징물'과도 같다. 그래서 똑같은 물건이라도 그냥 내가 산 것과 누군가가 고민하고 선물해 준 것과는 차이가 있다.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산 그 물건에는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몇 밀리그램이나마 더 담겨있는 셈이다.



"내가 싫어하는 색깔만 다 들어있네""


선물에 대해 나 스스로 이런 생각들을 정리하게 된 계기는 7년 전 내가 했던 이 망언에서 비롯됐다. 그때 나는 선물이라는 물상 자체보다 그 선물을 사기까지 고민하고 고르고 걸어 다녔던 아내의 마음을 더 생각했어야 했다. 그런데 아내가 나름 고민하고 골라서 선물한 그 셔츠를 보고 저런 말을 했으니... 아내는 지금도 이걸 우려먹는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그 얘긴 이제 그만...)




고양이 스티커, 당근 지우개, 구슬 비즈 ... 지금까지 아이에게 준 조그마한 선물들은 기준을 아이의 리액션으로 볼 때 모두 성공이었다. 신기하리만큼 아이는 해사한 표정으로 좋아하고 기뻐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리액션을 볼 수 있지는 않을 것. 언젠가(곧) 선물을 받고 실망한 아이의 표정을 보게 될 텐데 그때는 얘기를 해줘야겠다. 때로는 선물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 보다는 선물을 준비한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줘야 한다고.



물론 일곱 살 아이가 나도 한참 늦게 알게 된 걸 온전히 이해하겠느냐마는 그래도 일단 알려주면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게 될 테니.

 


그렇지만 오늘 준비한 네모난 동전지갑까지는 성공이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웃음꽃과 반달 모양 눈, 그리고 '와~ 귀여웡~'하는 그 특유의 톤을 오늘도 보고, 듣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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