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막이를 사랑한다. 봄, 가을 애매한 기온의 계절에 바람막이는 내 살갗 바로 위에 살포시 얹혀서 체온을 보호해주고 햇빛을 막아준다. 여름에는 에어컨의 냉기와 작렬하는 자외선으로부터, 겨울에는 얇은 옷과 함께 곁들어 입으며 체온 조절에 한 몫 해준다. 바람막이의 얇지만 살갗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그 느낌을 좋아한다. 뛰어난 휴대성으로 나와 온갖 데를 함께해주는 내 친구 바람막이를 사랑한다.
그 시절 바람막이는 아무나 입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바람막이는 아무나 입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비롯한 메이커 있는 회사들의 바람막이는 꽤나 비쌌다. 누군가 간지 나는 바람막이를 떡하니 입고 다니면 꽤나 시선이 갔다. 그렇다고 겨울 점퍼같이 꼭 필요한 건 아니어서 쉽사리 살 수가 없었다.
처음 내돈내산 바람막이
3년 전, 처음으로 내 돈 주고,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바람막이를 사봤다. 검은색의 피부에 닿는 느낌이 아주 좋은 나이키 바람막이. 이 바람막이는 접으면 한 없이 작아져서 출근할 때건 여행할 때건 밖에서 일할 때건 어딜 가든 나를 잘 따라다녔다. 날씨가 더워지면 그냥 가방 속에 넣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동안 어머니가 사준 바람막이는 어딘가 좀 아쉬웠다. 일단 내가 그토록 원하던 심플한 올블랙이 아니었고 재질도 살짝씩 아쉬웠다. (그래도 사주신 게 어딘가. 오랜 기간 잘 입고 다녔다) 그러다 드디어 내가 거금을 들여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바람막이를 구매한 것이다. 돌아보면 일단 색깔도 디자인도 중요했지만 나이키라는 브랜드를 많이 선호했던 것 같다. 검은색 바탕에 심플하게 그 로고가 박혀있는 바람막이가 멋져 보였다.
물론 실제로 입어본 뒤의 착용감도 중요하다. 바람막이 같은 경우에는 특히 온라인으로 구입하면 안 된다. 바람막이는 맨 살에 바로 닿기 때문에 살갗에 닿는 그 감촉과 느낌이 중요하다. 어떤 원단은 입으면 너무 냉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직접 입어보고 내 살갗에 닿았을 때 느낌이 괜찮은지 꼭 착용해 봐야 한다.
검은색 바람막이의 유용함
개인적으로 검은색 바람막이를 선호한다. 검은색 바람막이의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셔츠를 바지 속에 집어넣어서 입어야 할 때 바람막이를 걸쳐주면 나온 배를 가릴 수 있다. 상황상 정장을 입긴 입어야 하는데 딱 특정 시간만 입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바람막이를 꼭 챙겨서 꼭 입어야 하는 시간이 아닌 때는 바람막이를 위에 입는다. 그러면 정장을 입었다는 티도 안 나고, 배도 가릴 수 있으며,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 (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면 사람들 준에 좀 띄지 않나)
둘째, 찌개류를 먹을 때 셔츠에 국물이 틔는 걸 보호해준다. 부장님은 그래서 점심 먹으러 갈 때 바람막이를 꼭 챙긴다. 그래서 앞치마를 두르지 않고 대신 국물 커버용으로 바람막이를 입는다. 앞치마는 사실 둘러도 그 사이로 국물이 튀는 경우가 많지만 얇은 바람막이를 지퍼 끝까지 입으면 어떤 국물로부터도 와이셔츠를 보호할 수 있다. 물론 바람막이가 검은색이라는 조건 하에.
생애 두 번째 바람막이 구매기
그동안 잘 입던 나이키 바람막이가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해버렸다. 분명 휴가 때까지 입었고 집에서도 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마침 나이키 로고 부분이 갈색으로 때가 끼어 보기 좀 안 좋기도 하고 (아무리 빨아도 안 지워진다) 지퍼 상태도 엇돌때가 많아 (얼마나 자주 올리고 닫았으면) 불편하던 차였다.
마침 회사에서 금요일 오후에 등산이 계획되어 있던 차, 이 기회에 나의 애정하는 바람막이를 새로 하나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야근을 한 터라 꽤 늦은 시간에 가게로 탐방을 나섰다. 일단 로고가 전면에 박히지 않거나 거의 안 보이는 아디다스 바람막이를 전에 봐 둔 게 있어서 매장에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아저씨가 매장의 불을 꺼버렸다. 불과 3걸음 정도 앞이었는데 불이 꺼져버린 매장 앞에서 잠시 방황하다 그 옆에 나이키로 걸음을 옮겼다.
나이키 바람막이는 3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기본 폼인 검은색의 하얀색 로고가 얄쌍하게 박힌 그 바람막이가 대세였다. 그러나 왠지 다시 나이키 바람막이를 사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이제는 나이키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그 디자인이 싫증이 났고, 이것도 오래 입으면 또 때가 타거나 로고 스티커가 벗겨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격도 전에는 8만원 정도에 샀던 것 같은데 지금은 10만원이 넘어가니 영 끌리지 않았다.
그러다 간 곳은 데상트 매장. 학창 시절 워낙 나이키, 아디다스 브랜드에 세뇌가 된 지라 데상트라는 메이커는 좀 생소했다. 일단 늦은 시간이라 연 곳이 이곳밖에 없었으므로 들어가봤다.
심플한 디자인의 바람막이가 있길래 입어봤는데 일단 착용감은 굿. 그러나 가격이 뜨악, 179,000원이었다. (뭐가 이렇게 비싸!) 그런데 매장 직원 분은 데상트라는 브랜드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투로, 이 옷이 정말 편하다고, 다른 브랜드 바람막이를 입어봐도 이 옷처럼 편안하지는 않을 거라고 강조했다. 단순한 호객 행위가 아니라 아닌 듯했다.
일단 편하긴 한데 아무래도 가격이 너무 비싸 다시 나이키 매장에 들어가서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결정했다. 좀 비싸도, 자주 입는 옷은 좋은 걸 입어야 한다고.
확실히 살갗에 닿는 느낌은 너무 냉하지 않고 좋았고 팔을 돌리고 상체를 틀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지퍼 끝 마감도 괜찮았고, 지퍼를 다 올렸을 때 앞 쪽 디자인도 깔끔했다. 다만 데상트라는 디자인이 좀 생소하고, 여전히 어깨 쪽에 박힌 로고가 신경 쓰였다. 그리고 물론 여전히 가격도 신경 쓰였고.
다시 찾아온 나를 반겼던 매장 직원 분이 옷을 보고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던진 한 마디, 어차피 바람막이는 오래 입어야 할 텐데 한 번 좋은 걸 사서 오래 입는 게 좋지 않을까요? - 라는 말을 던졌다. 수긍했다. 한 번 사서 오래 입는 게 낫다고. 일단 그토록 소원하던 나이키 바람막이는 한 번 입어봤고, 아디다스는 거의 비슷할 것 같고, 새로운 브랜드의 바람막이를 신뢰해보기로 했다. 뭐, 일단 실제로 입어보니 착용감은 좋았으니까. (간접광고 아닙니다)
잘 산 바람막이 하나, 열 재킷 안 부러워
살이 그렇게 찐 건 아닌데, 이젠 셔츠 위에 입는 정장이 왜 이리 불편한지 모르겠다. 물론 입으면 깔끔하긴 하지만 어깨부터 조여 오는 느낌이 답답하다. (두 달간 헬스를 해서 어깨가 넓어진 것일까?) 그래서 정말 입어야 하는 때가 아니면 정장 재킷은 웬만하면 안 입으려고 한다.
대신 출퇴근 시, 때론 사무실 내에서도 바람막이를 즐겨 입는다. 셔츠 위에 바람막이만 걸치면 바로 가벼운 산책을 할 수도 있다. 그만큼 편하니 활동성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바람막이를 입으면 기지개도 켤 수 있고 스트레칭 겸 어깨도 돌릴 수 있다.
비가 오면 또 어떤가. 재킷을 입었을 때 비가 오면 그야말로 낭패지만 바람막이는 일단 비로부터 옷을 보호해주고, 젖으면 바로 빨아버리면 그만이다. 마를 땐 또 어쩜 그리 뽀송하게 빨리 마르는지.
자주 쓰는 물건은 고로, 좋은 걸 써야 한다는 건 진리다. 내게는 특히 바람막이가 그렇다. 출퇴근길이건, 여행길이건, 에어컨 냉기 가득한 사무실에서건 바람막이처럼 가벼우면서도 든든하게 내 체온과 피부를 살갗을 지켜주는 게 또 있을까.
마음 같아선 아무튼 시리즈에 '아무튼 바람막이'로 투고를 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나에겐 아직 다양한 색깔의 바람막이도 없고 직접 구매한 바람막이도 인생 통틀어 딱 2번이라 여러모로 경험치가 부족하다. (바람막이가 양말처럼 쌌다면 좋았을 텐데)
그럼에도 나의 바람막이 사랑을 기록해두고 싶어 이 글을 남긴다. 더불어 아직 바람막이의 유용함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사시사철 유용한 바람막이의 장점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아만의 아무튼 시리즈, '아무튼 바람막이'를 이렇게 기록해본다.
잠시 후 퇴근길, 어제 새로 산 바람막이를 입고 선선한 가을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좀 하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