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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Mar 13. 2023

작은 성취감이 하루를 지탱해 준다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씁니다.

_ 이자크 디네센



글쓰기는 독서보다 관성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책을 펼쳐 눈에 들어오는 첫 문장을 읽는 것보다 빈 화면에 첫 문장을 력하는 게 내면의 저항이 더 심하다. 왜냐하면 글에는 내 생각과 감정이 담기기에, 어딘가에 오픈되는 글쓰기는 '나'라는 존재가 어쩔 수 없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후회, 자책, 회의감 같은 감정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한다.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과 지금 내 모습 '괜찮다, 좋다'라고 생각하는 자존감을 사라지게 한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희미해지면 무기력해지고 우울감이 깃든다. 우울감은 다시 후회와 자책으로 이어져 마음을 점점 더 밑으로 가라앉게 만든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작은 성취감이다. 작게라도 뭔가를 해냈을 때 내면의 에너지가 생긴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잘 정리해 논다거나, 양치질을 꼼꼼히 한다거나,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어서 저녁 시간을 상쾌하게 맞이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모두 작은 성취감을 맛보기 위한 일종의 루틴이다.



'후회, 자책, 회의감' 발생 -> '자신감, 자존감' 결여 -> '무기력, 우울' 상태에 빠짐 -> '후회, 자책, 회의감' 발생 -> ...

 


하루를 살다 보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적인 상황들이나, 또는  실수나 후회되는 선택들에 의해 위와 같은 굴레에 빠지게 된다. 이 굴레에 빠지는 건 살아 있는 한 어쩔 수 없다 쳐도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마음에 병이 든다.

 


이 연쇄 고리에서 되도록 빨리 벗어나기 위해 작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 본다. 침대 이불 가지런히 펴놓기, 출근 전 글 쓰고 올리기, 비타민C, D 먹고 나가기, 책 20페이지 읽기, 좋은 문장 하나 수첩에 써놓고 블로그에도 기록해 놓기, 아이에게 10분 책 읽어주기, 10000보 채우기, 팔굽혀 펴기 12개 하기, 자기 전 허리스트레칭 10분 하기 등.



이 중에서 '출근 전 글 쓰고 올리기'는 만만치 않은 루틴이지만 성취감이 오래 지속되기에 제일 중점을 두고 지키려 한다. 제한된 시간에 이 루틴을 완료하려면 전날과 새벽에 미리 생각의 줄기를 잡아놓아야 한다. 첫 문장을 쓰기 전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절망도 희망도 없이 매일 쓴다'는 이자크 디네센의 말을 주문처럼 외우려 한다. 일단 기계처럼 시작을 해야 마무리도 되는 것이니까.



물론 글을 올리고 난 뒤의 작은 성취감이 내 하루를 지탱해 줄 거라는 희망은 갖고 있다. 첫 문장의 주저함과 마지막 문장의 의구심은 나를 절망하게도 할 거다. 그렇지만 쓰기 시작하기까지의 '저항'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최면을 걸듯 되뇌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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