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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Mar 19. 2024

결국은 쓰고 가야 하느니라


오전 중에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편하다. 점심시간까지도 괜찮다. 오후 2시쯤부터 살짝씩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그러다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글을 못 올리면 자괴감의 연못에 빠진다. 후련한 퇴근의 맛이 안 난다. 그래서 아침 시간에, 오전 중에 써서 올리는 게 제일 맘 편하다.



쓰기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집에 들어간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예민해져 아이에게 날카롭게 얘기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실망과 투정을 아무 잘못 없는 아이에게 토해내고 있었다. 이런 못된 놈. 이래서는 아니 된다. 아니 될 일이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프로젝트 때문에 아침에 내가 활용할 수 있는 1시간이 없어졌다. 이를 탓하진 말자 - 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지만 이를 탓하고 싶다. 그럼 어떻게 빼앗긴 시간을 확보할 것인가? 찾고자 하면 길이 보이고, 핑계를 대자 하면 다채롭고 무수한 변명거리들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바뀐 상황 속에서 다시 흐름을 타야 한다. 잠깐이라도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확보해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 K리그가 개막을 해서 경기 하이라이트를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었구나. 그런데 축구 하이라이트를 보는 것도 내겐 쏠쏠한 재미 중 하나인데. 그렇다고 뭔가를 안 쓰고 하루를 보내면 마음이 어딘가 모르게 헛헛하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예민해지고, 자책하고. 아, 절충안은 없는 것인가.



첫째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 둘째 아이를 돌보는 시간, 아내와 아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식사하는 시간. 어느 것도 줄일만한 게 없다. 결국 축구 하이라이트 보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쓰다 보니 결국 답이 좀 나오는 건가. 나에게 쓰는 시간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만큼이나 소중하다면, 그러면 다른 걸 내려놓아야지. 그게 맞지. 그렇지.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아니면 축구 하이라이트를 본 걸로 뭔가를 쓸 수는 없을까? 그럼 경기별로 분석을 해볼까나. 그런데 아예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기도 하나, 이러면 또 그냥 맘 편히 축구 보는 재미를 잃어버릴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프로젝트 끝날 때까지는 쓰기를 좀 쉬면 되잖아 이안아. 근데 또 건 싫고. 이런 결정장애 같으니.  



그래도 이렇게라도 쓰니 마치 활명수 하나 들이키고 대차게 트림 한 번 한 것처럼 조금 속이 풀린다. 그래, 이런 상태로 집에 들어가야지. 학교 숙제 끝내고, 이제 맘대로 놀아야지 하는 심정으로 들어가야지. 그래, 이게 맞다. 다 못 써서, 안 써서 찝찝한 채로 들어가면 답이 없도다. 이 찝찝함은 오직 써야만 풀리는 것이기에. 됐다, 오늘은 좀 홀가분하게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결국은 이렇게 쓰고 가야 한다. 좀 더 다정한 아빠로, 남편으로 집에 들어가기 위해.  



잘 써질 때라는 건 없어요.
쓸 수 있을 때 그냥 씁니다.
_ <우리들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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