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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Mar 12. 2024

결혼 10년 차, 이제 그대를 조금 알아가오


여보, 우리가 결혼한 지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많이 변했을 거라 생각하오. 일단 가족 구성원부터 차이가 있구려. 작년 말에 둘째 아이를 낳느라 고생이 많았소. 당신 덕분에 우리에게 '4인 가정'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생겼지 않소. 참 경축할 일이 아닐 수 없소. 아직도 향긋한 아기 냄새를 풍기며 꼬물거리는 막내를 볼 때마다 나는 그저 경탄스러울 뿐이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지난주에 내 상사와 식사 자리에 갔다가 참 괜찮은 한정식 집을 발견했다오. 그래서 당신을 꼭 데리고 오고 싶어서 그날 바로 예약을 했기에, 당신에게 주말에 가자고 했던 거요. 아직도 식당으로 출발하기 전, 화장을 하면서 살며시 웃음 짓던 그대의 표정이 생각나오.



알다시피 우리는 참 취향이 다르지 않소. MBTI도 정반대,  상극 중에 상극이고, 사소한 습관들도 많이 다르오. 그 때문에 결혼 초에, 아니 결혼 후 몇 년은 많이 갈등하기도 했소. 먹는 것과 관련한 것도 마찬가지오. 나는 먹는 데에는 크게 뜻을 두는 타입이 아니라 뭐든 적당히 먹기만 하면 되오. 그나마 좋아하는 게 있다면 과일을 특히 좋아하는 것뿐이오. 그런데 그대는 먹는 데 상당한 의의를 두지 않소.



지난번 처갓집에 갔을 때도 당신은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행복이라'고 얘기했던 걸 기억하오. 그러나 나는 맛집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고, 특히 당신의 소울푸드인 삼겹살도 그저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마는 정도이니 이렇게 먹는 취향도 당신과 나는 참 달랐소.



그런데 지난 주말에 내가 미리 괜찮은 식당을 예약해 두었다고, 평일에 아기를 보느라 고생이 많으니 가서 맛있게 먹고 오자고 했을 때, 나는 보았소. '이 인간이 두 아이의 아빠가 되더니 좀 바뀌었구나. 이제야 아내 위할 줄 알고 철이 좀 들었구나' 하며  흐뭇해하는 그대의 눈망울을. 분칠을 하면서 '집에서 얼마나 걸리는데? 하면서 물을 때, 우유에 탄 초코맛제티처럼 퍼지는 그 설렘을 나는 보고야 말았소.



내가 한창 당신에게 빠져 호르몬 체계에 이상이 생겼을 때 이런 말을 했던 걸 기억하오. 앞으로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 공부하고 알아갈 거라고. 그래서 당신을 연구하고 계속 그대라는 학문에 정진하여 박사 논문도 여럿 쓸 거라고.(다시 생각해도 미친 것 같소. 너무 오글거리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상태임은 분명하나, 그 취지는 참 건강한 듯 하오. 결혼이란 모름지기 서로를 계속 더 알아가고, 서로 맞춰가는 것임을. 서로가 싫어하는 것을 자제하고, 나의 모난 부분을 계속 다듬어 가는 것임을. 이게 바로 결혼이라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가는 자세가 아니겠소.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야 결혼이라는 왈츠를 음악에 맞춰 원 스탭, 투 스탭 리듬감 있게, 신명 나게 출 수 있는 게 바로 이 결혼 생활 아니겠소.



그동안 당신에게 무심했던 걸 용서하오. 그대는 어쩌면 참 단순한 사람인데. 먹을 것만 잘 사주면 얼굴에 파안대소가 피는 사람인데. 한 달에 몇 번만 이렇게 분위기 좋고 맛있는 식당에 데려가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수고하고 있다. 정말 고생하고 있다. 당신 덕분에 산다는 멘트를 던지기만 하면 될 것을. 나는 그게 뭐 이리 어렵다고 못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소. 결혼 10년 차, 이제야 이 무심하고 무식한 돌대가리가 개과천선하여 자그마한 지혜가 생기려 하나 보오.



내 그래서 이번 주말에 갈 식당도 미리 예약을 하려 하오. 이번에는 내 지인이 출장 차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대나무 통밥 정식집에서 식사를 했다 하는데 평이 꽤 괜찮았소. 원래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집 근처 맛집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지 않소. 우리 이번에는 대나무 통밥 정식을 맛나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이번에도 내 둘째 아이를 품에 안고 전담마크할테니 그대는 편안하게 식사하면 되오. 아이가 똥을 너무 싸서 기저귀 밖으로 똥이 새어 나오지 않는 한 내 품에 꼭 안고 있을 너이니 걱정일랑 붙들어 매시오.



아직도 우리가 결혼 10년 차라는 게 참 믿어지지 않소. 이대로라면 20년 차도 금방일 듯하오. 그때 되면 첫째 아이는 대학생이 되어 있겠구려. 여보, 결국 남은 인생을 가장 많이 함께할 동무이자, 동지는 우리 둘임을 기억합시다. 앞으로 갈등이 있을 때마다 "내가 죄인이오, 나를 용서하시오"라고 엎드려 빌 테니 혹시 이 무식한 놈이 간혹 당신이 속을 긁고 속천불나게 하더라도 이해해 주시오. 인간이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려나보구나,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고 있구나 생각하고 이해해 주시구려.



여보, 요즘은 많은 것들이 참 감사하오. 지금이 따사로운 햇볕에 파도가 잔잔히 일렁이는 때 같소. 언제 또 예상치 않은 험난한 파도와 비바람이 후려치는 때가 오겠지만 우리 또 잘 버텨봅시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우리 애기얼굴을 바라보며, 남은 인생길 같이 토닥이며 잘 걸어가 봅시다.



앞으로 그대라는 학문에 정진하기를 내 게을리하지 않겠소.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마치 성경을 여러 번 읽듯, '당신'이라는 텍스트를 내 읽고 또 읽고 분석하며 연구하리이다. 내 다시 한번 다짐하오. 오늘 하루도 둘째 아이와 씨름하며, 설거지, 빨래, 청소 등 이 집안이라는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꼭 해야 할 것들을 하느라 고생한 당신. 고맙소. 내 더 잘하겠소. 그리고 좀 더 자주 당신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겠소. 그대가 좋아하는 갖가지 맛집 식당들도 더 자주 데려가겠소. 이만 줄이겠소. 좀 부끄럽지만 고맙고, 사랑하오. 


(프포오즈했던 이 날의 마음과 다짐을 되새기며 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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