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른 아침엔 춥다. 그래서 천변을 걸으러 갈 때 패딩을 꺼내 입는다. 겨울의 끝물에 특가로 산 패딩. 가볍고 따듯해서 입을 때마다 사길 잘했다 생각한다.
산책을 다녀온 후 패딩을 옷걸이에 다시 건다. 그런데 안쪽을 보니 작은 충전재 깃털하나가 삐져나와 있다. 어쩐지 검은 옷을 입을 때마다 작은 깃털들이 옷에 달라붙어 있더라니. 깃털을 집어 빼니 에잉, 연달아 다른 깃털이 또 삐져나온다.
전에 몇 년 동안 잘 입던 패딩도 이렇게 조금씩 깃털이 빠지다 보니 어느새 패딩 두께가 얇아지고 보온도 잘 안 돼서 처분했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럴 땐 깃털이 빠져나오는 부분에 투명 매니큐어를 칠해놓으면 어느정도 깃털 빠짐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요즘 교회에서 고난주간이라고 '죽음'에 대한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가. 조금씩 조금씩 깃털이 빠지는 패딩을 보며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나도 이렇게 살아갈 날들이 조금씩 줄고 있는 거겠지. 보온 깃털이 하나 둘 빠져나가 결국 버렸던패딩처럼, 나도 남은 시간이라는 깃털이 다 빠져나가면 죽음을 맞이하겠지.
아니다. 죽음의 특성상 언제 어떤 사고를 만나 삶을 마감할지 모르는 일이다. 이런 경우는 예상치 않게 어디 날카로운 모서리에 패딩이 쭉 찢어져 결국 못 입게 되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으려나.
이렇게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지난날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후회 없이 살았나. 아니 인간인 이상 후회가 아예 없을 순 없겠지. 그럼, 그래도 좀 덜 후회하며 살았나. 후회되는 게 있다면 어떤 게 아쉬움으로 남는 걸까.
솔직히, 그동안 큰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 무난하게 학교와 군대, 직장 등의 통과의례를 거쳤으며, 정서적으로도 큰 결핍 없이 적당한 자존감과 안정감을 가지고 지내왔다. 결혼을 해서 가정도 이루었고 아내와 나를 닮은 두 아이들도 잘 자라주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물론 집 문제 때문에 전세계약이 만료될 때마다 이사를 갈지 아님 여기서 더 살지 스트레스를 좀 받고 있으나 '내 집 마련'도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이뤄지리라 믿는다.
양쪽 부모님이 아직 건강하시고,필요할 때 육아의 도움도 받고 있다. 직장 생활도 요즘은 큰 압박과 부담이 없어서 할만하다. 물론 언제 또 일 폭풍과 안 좋은 분위기가 찾아올지 모르지만.
어떻게 보면 큰 문제없이 평온하고 감사한 나날들인데, 한편으로는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든단 말이지. 뭐 때문일까? 그래서 다시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본다.
"자, 죽을 때 나는 과연 어떤 게 좀 아쉽고 후회가 될까?"
몇 가지 집히는 게 있기는 한데, 하나 꺼내놓을 건 이거다.내가 지금까지 받아온 것과 누려온 것들은 많은데 이걸 어떤 식으로든 나누고 흘려보내지 않았다는 것? 내가 가진 시간, 경험, 재정 등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조금 더 의미 있게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나의 안위의 범위가 가족이라는 바운더리 안에만 머무르는 것?
글쎄, 내가 조금 더 철이 드려고 그러나. 아니면 환절기에 마음이 좀 싱숭생숭해서 그런가. 아니면 사십을 앞두고 마흔의 사춘기가 찾아온 것인가.
그래, 살면서 이런 물음들을 마주하며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해갈 때가 있는 법이지. 요즘이 좀 이런 시기인 듯 싶다. 그러니 내면 속에서 올라오는 물음들을 에둘러 외면하지 말고,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진지하게 고민하지도 말고, 천천히 곱씹으며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런 때일수록 또 많이 산책하고 걸어야 하는 법. 몸을 움직이는 게 사고의 윤활제가 되어서 상념을 정리해 줄 터이니.
일단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성실하게 감당하면서, 고민은 고민대로 하는 것이다. 오늘의 셀프 물음 및 서술형 답 쓰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비 온 후 봄햇살이 사위를 메운다. 이런 때 집에 가는 길에 활짝 핀 목련을 한가득 눈에 담아 두고,사랑하는 우리 애기들을 꼬옥 안아주며 뽀뽀해줘야지. 아내에게 오늘도 고생했다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어제 읽다만 책도 마저 읽어야겠다. 동시에 하자, 동시에.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사는 것, 그리고 내 삶을 좀 더 의미있게 사는 방법 고민하기를.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모니터와 키보드에서 눈과 손을 떼고 잠깐 하늘을 좀 보고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