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에 내리는 각종 햇빛의 감도.
부활절 무렵 애무하는 꽃물결처럼 피부를 간질이는 햇빛,
저녁나절 가벼운 바람에 실려와서 당신의 목덜미를 쓸고 가며 벌써 저 앞에 걸어가는 처녀의 갈색 머리털을 번뜩이는 햇빛,
한여름 심벌즈를 난타하는 듯 금속성을 내며 찌르릉거리는 햇빛,
가을철 분수의 물줄기를 타고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햇빛,
한겨울 론 강 골짜기를 따라 살을 에도록 미스트랄 바람이 불 때도 창 밖에서 내다보면 언제나 '따듯한 겨울'의 환상을 주는 노랗고 투명한 햇빛,
베란다의 베고니아 꽃 속에 자란자란 고이는 햇빛,
작은 커피 잔 위로 플라타너스 잎새들 사이로 스며 나와 요령 소리를 내는 은빛 반점의 햇빛.
_ <행복의 충격> 김화영
다시 문장 감수성이 풍부해진 걸까. 어떤 책을 읽어도 시들시들 재미없고 지루하더니, 요즘 다시 이런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에 안긴다. 읽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햇살의 감도가 느껴지고 상상되는, 기똥차고 아름다운 문장들이다.
하루가 팍팍하고 일이 많다. 그럴 때 일상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먼 곳으로 여행을 가는 상상을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다. 나의 버킷리스트. 언제나 걸어볼 수 있을까. 아득하고 아련해서 가슴이 시리지만, 그래도 상상해본다. 각종 햇살의 감도를 느끼며, 풍경을 마음에 담으며, 순례길을 걷는 내 모습을.
지금 당장 산티아고를 걸을 순 없다. 그렇지만 지금 여기가 또 하나의 순례길이라 생각하고, 나도 민감하게 햇살을 느껴봐야지.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카페를 지나가면서,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 집 앞 놀이터를 지나가면서.
어느 외국인에게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낯설고 이국적인 여행지로 여겨질 텐데. 그런 여행자의 눈으로, 지금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오감을 열어 향유해야지. 그래, 지금 당장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여기가 낯선 여행지라는 생각으로. 김화영 작가가 햇빛을 이토록 세심하고 시적으로 분류하듯. 그렇게 주변의 것들을 낯설게 관찰해 보기로.
오늘의 햇빛은 가벼운 바람에 실려와서,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햇빛. 자란자란 고이는 햇빛. 플라타너스 잎새들 사이로 스며 나와 내 목덜미를 간질이는 햇빛.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