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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Jun 21. 2021

여름의 기쁨과 슬픔

여름, 아이, 그리고 아토피


모자동실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사분이 들어오셨다. 흰 천으로 몸이 싸매어 있는 조그마한 아이와 함께.



"축하드려요. 산모도 아기도 건강합니다. 아내분 오실 때까지 아기 안고 계시면 되세요"



그렇게 아기가 내 품에 안겼고 나는 아빠가 되었다. 그해 여름은 더위를 모르고 지나갔다. 아기의 호흡, 표정, 향기, 움직임에 어쩔 줄 몰라했고 회사에서도 문득 떠오르는 아이 생각에 두둥실 떠다녔다.



8월 중순이 되면 아이의 생일을 기념하며 축하했다. 동시에 나와 아내는 '엄마 아빠가 된 지도 이제 1년이 됐구나, 2년이 됐구나' 하며 감회에 젖었다. 한여름,  아이의 생일을 맞는다는 건 그렇게 가족이 함께 자라 가는 걸 기념하고 추억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여름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아토피 때문이었다. 아이는 온도와 습도가 높아지는 여름에 증상이 더 심해지는 여름 아토피였다. 다른 계절에는 잠잠하던 아이의 피부가 날이 더워지면 점점 올라왔다. 특히 목과 팔이 접히는 쪽, 무릎 뒤쪽이 가렵다며 긁었다. 계속 긁으면 덧나고 상처가 나기에 가렵다는 부분을 문질러주기도 하고 찰싹찰싹 때려주기도 했다. 그마저도 가려움증이 심할 땐 소용이 없었다.



이제 여름이 온다는 건 아토피와의 사투가 시작됨을 의미했다. 아내는 틈틈이 아토피에 좋다는 음식, 약 등을 검색했고 아토피 치료로 유명한 병원을 찾아다녔다. 아이가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다는 게 알려지자 주위에서도 아토피에 효과가 있다는 비누, 로션 같은 걸 추천해주고 선물해줬다. 하지만 어느 것도 아이의 가려움증을 없애주지 못했다.



낮에는 그래도 아이가 괜찮았지만 밤이 문제였다. 깨끗하게 씻기고 아이를 재워도 한두 시간쯤 후부터 아이는 가려움에 목과 팔과 무릎을 긁었다. 차가운 물에 적신 손수건을 대주기도 하고 로션도 다시 발라줬으나 아이는 가려움에 고통스러워하며 계속 더 긁으려 했다. 긁어서 피부 손상이 일어나면 약해진 피부에 염증이 생겨 더 가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기에 아내와 나는 그저 문질러주며 아이의 가려움증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여름의 밤은 길고 길었다.






한 번은 유치원 여름 방학기간이 시작되어서 아이를 어머니 집에 잠시 맡기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아이가 밤에 자다 보면 가려움증이 심해지는데 이때 아이를 시원하게 해주는 게 그나마 도움이 된다고 당부를 드렸다.



사흘 후 어머니 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그런데 아이 머리가 7-80년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짧은 산골 소녀 머리로 바뀌어 있는 게 아닌가. 어머니는 목을 덮은 머리가 잘 때 아이를 더 덥게 하고 가려워하는 것 같아 단발로 잘라주었다고 했다.



"엄마! 그래도 그렇지 우리한테 물어보고 자르지 얘 머리를 이렇게 잘라 놓으면 어떻게 해요!"



어머니의 심정이 이해는 갔지만 당시엔 아이를 보자마자 속상한 마음이 커서 버럭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짧아진 아이의 머리를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다단했다.  '머리카락이 목을 덮지 않으면 확실히 좀 더 시원해지니까 덜 가렵겠지' 하면서도 '그래도 이렇게까지 짧게 잘라야 하나'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작년에도 여지없이 더위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7월이 되고 8월이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아이가 밤에 뒤척이지 않고 곤히 잤다. 이때쯤 피부에 각질이 일어나고 거칠어지는데 살갗이 여전히 매끄러웠다. 이따금씩 긁긴 했으나 잠깐 긁고 말았고 피부도 진물이 나거나 올라오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 아이가 자라면서 면역력이 더 생긴 걸 수도 있고, 아내가 아이에게 꾸준히 먹인 한약 덕분일 수도 있다. 발라주던 약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셋 다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중요한 사실은 아이가 더 이상 피가 배도록 긁지 않았고 가려움에 고통스러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설마설마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곤히 잠든 아이를 보며 지나간 여름들을 생각한다. 아이와 처음 만나 설레고 신기했던 여름, 힘겹고 처절하게 아토피와 씨름했던 여름, 짧은 단발머리의 아이를 보면서 안쓰럽고 짠한 마음이 들었던 여름, 그리고 선물처럼 찾아온 작은 기적 같은 여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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