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느덧 일곱 살이 되었다. 흰 천에 몸이 싸매어진 채 품에 안겼던 작은 아기가 이렇게 자랐다. 왠지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아이만 훌쩍 자란 느낌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아이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날까 싶어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반색을 하며 찬성했다.
이번 여행에서 아이가 가장 기대하는 일정은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는 정민 삼촌 집에 가는 것이다. 아이는 강아지를 유별나게 좋아한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도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거라고 말한다. 한 때이겠거니 했지만 5살 때부터 시작된 강아지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돌아보니 나도 어렸을 때 진돗개를 키우는 게 꿈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당시 '돌아온 진돗개 백구'라는 이야기가 유행했다. 백구라는 진돗개가 할머니와 함께 진도에 살고 있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멀리 팔려갔지만, 길고 긴 여정 끝에 다시 할머니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였다.
어린 나는 이 스토리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고 아버지에게 진도에 가서 흰 진돗개를 사 오자고 몇 날 며칠을 졸랐다. 지도 속 진도를 보며 자동차를 타고 진도를 가는 상상, 집 앞마당에 하얀 진돗개 강아지를 데리고 노는 상상을 거의 매일 했던 것 같다.
진돗개를 키우는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어머니는 내게 '진돗개를 좋아하는 이레에게, 엄마가'를 손수 적어 놓으신 '돌아온 진돗개 백구'라는 책을 사주셨다. 어쨌든 나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백구를 키우는 꿈을 꿨으니 아이의 소원, 강아지 집에서 키우기도 앞으로 더 오래 지속될 것 같다.
제부도에 예약한 숙소로 가는 길에 아이가 대뜸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한다. '밤하늘의 별을'이라는 노래란다.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인가보다 하고 검색을 해서 틀어줬는데 아무리 들어도 아이들 노래 같지가 않다. 그래서 물어보니 스쿨버스에 같이 타는 언니가 차 안에서 계속 틀고 또 부르는 노래라 한다.
밤하늘의 별을 따서 너에게 줄래~
너는 내가 사랑하니까
더 소중하니까~
대중가요를 꽤나 진지하게 따라 부르는 7살 아이를 보니 속에서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얼마나 듣고 불렀는지 가사를 거의 외운 듯하다. 얘가 이제는 이런 음악에 관심을 보일 나이가 됐구나 하면서도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싶었다.
다시,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 SES의 '너를 사랑해'와 핑클의 '영원한 사랑'은 여자 아이들의 단골 노래였다. 야영을 가도 각 반마다 춤에 좀 관심 있는 아이들은 다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나도 이 노래들이 좋았다. 여자아이들 앞에서 티는 안 냈지만.
차 안에서 벌써 몇 번째 이 노래가 반복돼서 나도 외울 지경이다. 아이에겐 그만큼 이 노래가 인상 깊게 다가왔나 보다. 내가 한 때 가요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가수들을 좋아하고, 음악에 심취했던 것처럼, 아이도 그럴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아이가 그 나이 때 좋아하는 취향을 존중해주는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보았다.
제부도 여행 중 하이라이트는 바이킹이었다. 제부도 안에 조그마한 놀이동산이 있는데 아이가 바이킹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타고 싶다고 했다. 젊은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며 타는 게 재밌어 보였나 보다. 아직 아이가 키도 안 되는 것 같고 또 무서워할 것 같아서 다음에 타자고 했으나 거듭 타자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표소에 물어보니 보호자와 같이 타면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 직접 경험해봐야 무서운 줄 알지'
마침 사람이 없어 바이킹에는 나와 아이 단 둘만 타게 됐다. 바이킹을 조종하는 아저씨가 만약 아이가 너무 무서워하면 손으로 엑스자 표시를 해달라고 얘기했다. 그동안 조그마한 유아용 바이킹은 타봤으나 이렇게 성인용 바이킹은 처음 타보는 아이. 이 순간을 담고자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촬영했다.
그렇게 바이킹이 점점 움직이는 폭을 넓혀 가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내가 속이 울렁거리면서 거북해진 것. 아이는 바람이 시원하다며 오히려 웃고 있다. '설마 내가 벌써.. 아니겠지' 하며 아이에게 손가락으로 "저기 바다 보인다, 바다 봐봐!' 하는데 속이 더 울렁거렸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손으로 엑스 표시를 하며 SOS를 사인을 보냈다. 그때 확성기로 들리는 담당자분 소리.
"아이가 아직은 괜찮아 보이는데, 많이 무섭대요?"
"아니요! 제가! 제가 안 되겠어요!!"
바이킹에서 내려온 후 저녁 내내 속이 울렁거려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바이킹을 잠깐 타고 이렇게 속이 메슥거릴 만큼 나이가 든 건가. 씁쓸하면서 또 우스웠다. 아이는 너무 재밌어서 또 타고 싶다고 했다. 아무래도 놀이기구 타는 건 아이가 벌써 나를 앞지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