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안 Jul 26. 2021

몇 잔의 커피값을 아껴


"누나, 그럼 우리 서로 잘 모르니까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내 생애 첫 연애는 시작되었다.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한다는 건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되는 것과 같았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한 사람이 생기니 그동안 알고 있던 노래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예전에는 그저 다른 사람 얘기로 들렸던 사랑 노래들. 이제는 내가 노래 속 주인공이 되어 흥얼거리고 있었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내 모든 게 다 달라졌어요~' '나에게 넌 내 외롭던 지난 시간을 환하게 비춰주던 햇살이 되고~'


쑥스러운 얘기지만 그녀는 특히 내 미소가 따듯하다고 말했다. 뭐, 당시 서로에 대해 푹 빠져 있던 시기였으니 어떤 표현인들 못할까. 그러면서 노래를 하나 소개해 줬는데 그 노래의 가사 중에 '물을 준 화분처럼 웃어 보이네'를 들을 때마다 내가 떠오른다고 얘기했다.



'주말에는 영화관을 찾지만

어딜 가든지 음악을 듣지만

조금 비싼 카메라도 있지만

그런 걸 취미라 할 수는 없을 것 같대~


사람과 사람 사이 흐르는 온기를 느끼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면서 물을 준 화분처럼 웃어 보이네~'



노래의 제목은 <취미는 사랑>. 영화나 음악 감상, 사진 찍기가 아닌 사랑을 취미라고 말하는 다소 엉뚱한 '그녀'가 가사의 주된 내용인데 싱그러운 멜로디와 잘 조화를 이루는 사랑스러운 노래였다. 그런데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유독 콕 박히는 가사가 있었으니,


'몇 잔의 커피값을 아껴 지구 반대편에 보내는~'


사실 그즈음에 TV에서 어느 연예인이 일대일 아동 후원을 하고 직접 외국에 있는 그 아이를 만나고 오는 프로그램을 봤다.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에 나도 후원 신청을 해볼까 했지만 매달 나가는 후원 금액이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여자 친구를 통해 이 노래를 알게 된 건데 들으면 들을수록 내게 이 가사는 이렇게 들리는 게 아닌가.


'커피값 몇 잔만 아끼면 너도 후원할 수 있잖아~'


결국 고민 끝에 나는 정기후원을 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커피도 비싼 커피 10잔 정도는 아껴야 후원할 수 있는 금액이긴 했다. 그렇지만 그녀와 만나게 된 것에 대한 감사함과 마침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그녀를 통해 이 노래를 듣게 된 게 모종의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동인도의 남자아이를 후원했는데 2년 후에 인도의 내부적인 사정으로 더 이상 후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자선단체에서는 혹시 다른 아이를 후원해 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 왔고 이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딸아이와 비슷한 나이 때의 여자아이를 후원하게 되었다.


언젠가 딸아이가 자기는 왜 언니도 없고 동생도 없냐고 물었을 때, 같이 살진 않지만 태국이란 나라에 사는 언니가 한 명 있다고 얘기해 줬다. 기회가 되면 딸아이와 함께 그 아이를 만나러 가고 싶다. 8년 전 후원을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지금 아내가 된 '그녀'도 함께 말이다.






미소가 어울리는 그녀 

취미는 사랑이라 하네

만화책도 영화도 아닌 

음악 감상도 아닌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취미가 같으면 좋겠대

난 어떤가 물었더니 

미안하지만

자기 취향이 아니라 하네


주말에는 영화관을 찾지만

어딜 가든지 음악을 듣지만

조금 비싼 카메라도 있지만

그런 걸 취미라 할 수는 없을 것 같대


좋아하는 노래 속에서 

맘에 드는 대사와 장면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흐르는 온기를 느끼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면서

물을 준 화분처럼 웃어 보이네


미소가 어울리는 그녀 

취미는 사랑이라 하네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그냥 사람 표정인데


몇 잔의 커피값을 아껴

지구 반대편에 보내는

그 맘이 내 못난 맘에 

못내 맘에 걸려

또 그만 들여다보게 돼


내가 취미로 모은 

제법 값 나가는 컬렉션

그녀는 꼭 남자애들이 

다투던 구슬 같대


그녀의 눈에 비친 삶은 

서투른 춤을 추는 불꽃

따스함을 전하기 위해 

재를 남길 뿐인데


미소가 어울리는 그녀 

취미는 사랑이라 하네


<취미는 사랑> _ 가을방학 







매거진의 이전글 풋고추 라면과 비겁한 거짓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