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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Sep 26. 2021

나의 특별한 친구



그 녀석을 처음 본 건 중학교 1학년 늦가을이었다. 가냘프고 여리여리한 몸에서 어쩜 그리 맑은 소리가 나던지. 그 녀석이 내는 소리가 귀를 타고 들어와 온 몸을 휘감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 녀석의 정체는 플루트라는 악기였다. 



'와 저런 악기도 있구나. 소리 진짜 좋다' 



그때 우아한 은빛을 반짝거리며 청아한 소리를 내던 그 악기는 이 세상 악기가 아니라 천상에서 직수입된 악기 같았다. 그로부터 한 달쯤 뒤 나는 그 천상계의 악기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보게 되는데, 바로 우리 집에서였다.  



"엄마 이게 뭐예요? 이거 플루트잖아요! 이게 여기 왜 있어요?" 


"아, 그거 교회 박선생님이 다음 달부터 플루트 알려준다고 해서 집사님들이랑 같이 배우려고 샀다" 



케이스 안에 가지런히 놓여 반짝이는 플루트를 보며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 플루트는 내 거다.' 



그리하여 매주 일요일 오후 집사님 반 레슨이 끝난 후 뒤이어 나도 레슨을 받게 되었다. 꿈만 같았다. 그 우아하고 청아한 악기를 내가 불게 되다니. 악기에 대한 설렘이 있어서 그런지 레슨 진도는 빠르게 나갔다.



3개월쯤 후부터는 샾(#)이나 플랫(b)이 없는 비교적 간단한 곡들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1년쯤 교회 찬송가에 있는 곡들도 연주가 가능하게 되었을 즈음에 집사님이기도 하셨던 레슨 선생님은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내가 주일 예배 때 피아노와 더불어 플루트로 반주를 하게 하셨다. 



돌아보면 레슨 선생님의 그 아이디어가 플루트를 꾸준히 연주할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고등학교에 가서 레슨을 받기 어렵게 되어도 일요일 오전에는 예배곡들을 연습하고 또 예배를 드리면서 플루트를 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중학교 1학년 때 플루트를 처음 알게 된 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플루트를 가까이하며 지냈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중 동아리 소개 시간이었다. 이때 플루트 동아리 선배 한 명이 나와서 김범수의 '보고싶다' 연주를 하는데 중1때 처음 플루트 연주를 듣고 멍해졌을 때처럼 그렇게 마음이 울렸다. 그동안 찬송가나 비교적 쉽게 편곡된 클래식곡만 연주했는데 가요를 플루트로 연주하니 어찌나 또 가슴이 설레던지. 플루트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들어간 동아리 안에서 좋은 선배와 동기, 후배들을 만나게 되었고 함께 연주회도 하고 놀러 가기도 하면서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플루트란 친구는 내게 다시 못할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을 선물해주었으니, 바로 군악대에서의 군생활이었다. 나는 비전공자였고 애초부터 일반병으로 지원을 했기에 군악대로 자대 배치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훈련소에 입소해서도 군악대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마침 사단 군악대 내에 플루트병이 오랫동안 공석이었고, 훈련소에서 신상 기록 란에 취미를 플루트 연주로 적었던 게 눈에 띄어 실기 면접을 거쳐 결국 군악대에 배치가 된 것. 군악대에서 물론 힘든 점도 없지 않았으나 그보다는 군생활을 하며 플루트를 불고, 관악 합주를 하고, 여러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감사함이 더 컸다.


 




여기에 이 플루트라는 친구는 결정적으로 나의 인생에 제2막을 만들어 주었다. 바로 지금 아내와의 만남이다. 전역 후 교회에서 플루트로 특별 연주를 했는데 그게 당시 아내에게 엄청난 콩깍지를 씌웠고 결국 결혼에 이르게 했다. 나중에 한 아내의 고백,

 

'그때 그 플루트 부는 모습에.. 그래 그게 계기였던 거 같아'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한동안 플루트와 멀어졌다가

 아이가 여섯 살이 되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다시 꺼낸 플루트. 아이가 집에서 피아노를 띵똥 띵똥 칠 때 나는 옆에서 휠릴리 플루트를 분다. 그리고 이따금씩 생각한다. 이 플루트라는 친구가 내게 선물해준 소중한 추억들과 만남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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