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_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관찰력 기르기
대학생 시절 시 수업을 들을 때면 1학년 때부터 쭉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낯설게 보기'입니다. 낯설게 보기란 기존의 사물과 평범한 일상을 다른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을 말합니다. 시와 소설을 쓸 때는 특히 일상의 어떤 한 부분을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 울림을 주고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낯설게 보기'는 문학을 쓸 때뿐만 아니라 기획을 할 때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낯설게 보기가 중요한 이유는 기획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이를 재밌고 다르게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사물과 일상을 다르게 보기 위해서는 '관찰력'이 필요합니다. 기획의 끝에서 우리는 다른 페르소나인 '부캐'를 이용해 다른 시선으로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때도 세밀한 관찰력이 필요한데요, 관찰력은 근육과 같아서 매일 낯설게 보는 훈련을 통해 꾸준히 길러야 합니다.
낯설게 보는 훈련을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의 독특한 발상과 기획력이 돋보이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영감을 얻는 것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시와 소설, 드라마와 영화, 웹툰과 웹소설, 여러 책과 예능 등 많은 콘텐츠에서 우리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최근 가장 인상 깊었던 콘텐츠는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되었던 <유미의 세포들>입니다.
<유미의 세포들>은 이동건 작가가 쓴 웹툰으로, 김유미라는 주인공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들을 세포로 표현해 인간의 복잡하고 섬세한 심리를 잘 묘사했습니다.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이성과 감성, 사랑, 불안, 배고픔 등 추상적인 감정과 기분을 '세포'로 의인화해서 표현합니다. 개인마다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듯, 그 인물의 성격을 관장하는 주된 세포가 '프라임 세포'가 되어 세포들을 이끕니다.
유미의 세포들 웹툰에서 제가 인상 깊게 바라본 회차는 '개구리'편인데요, 사랑 세포가 프라임 세포인 유미가 소개팅 상대로 나온 구웅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풀어내었습니다. 유미는 3년째 솔로인 직장인으로 짝사랑하던 회사 동료 우기가 자신의 아는 형인 구웅과의 소개팅을 제안해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주선자의 체면이 있으니 몇 번의 만남을 이어갔지만 연애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죠. 유미에게 첫눈에 반한 구웅은 저녁을 같이 먹자고 연락하는데, 마침 유미의 핸드폰 액정이 나가서 연락이 끊겨버렸습니다. 설상가상 몸 상태가 안 좋아진 유미는 조퇴를 하고 회사를 나서는데 비까지 내려버리죠.
모든 걸 포기한 채 회사를 나서려는 순간, 구웅이 나타나 유미에게 우산을 씌워줍니다. 답장이 안돼도 구웅은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유미의 회사 앞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몸이 안 좋던 유미는 그대로 풀썩 쓰러지고, 구웅은 유미를 안고 병원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갑니다. 옷이 다 젖어 갈아입을 옷이 필요할 것 같다는 간호사의 말에 구웅은 망설임 없이 옷을 사러 나가죠. 얼마 후 병실에서 일어난 유미는 구웅이 산 '개구리가 그려진 원피스'를 봅니다. 구웅이 자신을 위해 갈아입을 옷을 샀다는 사실을 알고 유미는 벅찬 감정을 느낍니다. 애써 그의 호감을 외면하던 유미는 자신을 향한 마음과 노력에 감동받아 사랑에 빠지게 되죠.
이 순간, 유미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 앞으로 '개구리' 한 마리가 찾아옵니다. 개구리는 경계 대상도 초대받은 손님도 아니었지만, 문지기는 귀여우니 일단 들여보내기로 합니다. 비가 많이 온 그날 개구리는 유미의 마음에 들어와 세포들을 구하고, 입맛이 없는 출출이의 입맛 봉합 수술을 성공시키고, 스트레스로 오염된 마을을 깨끗이 청소합니다. 또 히스테리우스가 내려오지 못하게 울타리를 치고, 무인도에 표류한 사랑이와 본심이를 찾아내죠.
알고 보니 개구리는 구웅의 사랑 세포가 유미의 마음에 들어오기 위해 변장한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언젠지 모르게 그 사람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있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상대방의 사랑 세포가 변장을 해서 아무 의심 없이 내 마음의 문을 통과하는 장면으로 묘사해 정말 감탄하며 본 회차였습니다.
이동건 작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심리를 다르게 표현하는 '낯설게 보기'를 정말 잘하는 작가입니다. 유미의 세포들이 끝난 후 최근 연재 중인 <조조 코믹스>에서는 '불행도 하나의 행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불행의 관념을 깨부쉈습니다. <조조 코믹스>에서는 불행이 일어날 때마다 ‘럭키 포인트’가 적립되는데, 각 등장인물의 관리자는 행운이 필요할 때 럭키 포인트를 써서 행운이 일어나게 만듭니다.
이 웹툰 덕분에 저는 지하철을 놓치거나 실수를 하는 등 아쉬운 상황이 발생할 때 '아 럭키 포인트가 또 쌓였네~ 나중에 써야지' 하고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기존의 관념을 다르게 보아 새롭게 잘 만든 콘텐츠는 개인의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줄 수 있고, 또 다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뇌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줍니다.
관찰력을 기르는 두 번째 방법은 쉽게 지나치는 일상의 한 순간을 포착해 다르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반복하는 행동이나 순간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출퇴근길이 있죠. 저는 집에서 회사가 있는 강남까지 지하철 3번, 버스를 2번 갈아탑니다. 편도 1시간 반, 왕복 3시간 동안의 출퇴근 시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출근도 안 했는데 이대로 퇴근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며 잠을 자기 일쑤였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렇게 살다 보니 하루가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출퇴근 때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계절과 낮밤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빛과 명암, 바람의 온도와 습도, 매번 다른 구름의 모양을 보며 같은 하루도 다른 날처럼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평범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사소한 행복을 자주 느끼자'는 제 가치관이기도 한데요, 제 인생 영화로 손꼽는 '어바웃 타임'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주인공은 행복을 위한 아버지의 공식에 따라 하루는 평상시처럼 정신없이 흘려보내고, 다음날에는 시간 여행을 통해 어제로 가서 다시 하루를 살아봅니다. 다시 살아가는 하루는 상사에게 혼나 위축된 동료에게 농담을 던져 그를 웃게 만들고, 점심을 사러 온 점원의 친절한 미소와 목소리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재판의 중압감에서 벗어나자 법원은 너무 아름답게 보이고, 시끄럽게만 느껴졌던 지하철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의 헤드폰 소리에 신이 납니다. 주인공은 다시 하루를 살면서 어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발견하고, 이 순간들이 모여 행복한 오늘과 내일이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여행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데,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대부분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 좋다'라고 하더라구요. 여행을 통해 휴식을 취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견문을 넓힐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는 일상의 작은 변화를 특별하게 느끼는 것이 낯선 곳으로의 여행보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훨씬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 팀은 아버지가 말한 행복의 공식을 몸소 체험한 후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난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단 하루를 위해서라도.
그저 내가 이 날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하고 즐겁게 매일 지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우린 우리 인생의 하루하루를 항상 함께 시간 여행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짜증 나고 지루하고 화나는 일들의 연속이었나요? 그렇다면 잠시 핸드폰은 넣어두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에 가슴이 뻥 뚫려 고민이 사라질 수도, 밤하늘에 걸린 보름달 덕분에 작은 소망이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늘 보기가 익숙해진 다음에는 일상에서 스쳐 지나갔던 내 주변의 상황과 인물, 사물을 발견해보세요. 뜻하지 않은 기쁨과 행운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나의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어느새 나의 몸, 나의 상황, 나의 감정까지 다르게 보이는 지점이 생깁니다. 이때 떠오르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기억해두세요. 이 감정들은 나의 몸과 마음에 각인되어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만큼 행복한 오늘, 오늘만큼 행복한 내일을 위해 우리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삽시다. 오늘 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