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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실 Oct 20. 2021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세상

13_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꾸준히 도전하기



일을 하다 보면 바쁜 시즌이 꼭 있죠. 실내 스포츠는 10월부터 개막이기 때문에 저는 보통 여름부터 기획을 시작해서 개막 전까지가 제일 바쁜 시즌입니다. 저희 회사는 구단의 경기장 내외부에 들어갈 장치장식물과 인쇄물을 비롯해 SNS 디자인까지 하는 경우가 있어 시즌이 시작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저는 기획자 겸 카피라이터로 시즌 디자인 기획을 하고 디자인에 필요한 텍스트를 고안해내며, 디자인물에 들어가는 모든 글을 교정/교열 보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그날도 정신없이 일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SNS 디자인에 들어간 경기 일정을 확인하다 어딘가 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똑같은 데이터를 전에 보고 오케이를 했는데, 지금은 다른 부분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다시 몇 번을 확인했지만 틀린 게 맞았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구단에서 받은 데이터가 처음부터 잘못 기입돼있었던 겁니다. 망연자실하며 '저번에 나갔던 데이터는 이미 인쇄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팀장님께 어떻게 말씀드리지' 등등 짧은 순간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제 잘못을 피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피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게 아니니 혼나더라도 빨리 말씀드려서 일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잘못된 부분을 말씀드리자 팀장님은 곧바로 인쇄 업체에 전화를 하셔서 인쇄가 되었는지 확인하셨습니다. 납기일에 맞추기 위해 인쇄는 다 된 상황이었고, 불행 중 다행히도 잘못된 페이지만 다시 인쇄를 하면 전체를 재인쇄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팀장님은 업체에 다시 인쇄를 부탁드리고 한숨을 쉬시고는 다시 한번 교정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크게 혼을 내지 않으셨는데도 제 스스로가 용납이 안돼 죄송하다 말씀드리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회사에서 꼼꼼히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고 있었고, 스스로도 잘 해내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하는 제가 한심했습니다. 이틀 남은 납기일에 맞추기 위해 인쇄를 다시 하고 판갈이를 하셔야 하는 인쇄 업체 분들께도 너무 죄송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정말 싫어해서 죄책감에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터덜터덜 집으로 와서 밥도 먹지 않은 채 침대에 웅크려서 유튜브를 보는데, 오징어 게임으로 인기가 오른 배우 허성태 님이 2016년도에 <말하는 대로>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신 인터뷰가 추천 영상으로 떴습니다. '뺨 맞으면서도 즐거웠어요'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썸네일에 이끌려 홀린 듯 클릭했죠.






이 프로그램은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듯 마이크를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30대까지 8년 동안 대기업에서 재직하셨던 허성태 배우는 어느 날 회식을 마치고 티비에서 '배우 오디션'이라는 배너를 보고 술김에 신청을 했다고 합니다. 재래시장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자란 그는 남들이 말하는 좋은 직장에 취직해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효도를 하는 길이자 삶의 목표라 믿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배우'라는 꿈이 가슴속에 있었고, 실상 회사를 다니며 매 순간 연기를 했다고 합니다기분이 안 좋은데도 윗분들의 눈치를 살피며 기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느라 연기를 한 거죠. 너무 긴장을 해서 손에 땀이 폭포 같이 오며 나중에는 손바닥이 하얘질 정도로 다한증이 심했다고 합니다. 고민 끝에 친구와 지인에게 배우의 꿈을 말했지만 돌아오는 건 비웃음이었습니다. 오직 단 한 명, 자신의 꿈을 지지해준 아내 덕분에 과감히 퇴사를 하고 배우 오디션에 참가해 최종적으로 5등을 이뤘습니다. 


그대로 성공 가도를 달릴 줄 알았지만 이후 긴 무명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단역부터 차근차근할 수 있는 배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남는 시간에는 단기 알바를 했다고 합니다. 맨바닥에 헤딩을 하면서도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연기로 돈을 벌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를 보고 다른 직장인 동료들은 하나같이 대단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더 대단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누구나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는데,
내 삶이나 가족이나 다른 이유 때문에 꾹꾹 누르고 살아가는 거잖아요.
제가 볼 때는 현실에서 묵묵히 직장을 다니고 있는 여러분들이 더 대단합니다. 


이 말을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울컥 터졌습니다.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욱 대단하다는 말 한마디가 죄책감과 자책감으로 범벅된 제 마음을 위로해주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35년 이상 한 직장에서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루틴으로 일을 하신 아버지가 더욱 위대해 보였습니다. 아버지도 힘든 순간이 많으셨겠죠. 오늘처럼 혼자 울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테고,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 성실히 하루하루를 버티며 열심히 직장을 다니신 모습이 너무 존경스러웠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자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말고, 오늘의 실수와 자책감은 오늘 다 묻어버리자고 다짐했습니다. 내일 또 일을 해야 하는데 계속 자책해서 일을 못하고 다른 동료들에게 눈치를 주느니, 마음의 짐은 오늘 다 털어버리고 내일부터 다시 새롭게 각성해서 일을 하자는 생각이었죠.






허성태 배우는 퇴사를 권장하는 게 아니라 어떤 중요한 선택이 있을 때 '나를 사랑하는 방식을 표현할 수 있다면, "00야 사랑한다"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한 번쯤은 이기적인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합니다. 조금 더 일찍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더 많이 시간을 준비한다면, 자신보다는 조금 덜 힘들게 목표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이죠.


진심 어리게 말하는 그를 보며 현생에 바빠 잊고 있었던 저의 꿈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글을 쓰고 작가가 되겠다는 꿈 말이죠. 신기하게도 허성태 님의 영상을 본 이후 우연히 브런치 북 공모전을 발견해 이 책의 마지막 글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참 아리송합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고, 우연한 계기로 잘 풀릴 때가 있죠. 


우연이 기회가 되어 다가왔을 때 이를 알아차리고 시도하는 사람은 몇 없습니다.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잘 안될까'라는 생각 이전에 '나는 잘 될 때까지 도전과 실패를 몇 번이나 반복했나'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직업의 특성상 맡은 구단을 비롯해 다른 팀의 경기 결과까지 모니터링할 때가 많은데요, 정말 신기할 때가 많습니다. 작년에 우승했던 팀이 올해는 중하위권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작년에 하위권이었던 팀이 올해는 상위권이나 우승을 하기도 합니다. 이를 보면서 예전의 영광에 취해 노력을 게을리해서도, 좋지 못한 성적에 패배감에 젖어 있어도 안된다는 것을 크게 느꼈습니다.


하루하루 마지막 여행을 하듯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일과 삶에서 온전히 주도권을 쥐고 '나'로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제가 허성태 배우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해보자!'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제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든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일에 꾸준히 도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모르죠. 제가 허성태 배우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러분들과 만날 수 있을지. 그 순간을 위해서 저도 열심히 쓰고 일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스스로를 사랑하시고 언젠가 함께 만나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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