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유카
"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 _칼릴 지브란
진리를 아름다움으로 정의하기엔 세상의 진리엔 모순이 있다. 내가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려고만 하면, 핸드폰이 시야에 보이고 평소에는 잘 읽지도 않는 책들을 들추는 것처럼. 진리를 탐색하고 세상에 남기는 것은 모순덩어리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시간을 지나오며, 입에서 입으로, 인쇄에서 인쇄로 이어져 왔다. 그것의 근본을 찾는 일을 아직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니, 살아생전 진리의 본질을 찾는 일을 불가능하다 결론지었다.
진리를 아름다움과 구별하기보다는 진리는 곧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다고 믿는 편이 우리의 정신건강에 좋다. 숭배가 아닌 믿음은 사람과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다. 흔들리는 믿음은 인간이 직면한 삶에서 당연히 여겨야 하는 진리다.
굳건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의 내면을 우리가 일일 다 확인할 수 없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목회자도 사람이다. 사람이기에 온전하지 못하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말 뿐인 회개의 가벼움으로 자신의 죄에서 벗어나려 해선 안된다.
순간적 타락에 의한 잘못된 판단이 나를 죄에 올가미에 갇히게 했으니, '그 올가미를 끊어내는 회개의 속죄물로 내 죄는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죄를 사하시고, 세상을 징벌하며, 몇몇 사람에게만 고통이 전가된 종교적 프레임은 오늘내일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십자군 전쟁, 마녀 사냥은 현시대보다 더 끔찍했다. 인간에게 죄를 지었으면 죄로 인해 피해받았던 사람에게 먼저 죄를 고백한 뒤. 사죄를 하고, 피해자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 먼저다. 이러한 이야기는 성경에도 나와있다. 하지만 현시대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만 중심을 맞춰 자신 멋대로 종교를 해석하려 한다. '눈을 뽑아라, 팔을 잘라라.', 자신에게 해가 되고, 고통이 내재된 구절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자신의 자본과 이득이 되는 말들에만 혈안이 되어 맹신하는 것이 과연 종교일까?
죄를 짓고도 나는 하나님을 영접한 전/후로 나뉘어 모든 죄를 사함 받았다는 범죄자들은 과연 어떠한 능력으로 그들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은 것일까? 그 죄의 칼날에 삶이 송두리째 잘려나간 사람은 씻을 수 없는 얼룩을 몸에 새긴 체 살아간다.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지 못한 죄사함은 하나님이 주신 죄사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해결되지 않아 상처로 깊게 남아 지워지지 않는 죄의 칼날에 깊게 베인 상처.
욕심으로 가득 찬 이기적 시선을 두고, 각자의 해석이 난무하는 시대다. 그 중심에 나도 살고 있다. 평범하게 살고 싶어 상대를 배려하다. 상대의 꾐에 넘어가 가스라이팅도 당하고, 그 뒤 각자의 길을 걷고자 해체된 기획팀 사람에게 되려 내가 그들에게 피해를 줬던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시기를 건너고 있다. 잠이 오지 않아, 핸드폰으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보며 뜬 눈으로 날을 지새웠다. 그러면서 충동적으로 나와 팔로워 했던 이전에 나를 가스라이팅 했던 사람의 지인들을 모두 끊어내는 선택을 한 뒤. 자책에 빠진 하루의 시작.
아내에게 현 상황을 이야기했다. 아내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모든 내용을 듣고, 아내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속이야기를 한건 순전히 너의 잘 못이야.", "사람은 언제나 함께 할 수 없어.", "난 네가 다른 사람에게 약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선택한 일이고 이제 것 해온 일이면 지금 쯤이면 어느 정도는 성과는 보여야지.", "니 나이 30 후반이면, 돈 없어서 힘들다. 내상황이 이렇다. 저렇다.", "가타부타 다른 사람에게 구구절절 말하지 마.", "나도 이젠 좀 지친다."...
모든 이야기가 맞는 말이라서 어찌 대꾸도 하지 못했다. 대꾸를 하기보다는 순응을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발생되는 분노가 있다. 조절도 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발현되는 이 분노는 주체할 수 없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는 이성과 감성적인 이성으로 조절할 수 없기에, 나는 그렇게 또 내 분노를 표출하고 말았다.
쪽지에 적어놓은 미상의 작가의 문장을 되뇌었다. 혼자일 때 진짜로 혼자되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외로움으로 만난 관계는 그 끝이 언제나 좋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