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다신 그러지 마, 알겠어 엄마.
남이 키우는 강아지가 남기고 간 똥을 치운다.
남이 뱉어 놓은 담배와 침을 닦고, 쓴다.
남이 부러트린 의, 탁자를 폐기한다.
남이 자신의 토사물로 자신이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흔적을 남겼다.
치운다.
모든 걸 치운다. 다시 그렇게 하지 않겠지 하며 치운다.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치워야 다른 이가 더러워진 것을 보지 않고 깨진 창문 신드롬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는 남이 한 일을 책임져야 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 선택 또한 내가 한 것이기에.
결과론으로 현재를 논하기에는 과정에서 오는 고통도 있기에.
그 과정의 기간 동안 고통에 처해진 당사자가 어떠한 시간과 생각을 가지고 일을 처리하기도.
어떤 일을 감내하며 버텨냈는지 알지 못한다.
상대성. 그 모든 것은 돌이켜 보면.
상대와 나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과 선이 누군가에게는 따스하게.
누군가에게는 차갑게 느껴지는 건.
그것을 강요해서도.
그것이 마치 모든 것을 구분 짓는 정의의 구분선으로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
다신, 그러지 마.
알았어, 엄마 : )
이 대사에 마음이 꽂힌 이유를 찾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약하다고 밖에 말할 수밖에.
약한 마음이 계속되는 날이 지속되면, 별 수 있나. 그냥, 지나가게 해야지.
어차피, 누구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있지 않겠나.
아프면 아픈데로 그냥 아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