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유카
습관은 반복의 과정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반복이 계속되어 지루한 일상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갈 때. 계단식 성장이 진행된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이와 더불어 비선형적 성장 그래프를 통해 인생의 도전과 실패가 축적되었을 때 성공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또한 아니다.
인생의 성장은 무수히 많은 구렁텅이와 표지판 없는 길들의 합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하나의 비포장 도로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울퉁불퉁하고, 길을 잘 못 들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뒤돌아 나와야 하는데 돌아선 길이 막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없는 길을 무수히 많이 왔다 갔다 하면서 길이 생성되고 만들어진다. 그렇게 하나씩 파인 구덩이을 매워가면서 없는 길도 만들어간다. 수많은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가 아물만하면 또 상처가 생겨 상처에 고름이 생기기도 한다. 영영 아물지 않는 상처가 지속되어 더 이상 낫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신기하게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어느새 아물고 그곳에 새살이 돋아난다. 더 강해지기 위해 굳은살이라는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방패 같은 층이 생겨난다.
나는 그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다. 내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남이 정해 놓은 것이 진실인 줄 알고 살았던 과거를 뒤로 한다. 남의 의견이 아닌 삶을 통해 배웠던 경험과 직감을 얻기 위해 모든 상황에 직접 뛰어든다. 실패를 통한 성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남의 말에 있지 않다. 온전히 삶에 뛰어들어 직접 경험한 것에서 얻을 수 있다.
생각하지 않은 삶은 남이 생각하도록 만들어 놓은 시스템적 사고에 스며들어, 마치 다른 이가 설계해 놓은 생각과 일들을 자신이 선택한 것처럼 느끼는 사회다.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수면적 상황에서 물리적 환경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심코 했던 행동과 선택들이 누군가 설정해 놓은 설정값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들이 있다. 사이보그로 인간과 확연히 구별되었던 과거의 시대를 지나 이젠 사이보그가 구별되지 않는 AI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AI가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버전이 업그레이드되는 것처럼 우리 삶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불편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어려운 도전 과제 앞에 인고의 시간을 감사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 점점 사회는 편하고, 자신의 일과 삶 이외의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편협한 생각과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일들에 시간을 빼앗기고 산다.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며 남을 돌봐야 하는 상황 속에서 사람 냄새나는 공동체에서 희생하는 것을 꺼려한다. 그것은 비단 남의 문제만이 아니다. 나도 점점 그렇게 물들어가고 있다. 깨어 있어야 한다. 인간의 지성을 깨우쳐서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만남과 일들을 지속적으로 늘려가야 한다. 오늘 한 기사를 읽었다.
<5000명이 한꺼번에 회사에서 권고퇴직을 당했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AI 시스템.>
자본주의 규모의 경제는 언제나 효율과 수익성이라는 함정에 빠져있다. 여기서 두려운 것은 그 함정을 벗어나려고 하는 사업가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양극단의 빈부 격차는 계속해서 깊어지고 있다. 사회와 교육은 그것을 받아들이라 말한다. 그리고 수긍하라고 한다. 그러면 편하다고,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그래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체 본인의 동굴에서 빛도 없이 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순간의 빛"을 한 번에 받아들이는 순간 그 사람은 실명한다.(감각의 역치를 넘어선 위험한 자극을 한 번에 받아들이면 이렇게 위험하다.)
조금씩 외부자극과 충격을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 순간의 충격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쪽지에 적어놓은 미상의 작가의 문장을 되뇌었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개체는 소멸된다. 이기적 유전자라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적자생존의 제로섬 게임에 원치 않게 등 떠밀린 경우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