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유카
나에게 집은 안락함 보단, 도망쳐야 할 공간으로 기억된다. 숨 막히는 곰팡이 냄새와 벽지를 뒤덮은 검은 반점의 얼룩은 나에게 환공포증을 안겨주었다. 내 방 가득 뒤덮은 쾌쾌한 푸른곰팡이 냄새는 물로 닦아내고, 벽지를 긁어내 보아도 잠깐 사라졌다 다시 자라나는 잡초 같았다. 아직도 내 몸 어디에 서식하여 나를 좀 먹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뒷 목이 쭈뼛 거린다.
혐오에 가까운 것일수록 생명력이 강하다. 바퀴벌레, 곰팡이, 벼룩 등. 살갗에 닿는 감촉들이 다들 좋지 않은 것들은 언제나 내 집에서 떠나질 않았다. 천장을 "드르륵, 드르륵", "다, 다, 다" 기어 다니는 쥐도 함께 했다.
시멘트에 방수액이 섞이지 않은 벽돌집은 습한 여름, 추운 겨울 대지의 온도를 막아주지 못한다. 물론 판자보다는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벽을 타고 흐르는 작은 물방울들은 시냇물처럼 졸졸 내려와 장판으로 스며든다. 장판으로 스며든 물방울은 연탄 값과 석유값이 없는 집 바닥에 자리를 잡고, 다양한 미생물을 양산해 낸다. 마치 길에 버려진 검은색 봉투를 풀어보지 못하는 심리처럼. 난 습한 여름 바닥에 깔아놓은 이불을 걷어 내 보지 못한다.
왼쪽 검지 손끝에서 시작된 미세한 간지러움이 왼 손목, 그리고 팔뚝으로 이어지는 섬뜩함으로 다가왔다. 사람은 정말 어둠에서 공포를 느끼면, 그 어둠에 잠식되고 싶어진다. 차라리 시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각을 통해 시신경으로 이어져 뇌의 이미지 영역에 닿는 순간. 공포의 시각화가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아 자꾸만 날 괴롭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꼭 뒤늦은 후회를 한다. 불을 켰을 때 검은색 몸통 위 마디마디마다 영롱한 빛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빨간색 다리의 지네가 이제는 어깨 위 목덜미까지 빠르게 기어올랐다. "아빠!" 나도 모르게 외마디로 비명을 지르듯 아빠를 불렀다. 그 뒤 승모근을 타고 오르는 지네의 정상에 대한 욕구가 움직임을 더 빠르게 했다. 오른손으로 승모근 라인을 사정없이 쓸어 냈다. 아니 자해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살갗을 뜯어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듯하다.) 어떠한 여유인지 내 몸에서 기어 다니는 느낌이 사라지고, 따끔거리는 감각만 남아있었다.
손톱 사이에는 빨간 지네의 다리 몇 개가 끼어 있었다.(막혀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리고, 두 동강 난 지네의 얼굴과 몸통. 정확하게 두 동강이 난 것은 아니다. 대략 6/4 정도의 비율로 잘려있다기보다는 뜯어져 있었다. 난 지네 다리에 승모근이 조금 뜯긴 것 빼고는 다행히 물리지는 않았다. 지네는 항상 부부가 쌍으로 다닌다는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이곳에서 잠을 계속 잘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함께 외마디 비명으로 끝난 혈투는 아버지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일단락되었다.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한 살생이 요란게 끝을 맺고.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온 내 방. 이불 위 아직도 발짝을 일으키 듯 발버둥 치는 지네의 사체를 하얀 두루마리 휴지를 두껍게 돌돌 말아 으깬 뒤, 검은 봉투에 넣어 마무리했다.
이제 다음 관문은 이불을 걷어내는 작업이다. 이게 또 보통 일이 아니다. 검은곰팡이로 뒤덮인 이불 바닥을 너무 어렸을 때 봤던 잔상이 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세상에 내가 싫어하는 것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곰팡이다.
물만 고여 있을 때는 몰랐다. 그 위에 자신의 개체수를 부풀린 곰팡이의 생명력을 그리고 금세 건조한 공간까지 자신의 영역을 넓혀간다. 학교를 다녀오거나, 뒷 산에 올라가 산딸기를 먹고 오면, 곰팡이의 영역은 내가 지내는 영역보다 더 넓어져 있다. 내가 덮는 이불까지 자신의 무자비한 생명력을 뻗치는 것을 보면, 역겨움에 신물이 올라온다. 가랑비처럼 목젖을 적시는 신물이 입안의 침샘을 자극해 역겨움의 강도를 더 강하게 만든다.
마치, 어제 주문한 아이이 커피의 얼음이 녹아 짙은 갈색의 구두약을 탄 듯한 커피처럼.
쪽지에 적어놓은 미상의 작가의 문장을 되뇌었다. 모두가 추억하는 것들이 행복할 것이라는 편협한 생각을 버려라. 너에게 좋은 추억이 남에겐 치욕적으로 기억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