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by 와타사와

2050년, 지구는 인간의 탐욕과 무책임이 누적되어 빚어낸 결과를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해야 할까. 모두가 나의 일이 아니라고 여겼기에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했던 일은 결국 누구의 일도 아닌 게 되어 버린 탓이리라. 수십 년간 지속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극적으로 줄어들지 않았고,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하여 이미 섭씨 4도 이상 상승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조금 더 더운 여름에서 시작해 생태계 전체를 붕괴시키고 인류의 존속마저 위협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북극 해빙이 완전히 소멸되었고, 전 세계 빙하의 대부분이 녹아버렸다. 이로 인해 해수면은 무섭게 상승했다. 저지대 해안 지역부터 서서히 물에 잠기기 시작했고 많은 지역이 순식간에 수면 밑으로 사라졌다. 뉴욕의 맨해튼은 고층 빌딩의 절반이 물에 잠겼고, 런던의 템스강 주변 지역과 도쿄의 대부분 지역은 이미 사람이 거주할 수 없게 되었다. 홍콩, 방콕, 마이애미 같은 주요 도시의 대부분은 침수되었고, 방글라데시와 같은 저지대 국가들은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기후 난민의 수는 20억 명에 달해,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넘어섰다. 이들 난민은 새로운 삶을 찾아 다른 나라로 향했지만, 보통 그들을 맞이한 것은 차가운 거절과 폭력뿐이었다.


고통을 받는 것은 비단 인간만이 아니었다. 기후가 극단적으로 변하면서 기후 적응 능력이 부족한 수많은 동식물이 영문도 모른 체 멸종하고 생태계가 붕괴하였다.


기후 변화가 초래한 경제적 충격 또한 심각했다. 식량 생산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사람들은 매일 굶주림에 시달렸다. 전 세계 농작물 생산량은 20년 전과 비교하여 70% 이상 감소했고, 특히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곡창지대는 계속된 가뭄과 폭염으로 황폐해졌다. 미국의 대평원에서는 더 이상 옥수수를 재배할 수 없었고, 브라질의 열대우림은 불타오르는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식량 위기는 단순한 먹거리의 부족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며 대규모 폭동과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550ppm을 넘어섰고, 도시의 하늘은 항상 뿌옇고, 탁했다. 방독면 없이는 외출이 불가능할 정도였고, 병원은 늘 만원 상태로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기후 변화에서 파생된 새로운 질병과 전염병은 한층 더 치명적인 형태로 진화했고, 과거에는 통제할 수 있었던 병들마저 다시 돌아와 인류를 위협했다. 산불이 쉬지 않고 모든 것을 태우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인류는 그간 여러 가지 첨단 기술을 활용해 화학적으로 또는 생물학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 했다. AI를 통한 상황 진단과 의사 결정에 지구적 합의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암을 치료하는 특효약이 없는 것처럼 결국 암세포가 온몸을 지배하고 인류는 극심한 고통과 함께 쓸쓸한 임종만을 기다리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간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희망이 사라져 가며 존재의 의미도 생존의 욕구도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다.


박진우는 한때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엘리트 금융 전문가였다. 그는 기업들이 기후 변화 완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금융 상품을 제공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많은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면서 도덕적 찬사도 받았다. 그의 발자취 하나하나가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금융시장의 상징이었으니. 그러나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상황은 오히려 악화하였다. 2040년대 중반, 금융 시스템은 급격히 붕괴했다. 경제는 더 이상 재건되지 않았고, 금융은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게 되었다. 진우의 은행은 파산했고, 그는 일자리를 잃었다. 그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때 안정된 삶을 누리며 더 높은곳을 바라보고 살았던 그가 이제 날마다 그저 버티기 위해 노력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진우의 가족은 그를 떠났다. 아니 진우가 그들을 떠나보냈다. 아내와 입양한 세 자녀는 유럽의 난민 수용소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나마 인맥과 상당한 돈을 동원해 가능한 일이었다. 진우는 텅 빈 아파트에 홀로 남았다. 그는 과거의 성공을 되새겼지만, 그가 한때 자부심을 가졌던 모든 것은, 이제 무의미해졌다. 그가 살아온 인생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진우는 자신이 했던 선택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되새기며,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품었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면 자기 잘못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물론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다른 사람과 사회의 눈을 그럴듯하게 속이는 그런 삶이 아닌 솔직한 삶을 다시 살고 싶었다.


진우는 여전히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 애썼다. 매일 아침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던 시절처럼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그는 한때 일하던 금융가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일했던 자리에 다시 서 보았다. 그러나 그곳은 이제 쓰레기 더미와 유리 파편으로 가득했다. 진우는 그곳에 서서 한숨을 쉬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꿈꿨지만, 그 자리는 이제 없었다.


아스트리드 요한스도티르는 여전히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지키려 애썼다. 그녀는 레이캬비크의 작고 쇠락한, 하지만 매우 견고한 스튜디오에서 홀로 지내고 있었다. 한때 빙하와 바다를 담았던 카메라는 이제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녀가 자랐던 고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빙하와 초록빛 강물은 사라졌고, 대신 회색빛의 사막과 메마른 바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녀의 예술은 한 번도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3주 전에 배급받은 식량이 거의 바닥나고 있었고, 다음 배급은 기약이 없다. 요즘 부쩍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고 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2038년, 아스트리드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자신의 최신 다큐멘터리 영화를 선보였다. 그녀의 작품은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과정을 중심으로 그곳에 사는 동물들의 아픔을 다루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 누구보다 동물 가까이에서 그들의 절망적인 운명을 가감 없이 카메라에 담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영화제에서 그녀의 작품은 주목받지 못했다. 심사위원들은 이미 너무 많은 기후 다큐멘터리를 보았고, 아스트리드의 작품은 그저 또 하나의 경고에 불과했다. 그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아류작에 불과했다. 그녀는 상을 받지 못했고, 작품에 대한 반응도 냉담했다.


아스트리드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자신의 실패를 되새겼다. 그녀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사실 한 번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녀를 늘 응원해 주셨던 부모님은 레이캬비크를 덮친 지난 대홍수에서 끝내 살아남지 못하셨다.


아스트리드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직 사람들이 그녀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때로, 그 메시지가 의미가 있는 때로, 예술이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녀는 그때로 돌아가면, 또 한 번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레이첼 스미스는 타임머신 이론의 선구자였다. 그녀는 과거로 돌아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 했다. 사람들이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던, 동의하지 않던 그녀의 연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2037년, 그녀의 연구소는 정부의 지원 중단으로 문을 닫았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정부의 실패는 연구 지원에도 영향을 미쳤고, 그녀의 연구는 사라졌다. 레이첼은 연구소가 이상고온에 의한 자연발화로 불타는 모습을 보며 모든 것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그녀의 모든 노력과 시간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레이첼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녀의 이론이 아직도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레이첼은 그 희망에 매달렸다. 그녀는 미치도록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것이 미스 노이만이 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그때 한 종교단체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과학을 절대자로 숭배했고, 인육을 먹는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있는 단체였다. 아무렴 어쩌랴. 그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알리아 바라는 아프리카의 사막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녀는 한때 이곳이 푸른 초원과 맑은 강물이 흐르던 곳이었음을 흐릿하게 기억했다. 그녀는 생태학자로서 사막화를 막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했다. 이제야 그녀는 알았다. 아버지의 말씀이 옳았다. 생태학자가 아닌 변호사가 되고, 힘 있는 정치인이 돼야 했었다. 미시적인 접근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한꺼번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졌어야 했다. 아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틀렸다. 그녀가 정치인이 되어 세네갈과 아프리카의 변화를 주도하였다고 한들 세상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그녀의 관념과 힘이 미치는 범위를 아득히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력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타임머신 프로젝트는 더디지만 분명 전진하고 있었다. 계속 인내하며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끝없이 자신을 타일렀다.


다카하시 하야토는 한때 일본의 자랑스러운 군인이었다. 그는 전쟁과 자연재해 속에서 사람들을 지켜왔고, 그들에게 안전을 제공했다. 그러나 2050년의 일본은 이제 더 이상 그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전 국토의 약 5분의 2만 수면위에 남아 있었고 이마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국가 시스템은 오래전에 무너졌고, 사람들은 희망을 잃었다. 하야토는 여전히 기후 난민들과 함께했지만, 그는 더 이상 그들을 구할 수 없었다. 그도 결국 난민 중의 한명일 뿐이다. 내일 그가 살아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직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지킬 수 있었던 그 시절로, 타임머신이 주는 어리석은 가능성에 그는 희망을 걸었다.


하야토는 삿포로의 마지막 난민 캠프를 폐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그 명령을 수행하며,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을 버리고 떠나야 했다. 반복적으로 겪는 일이지만 너무 괴로운 일이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싸워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싸움이 될 것이었다.


2050년, 그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마지막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싸움은 더 이상 그들의 손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불가피한 귀환을 꿈꾸며, 과거의 기억에 매달렸다.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 희망이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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