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태양은 가차 없이 도시를 짓누르고 있었다. 서울의 공기는 너무 뜨거워 폐 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거리에는 방독면을 쓴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삶을 연명하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여전히 뿌옇고 회색빛인 하늘 아래, 비가 내려도 더 이상 깨끗함을 기대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사람들 사이에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우는 텅 빈 거리의 한 아파트 옥상에 올라섰다. 과거 그는 이곳에서 서울의 야경을 보며 자신의 성공을 자축하고 더 찬란한 미래를 설계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그가 알던 서울이 아니었다. 더 이상 불빛이 반짝이는 것도, 사람들의 활기가 넘치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 낡고 부서진 철골 구조물들만이 남아 원래부터 주인인 양 불친절하게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걸음을 옮겨 회의 장소로 향했다. 그는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과 모이기 위해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진우처럼 기후 변화와 싸우기 위해 각자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기후 변화 그리고 행동'이라는 단체의 일원으로 함께 소통해왔다. 최초에는 UN에서 만든 초국가적 단체였다.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 폭이 섭씨 2도를 넘어서자, 더 이상 일반적이고 느슨한 대응 방식이 통용되지 않는다는데 세계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이 동의했다. 그들은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아니 지연시키기 위해 당시 가장 발전된 AI 프로그램이 초월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UN 가입국들은 그 의사결정에 전적으로 따른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악마는 늘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기후 변화에 전 인류가 공동으로 최선의 대응을 하기 위해 AI가 가장 적절한 의사결정을 하고 그 의사결정을 모든 나라가 최대한 따른다’는 단순한 명제 뒤에는 무수히 많은 세부 의사결정과 룰의 확립과 예외에 대한 고려가 필요했고 이 과정은 유불리의 발생과 함께 극심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전에 고려하지 못했던 너무도 많은 의사결정과 불평등의 감내가 필요했고, 그 과정은 인류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었다.
당시 UN은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과학자, 예술가, 정치인, 활동가들을 모아 ‘기후 변화 그리고 행동’이라는 그룹을 조직했고, 이 조직이 AI의 의사결정을 해석하고 그 실행을 주도하기를 기대했다. 그들은 각 대륙과 각 국가에서 기후 변화 대응의 첨병 역할을 맡았다. 시민사회를 설득하고, 정책을 이행하며, 동참의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룹의 일원은 빼어난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미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자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계 각지에서 공정하게 추천받아 엄격한 과정을 거쳐 선발된 인물들이었고, 한때는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AI 활용 실험은 인류의 목표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그사이 UN의 위상과 기능도 약화하였다. ‘기후 변화 그리고 행동’은 그사이 많은 이탈이 있었고 대폭 축소되어 이제 그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다.
이들이 모인 회의 장소는 서울 남산의 한구석에 위치한 비밀스러운 건물이었다. 이곳은 과거 ‘기후 변화 그리고 행동’ 그룹의 서울 지부이자 아시아 헤드쿼터였다. 아시아 각국의 기후 변화 전문가들이 비밀리에 모여 전략을 논의하는 공간이었다. 무수히 많은 모니터와 벽면의 스크린만이 과거 그들의 노력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은 지금 이곳에 인류의 미래를 걸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모였다. 물론 누구도 그들에게 그러한 의사결정을 할 권한을 주었거나, 지원하거나,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제 초국가적 국제기구나 개별 정부의 통제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레이첼은 침착한 표정으로 회의실 앞에 섰다. 방 안은 차갑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삼십명 정도의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앉아 있었다. 모두 이 지구의 마지막 희망을 붙잡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피곤함을 숨길 수 없는 얼굴이었다. 레이첼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 이 파국을 막아야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강했지만, 그 끝에는 희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시간 여행 기술은 이론적으로, 물리적으로 이제 완성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은 극도로 제한적이며, 그 사용에 있어 우리는 매우 신중해져야 합니다. 두 번의 시도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레이첼은 스크린을 켰다. 스크린에 나타난 것은 그녀가 오랜 시간 연구해 온 웜홀의 모형이었다. "제가 여러 차례 설명했듯이 웜홀은 시공간의 두 지점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웜홀의 개방과 유지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애석하게도 2025년보다 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현재 불가능합니다. 또한 과거로 이동한 후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지만 레이첼은 슬라이드를 넘기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단 한 번, 짧은 시간 동안만 과거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 제한된 시간 안에 우리는 최대한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과거에 작은 변화를 주어 현재를 바꾸는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이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것입니다."
회의실 안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놀랍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그 가능성을 알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이 자리에 어렵게 모두 모인 것이다. 이제 문제는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 인가였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과거를 바꾸기 위해 어떤 접근을 할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었다.
회의는 이어졌고, 여러 사람이 과거로 돌아간 후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제는 사라진 노벨 물리학상을 마지막으로 받았던 프린스턴의 구티에레즈 교수가 이견을 표명했다. 하지만 그룹은 더 이상 시간 여행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사실 그들은 오히려 타임머신을 숭배하고 싶은 지경이었다.
진우는 즉각적인 정치적, 경제적 개입을 위해 각국 정부의 기후 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 정치인이나 기업가 같은 사회의 유력인사들과 직접 교류하며 그들에게 기후 변화의 위협과 그 결과를 소상히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필요하면 우리의 신분을 밝히는 것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소의 가동을 빠르게 멈추고, 원자력 발전소를 최대한 활용하여 전력을 생산하는 등 정부가 직접적이고 강력한 정책을 즉시 시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의 질서 있지만 빠른 퇴장을 강제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대중의 의식 변화나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 이 상황을 바꾸려는 것은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입니다." 진우는 단단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그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의 말은 정치적, 경제적 힘을 통해 즉각적인 구조적 변화를 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방법론에 대한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과거인들이 느낄 수 있는 혼란이나, 어떤 사람을 주요한 타겟으로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토론이 길게 이어졌다.
아스트리드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자는 제안을 했다. 그녀의 경험은 사람들이 시각적인 충격을 통해 변화를 자각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우리가 보여줄 것은 그저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되는 모습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미래의 지구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직접 보여줘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 변화를 눈앞에서 보도록 해야 합니다. 매우 사실적인 영상을 통해 현재의 적나라한 사실을 과거의 인류가 직시하고, 충격을 받고 변화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수많은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업을 진두지휘할 자신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공감을 표시하며 다큐멘터리의 플롯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하기도 했다. 아스트리드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이미 촬영해 둔 다양한 시대의 많은 장면을 직접 보여주며 답을 주었다.
레이첼은 앞선 두 사람의 의견에 충분한 공감을 표시했다. 그녀는 거기에 더해 미래 기술을 과거에 선제적으로 도입해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접근을 제안했다. "우리가 가진 미래의 기술을 과거에 도입한다면,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탄소 포집 기술이나 고효율 재생에너지 시스템을 조기에 상용화하도록 도와주고 유도하는 것입니다.” 말을 이어가던 레이첼의 머릿속에 51구역에서 외계인들이 지구인들에게 그들의 기술을 전수하는 광경이 그려졌다. 그 순간 레이첼의 입가가 조금 올라갔고 그 모습을 본 몇몇 사람들은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러시아 출신의 군사 전문가는 아직 남아 있는 핵무기를 활용하여 과거 인류의 상당수를 제거하자는 주장을 했다. “결국 우리의 적은 우리이고,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최소한의 인간만 남겨 다시 시작하도록, 그래서 지구가 스스로 자정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저는 이 방법 이외의 다른 어떤 확실한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두 번의 시도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불확실한 방법을 선택해 모험을 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동조했지만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던 너무도 충격적인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발 물러섰다. “제 주장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플랜B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른 시도를 해보고, 그 시도가 실패하는 경우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핵탄두만 가지고 가면 됩니다.”
하야토는 묵묵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결론이 나던지 그는 동료들의 안전을 지키고 현장의 최일선에서 앞장설 것이다.
회의는 점점 격렬해졌고, 서로의 의견에 대한 반론과 새로운 제안이 오갔다. 그러는 사이 점점 결론에 가까워졌다. 과거로 돌아가야 할 인물들을 선정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최소한의 인물이 필요했고, 어떤 어려움에도 변하지 않을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최종적으로, 과거로 돌아가 행동할 인물로는 진우, 아스트리드, 레이첼, 알리아, 그리고 하야토가 선정되었다. 이들은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과거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동시에 팀으로 가장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합으로 평가받았다.
이들 다섯명의 성향이 모두 너무 비슷하다는 우려도 있었다. 융통성이나 유연함보다는 우직함을 강점으로 가진 이들이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 마음이 흔들리거나 돌발적인 행동을 하기보다는 신념을 유지하고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로만 팀을 구성하는 것이 성공 확률을 높일 거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이제 회의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큐멘터리로 세상에 충격을 주기로 결정하였고, 이와 병행할 수 있는 방법들을 최대한 함께 해보기로 했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제한된 자원과 열악한 환경에서 그들이 현재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동시에 각 인물은 과거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논의하고, 그들이 만날 사람들과 전할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이들은 과거에서 함께, 때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레이첼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어떤 변화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마지막 선택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이 세상을 구할 것입니다." 절대 실패할 수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이제 그들의 결정을 실행에 옮길 준비가 되었다. 각자의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희망이 공존했지만, 그들은 이미 선택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였다. 과거로 돌아가, 그곳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짧은 시간동안 이를 위한 완벽한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