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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대장 Apr 23. 2021

사람을 대하는 일

'망치가 없으면, "없는데요"가 아니라 망치 비슷한 것이라도 가져와

(직전 글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더욱 언성이 점점 높아지는 이용자 분과 당황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 말을 잇지 못하는 언니 사이에 끼어들었다.


"선생님. ... 선생님, 당연히 아니죠. 네이버랑 카카오가 국가기관이라서 이용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당연히 아니죠. 저희는 그 앱에 있는 카메라를 실행시켜서 여기 보이시는 QR코드를 스캔하시면 편하게 입장할 수 있다는 얘길 드리는 거예요~"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말의 속도는 조금 느리고, 톤을 낮춰서 부드럽게...


내 말을 들은 이용자 분은 조금 잠잠해졌다.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며 나는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일반 카메라 앱으로 이 QR코드를 스캔할 수도 있지만 최신형이 아닌 이상 별도로 QR코드를 스캔할 수 있는 앱을 설치하셔야 하는데. 그 방법보다는 대부분 사용하고 계시는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앱을 이용하면 QR코드 스캔이 쉽기 때문이에요."


"음. 그렇군요."


"여기 보시면, 네이버 앱에서는 그리닷을 터치하시면 '렌즈' 보이시죠? 얘를 터치하셔서 이 앞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시면 되세요. 문자인증은 최초 1회만 하시면 됩니다. 다음부터는 바로 스캔하시고, 방문 인증하시면 저나 여기 앞에 계시는 분들이 체온만 체크를 해드릴 거예요. 간편하시죠? "


"네. 오해했네요."


이용자분은 짧게 대답하고는 나의 안내에 따라 진행하여 도서관으로 입장했다. 몇 시간 뒤에 그 이용자분께서 들어왔던 이 문으로 나갈 때 내게 짧게 목례로 인사를 건네고 유유히 사라졌다. 서로의 감정이 깊게 다치지 않는 선에서 해결되어 다행이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갑작스럽게 우리에게 언성을 높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안하무인은 아니었다.  그 이용자분이 막 입장했을 때까지만 해도 언니는 여전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힘든 눈치였다. 이런 분들을 응대해야 하는 매뉴얼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언성을 높이는 분들은 만나지 못했다.


사람 대하는 일이 힘든 일임을 다시 느낀 때였다. 누군가를 마주하고 상대하는 일이 힘들다는 것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많이 느꼈었다. 나는 다소 늦은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었는데,  21살에 홍대 정문에 있던 푸르지오 상가의 어떤 가게에서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1년 약간 넘는 시간(2019년 5월 ~ 2020년 7월까지)을 제외하고는 직장생활을 포함하여 십여 년 동안 일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오랜 기간 일한 경험도 있겠고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나는 상대방의 눈치를 잘 폈고, 처세를 잘했다.


내가 해봤던 아르바이트는 일식 라면집, 일식집, 퓨전호프집, 대형 문구센터에서 특정 매대를 정리하고 지키는 일(친구 대타로), 과사무실 근로장학생, 캐리커처 행사, 디지털 캐리커처 그리기, 신문 구독 홍보를 하면서 커피 나눠주기, 수제 햄버거집에서 서빙과 바닥청소, 6시간 동안 설거지 하기 등등...이다.


설거지나 청소 위주의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였다. 특히 퓨전호프집에서 일할 때는 사장님 덕분에 더 빠릿빠릿한 행동력을 기를 수 있었다. 그때 만들어진 습관 중에 하나가 웃으면서 인사하는 것인데, 나는 내 기분과 상관없이 인사할 때 자동으로 미소가 지어지는 습관이 있다. 22살 때 일했던 퓨전호프집에서 만들어진 습관이었다.


지금까지도 누구를 만나든, 내 기분이 좋지 않든, 싫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아무 상관없이 자동으로 웃으면서 인사한다. (스스로가 로봇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동네에서 인기 좋았던 그 퓨전 호프집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래서 매 순간 긴장하지 않으면 주문이 잘 못 들어가거나 그릇을 깨먹거나, 물을 쏟는 등 별별 실수를 많이 했다.


내 성향은 느리고, 조용했고, 수동적이었고, 어리바리한 면이 많았기 때문에 사장님은 나를 교육시키느라 웃는 얼굴로 인상을 쓰는 날이 종종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외모의 객관적인 아름다움과 상관없이 웃으며 인사하는 내 모습에 대해 '이쁘다, 여기 오면 기분이 좋다' 고 얘기하며 자주 오시는 손님들이 늘어갔고 단골로 이어졌다. 실수에도 공손한 태도 덕분인지 너그럽게 이해하며 넘어가 주시는 손님들도 더러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서툴고 모자라더라도, 좋은 분들의 칭찬과 함께 냉정했지만 잘 웃어주시는 사장님 덕분에 일도 점점 익숙해져 갔고, 실수 없는 날이 늘어갈수록 자신감이 생겼었다. 당황스럽고 난감한 순간이 생겼을 때 사장님이 나서 주셨고, 사장님의 단호한 응대 기술이나 말 주변을 배웠다.


'망치가 없으면, "없는데요"가 아니라 망치 비슷한 것이라도 가져와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을 되새기면서 아르바이트 생활을 이어나갔고, 그 이후에도 직장생활 또한 큰 무리 없이 잘 처세하고 버티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면서 어쩌다 보니 십여 년 동안의 직장생활 끝에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내 꼴이 조금 볼품없게 느껴졌다.


울적한 기분이 들어서 1층 로비에서 체온 체크하는 일은 같은 조 언니에게 오로지 다 맡겨버리고 나는 도서관 각 실마다 찾아다니면서 책 정리를 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층을 오르고 내리면서 일부러 몸을 움직였다. 몸을 움직이면 울적한 생각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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