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집사기꾼
베를린은 야생의 정글과도 같은 곳이다.
물론 곳곳에 푸른빛이 도는, 자연친화적인 도시이기도 하지만-
베를린에서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다.
모든 시작은 집을 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베를린에서의 그 시작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과 견주어도 될 만큼 쉽지 않다.
물론 타이밍이 맞아 집을 어렵지 않게 구하는 분들도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 베를린에서 집을 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오늘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집을 구하는 것에 대한 정보는 아니지만, 집을 구할 시 주의해야 할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feat.우리팀 새로 들어온 인턴
베를린 집 구하는 정보는 이전 포스팅 참고!
https://brunch.co.kr/@earthstranger/12
예전에 즐겨봤던 '정글고'라는 웹툰 끝부분에 자주 나오는 문구이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글고. 어설픈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 당시에는 그저 재미있게만 보았는데, 외국에서 이렇게 일을 하면 혈혈단신 홀로 헤쳐나가다 보니 저 말만큼 와닿는 말도 없는 것 같다.
물론 어느 도시나 따듯한 사람들은 있고,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치안이 좋은 편이라 할 수 있다.
밤에 여자 혼자 돌아다녀도 우리나라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안전한 도시.
하지만 살아가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연고가 전혀 없는 타국의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야생의 정글 한복판에서 살아남는 것과 같다.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이듯, 베를린에도 크고 작은 사기꾼들이 있다.
이 도시에 처음 온 이제 막 삶을 시작한 햇병아리 베를리너들을 노리고 있는 정글의 하이에나처럼.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당근 마켓을 많이 사용하는 것처럼 독일 (혹은 유럽) 사람들은 대체로 중고거래가 일상화되어있다.
이베이나 페이스북 그룹 등을 통해서 크고 작은 물건부터, 구인, 집까지 다양한 거래가 이루어진다.
중고 거래를 하면서 단 5%라도 이상한 촉 혹은 쎄-한 느낌이 든다고 하면 주변에 물어볼 것도 없이 사기꾼일 확률이 99.99999999%.
돈을 받고 물건을 보내지 않고 잠수를 타거나, 설명과 전혀 다른 물건을 판매하거나, 사기꾼은 아니지만 개똥 매너를 선보이는 다양한 하이에나들이 존재한다.
한인 커뮤니티나 페이스북 그룹들을 보면 종종 재미있는 혹은 열받는 후기들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그중 가장 빈번하게 사기꾼들이 판을 치고, 사기를 당하는 것이 바로 '집' 거래이다.
지난주 우리 팀에는 인턴 L양이 새로 입사를 했다.
이제 막 학사를 졸업하고 우리 회사에서의 인턴십이 사회 첫 경험이라며 인터뷰 때부터 연신 얼굴에서 설렘과 기대감이 풋풋하게 흘러넘쳤다.
현재 거의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크게 관계는 없지만, 유럽의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인턴 L양은 본인이 베를린으로 이사 오기를 희망!
한 달 전부터 베를린에 방을 구하고 있는데- 역시 집 혹은 방 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지난 금요일, 일하던 중 갑자기 메시지가 날라왔다.
'드디어 방을 구했다'라며! 온라인 뷰잉을 했는데 이야기가 잘 되어서 그 방을 계약하기로 했다는 것.
방도 구했겠다- 바로 베를린으로 날라오겠다며 1주일 후 비행기 표 예약까지 마쳤다고...
내가 방을 구해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감이 떨어진 건지, 얘가 나이는 어려도 유럽애니까 나보다 더 잘 알겠거니 했던 건지.
나도 자세한 디테일은 물어볼 생각을 못 하고 축하한다는 인사를 하기에 바빴다.
드디어 얼굴을 직접 보고 일을 가르쳐줄 수 있겠구나-라는 안도가 더 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주말이 지나 월요일.
오후 3시까지 디자인 시안을 나에게 보내라고 데드라인을 정해주었는데 감감무소식.
시간이 좀 더 필요한가 보다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장문의 메시지가 회사 메신저로 날라왔다.
I have some bad news.
A few hours ago I have been notified that I have been scammed with the rent of my room in Berlin.
That’s why I haven’t been able to work on the task much more.
I still have to make a few urgent phone calls, but today I’ll stay until later working on the task.
이 말인즉슨, 지난주 금요일 방을 렌트하기로 약속을 하고 토요일에 방 값 + 보증금 (보통 월세의 세배)를 송금했다고 한다.
그런데 월요일 오후, 본인이 돈을 보낸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보통 집 구하는 사이트에서 방을 내놓는 사람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경우-
그 사람이 사기꾼으로 신고가 들어오거나 의심이 들면 사이트 자체 내에서 경고 메일을 보내준다.
아마도 그러한 이메일을 받고 부랴부랴 연락을 다시 해본 결과- 사기꾼이었던 걸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계좌가 아일랜드 계좌번호.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영상통화를 한 사람이 본인은 런던과 베를린을 오가며 생활한다고 말을 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고...)
월요일, 이 친구는 거의 업무를 하지 못하였고, 나 역시 급한 업무가 아니니 걱정 말고 빨리 대처를 하라고 했다.
은행에 연락해 이체를 막고, 경찰에 신고를 하는 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였다.
다행히 주말 간에 이루어진 이체이고, 국제 이체라 아직 돈은 아일랜드 계좌로 넘어가지 않은 듯한데, 며칠이 지나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이놈의 느린 유럽 시스템이 이럴 때는 빛을 발하는구나- 싶었다.
현재 아직 경찰과 은행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고, 비행기 표를 이미 산 만큼 일단 베를린 아는 분 집에서 제대로 된 방을 구할 때까지 신세를 지기로 했다고 한다. (다행!)
대부분 영어로 연락이 오거나, 본인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거래를 하자는 헛소리를 하면 100% 사기꾼이다.
지금까지 3번의 WG (쉐어하우스), 그리고 현재 아파트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이 사 들어가기 전 돈을 송금해 본 적이 없다!
WG에서 방을 렌트한 경우 모두 이사 당일 그 달 방값과 보증금을 현금으로 주고 영수증을 받거나 계좌이체를 했다.
지금의 집 같은 경우에는 아파트 전체를 렌트하는 것이었으므로, 집주인과 정식 계약을 마치고 보증금을 먼저 계좌이체하고 첫 월세는 이사하는 날 지급했다.
런던의 경우 집주인 입장에서도 약속한 사람이 이사를 오지 않는 리스크가 발생함으로 약간의 선입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보증금 중 일부나 2주치 방값 정도?
하지만 어디든 이사를 들어가거나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보증금을 먼저 보내주거나 하는 일을 절대 없다.
다시 말하지만 5%라도 찝찝함이 느껴진다면 사기꾼이 확률이 절대적으로 높다.
본인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촉을 믿어라.
페이스북 그룹에 종종 이메일 캡처 글을 올리며 사기꾼일까요? 묻는 글들이 올라오곤 하는데, 열이면 열- 사기꾼이다.
- 집을 직접 뷰잉을 하지 않은 / 못한 경우
- 집주인이 외국에 살아서 직접 만나기가 어렵다고 하는 경우
- 집주인이 외국에 있어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거래를 하자고 하는 경우
- 보증금을 무리하게 먼저 입금해달라고 하는 경우
등등...
하이에나들의 수법은 진화하고 있다.
집을 구하기 전에 미리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사기꾼 관련 글들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
이게 나름 사기에도 트렌드가 있는지, 비슷한 사기 수법에 관한 글들을 한꺼번에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베를린 혹은 해외에서 살면서 바뀐 점 중 하나는-
첫 번째도 확인, 두 번째도 확인, 세 번째도 확인.
누군가는 의심이 많다고, 누군가는 너무 꼼꼼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타국, 다른 도시에 혼자 살면서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더블 - 트리플 체크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서울에서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대도시, 낯선 이곳에서
어설픈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