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주스에 담긴 부자情

슬픔에 빠지기 보다 기쁨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

by 광화문덕
수박 주스 먹고 싶어

일요일 아침 미역국을 차렸다. 어제는 온종일 홀로 독박 육아를 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서다.


밥을 다 먹은 아내는 수박 주스를 만들어달라고 했고, 아들 역시 '수박 주스'를 외쳤다. 난 흔쾌히 응했다.


허세를 부리며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그렇다면 오늘은 호텔 레시피 수박 주스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라고.


아들은 그런 나를 보며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믹서기를 꺼내고 잘 익은 수박을 큼직하게 잘라 씨를 발라냈다. 얼음도 준비했다. 믹서기 큰 통에 수박과 얼음을 넣었다. 그리고 갈았다. 사실 여기에 흰 설탕을 조금 넣으면 단맛을 끌어올릴 수 있으나 집에 있는 수박의 당도가 워낙 좋아 굳이 설탕을 첨가하진 않았다.


아차! 수박씨를 미쳐 골라내지 못했구나

믹서기 안에 검은 점이 보였다. 아는 또다시 허세를 부리며 씨를 걸러내기 위한 망을 준비했다. 마치 망을 걸어내야 진정한 수박주스가 만들어지는 듯이 말이다.


아들은 그런 고되고 섬세한 작업을 하는 나를 보며 "우와 수박 주스 엄청 맛있겠다"를 연신 외쳐댔다. 먹고 싶다는 아들만의 강한 표현이다.


그런데 아들의 밥은 여전히 반 이상이 남아있다. 아내와 난 식사를 마쳤지만 아들의 식사 속도는 늘 매우 느리다.


아들은 밥 다 먹어야 수박주스 줄 거야

아들의 눈빛이 갑자기 슬퍼졌다. 나는 아들이 더 신나게 밥을 먹길 바랐지만 그 반대였다. 나 역시도 수박주스를 만드는 것이 신나지 않았다.


아내도 아들의 밥 먹는 속도를 높이려고 "와!!! 이 수박주스 정말 맛있다. 이리 와서 한 번 마셔봐"라고 했지만, 아들의 표정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일이 떠올랐다

아들은 놀이터 친구들이 있다. 자기 또래부터 한두 살 형아들까지 폭은 넓다. 휴가 시즌이라 다들 여행을 간 시기가 제각각 이라서인지 최근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예전처럼 시끌벅적하게 모이지 않는 듯했다.


그러다 그날 아들을 잘 챙겨주는, 아들도 잘 따르는 형아가 놀이터에 나와 놀고 있었고, 형아는 우리 아파트를 보며 소리쳤다. 아들의 이름을 말이다.


"ㅇㅇ아~! 놀이터로 내려와서 같이 놀자"


아들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베란다를 바라보며 외쳤다.


"형아 잠깐만"


아들은 우리를 바라보며 나가서 놀다 와도 되는지 물었고 우리는 단호한 표정으로 "밥 다 먹고 나가서 놀아"라고 했다. 아들은 밥을 먹기 싫은지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이내 밖은 어두컴컴해졌다.


"ㅇㅇ아! 바빠?"


"형아! 밥 다 먹고 내려갈게"


아들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나가서 놀고는 싶어 밥을 먹는 시늉은 했으나 양이 줄지 않았다. 그리고 이윽고 아들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걸 보자 난 버럭 했다.


"엄마와 아빠는 네가 밥만 다 먹으면 나가서 놀아도 된다고 했지? 그런데 넌 밥을 다 먹지 않은 거고. 엄마, 아빠가 널 못 나가게 한 게 아니라 네가 밥을 먹지 않아서 못 나가고 있는 거잖아"라고 말이다.


곧 후회했다. 나 역시도 마음이 너무 아팠다. 오랜만에 만나는 형아와 놀고 싶어 설레는 아들의 마음을 슬픔으로 바꿔 버렸으니 말이다.

그때 생각을 하니 마음이 바뀌었다

아들에게 내 수박주스라고 했던 것을 건네며 말했다. 아들이 밥을 다 먹지 않았고 먹으려 하고 있지 않았지만...


"아들 예전에 ㅇㅇ형아랑 놀이터 가려고 했을 때가 생각났어. 그때 아빠가 아들 밥 다 먹이려고 하다가 슬프게 했던 게 떠올랐어. 그냥 이 수박주스 마시면서 밥도 잘 먹었으면 좋겠어. 아빠 꺼는 다시 만들면 돼"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냐. 수박 주스 더 안 만들어도 돼. 그거 나눠먹으면 돼"


"아빠는 아들이 밥도 잘 먹었으면 좋겠지만 기분 좋게 밥을 먹는 게 더 중요해. 이거 다 줄테니까 기분 좋게 밥 먹었으면 좋겠어. 아빠 마음 알지?"


내 말에 감동한 것일까. 아들은 수박주스 잔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아빠 나 괜찮아. 수박주스 아빠가 마셔"


"왜? 수박주스가 맛이 없어?"


"아니 엄청 달아 맛있어"


"그런데 왜 안 마셔?"


"아빠 수박 주스잖아. 아빠가 마셔"


"아빠가 수박 주스 못 먹어서 그래? 알았어 그럼 우리 수박주스 나눠마실까?"


"응!!! 좋아"


아들은 이내 웃음을 되찾았다

아들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다.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줬다. 아무리 맛있는 거라도 아빠에게 양보해주는 마음덕택이다.


오늘도 따뜻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가족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또다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눈을 감고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아들 고맙다. 네 덕택에 나도 어른으로 조금씩 성장하는 것 같아. 네 덕택에 진정한 아빠가 되어가고 있어. 앞으로도 이 마음 변치말고 늘 건강하렴 몸도 마음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