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사라져도,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는가?"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띄엄띄엄 보다가도 다시 켜게 되는 이유는, 그 안에 나의 미래가 비치는 것 같아서다.
서울에 집이 있고, 명함 좌측 상단에 대기업 이름이 적혀 있고, ‘부장’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붙는 인물. 어쩌면 많은 한국 남성들이 마음속에서 은근히 꿈꿔왔거나, 혹은 이미 이뤘다고 여기는 위치.
그런데 이상한 건, 김부장이 지키고 싶어 하는 건 가족도 아니고, 회사도 아니고, 사실은 자신의 자존심이다. ‘대기업 부장’이라는 사회적 명찰 하나.
그런데 나는 잘 안다.
대기업엔 생각보다 많은 부장이 있고,
그들 모두가 임원이 되는 건 아니라는 필연적인 사실을.
그래서일까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가슴 한켠이 묘하게 조여왔다. 그 불편함은 김부장의 상황이 낯설어서가 아니라, 너무도 익숙해서다.
30대와 40대엔 회사라는 세계의 규칙이 확실했다. 경쟁하고, 실적을 내고, 감정을 거두고, 조직의 논리에 맞춰 자신을 조각해 넣던 시절. 그 세계가 전부라 믿고 버텨왔던 시간들. 그러나 50대가 되면 그 질서는 예고도 없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문득, 아주 갑작스럽게.
회사의 울타리 밖 세계는 이상하리만큼 차갑고, 또 낯설다. 오랜 시간 감춰두었던 ‘나’라는 존재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 직함이 벗겨지는 순간, 남아 있는 건 생각보다 단출하다. 직업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나’. 그것뿐이다.
직함이 벗겨진 순간,
남는 건 정말 나라는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드는 시간 뿐이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결국 그런 이야기다.
전부였던 세계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결국 퇴직이라는 이름의 문턱을 넘고,
그 너머에서 다시 한 번 어른이 되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
하지만 이건 드라마 속 김부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변 곳곳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구조조정 소식은 익숙해졌고, 누군가는 갑자기 사라지고, 누군가는 갑작스럽게 바뀐 표정을 억지로 감추고 살아간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며 자주 멈칫했다.
어쩌면 또렷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십 년 뒤의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두려웠다.
그리고 문득, 뜬금없이 하지만 너무 현실적인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돈을 더 모아둬야겠구나.’
물론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서 있기 위해 필요한, 아주 중요한 바닥 역할을 해준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그 바닥이 무너지면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주변에서 이미 비슷한 장면을 너무 많이 보았다.
얼마 전, 퇴직한 선배 두 분을 만났다. 한 분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며 반짝이는 눈빛을 가졌고, 또 한 분은 소식을 전하기 어려울 만큼 마음의 무게가 깊어 보였다. 두 얼굴의 대비가 오래 머물렀다.
아직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안다. 50대 이후의 삶은 경제적 준비와 정서적 자존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드라마를 보며
내가 아직 그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불안과 마주하게 됐다.
드라마가 내게 자꾸 묻는 것 같았다.
“명함이 사라져도, 너는 여전히 너일 수 있는가?”
직함은 언젠가 사라지고, 회사는 언젠가 손에서 떠날 것이다. 그건 예정된 미래다. 그렇다면 남는 건 결국 ‘직업’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라는 질문뿐이다.
드라마 속 김부장은 지금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그리고 나도, 내 50대를 고민하고 있다.
다음 회를 재생할지 잠시 멈출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내 삶의 뒤편에서 오래도록 메아리처럼 남는 질문 하나를 던지고 있다.
“내 이름 앞에서 회사가 사라져도, 그때도 나는 나일 수 있는가?”
김부장은 아마 회사 밖에서 다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그를 보며 뒤늦게 깨닫는다. 이제부터라도 천천히, 묵묵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그 나이의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