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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게임 속 출근길 풍경

충돌 끝에 남는 건 불쾌한 기분과, 도로 위의 멈춤일 뿐

by 광화문덕

가을이 왔다. 아침 공기에는 서늘한 냄새가 스며 있었다.
비가 내린 것도 아닌데, 축축한 습기가 사람들의 어깨 위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버스 정류장에 모인 이들은 줄조차 제대로 서지 못한 채 얽혀 있었다.


버스 문이 열리는 순간, 기다림은 곧장 투쟁으로 바뀌었다.

밀치고 들어가는 팔, 틈새를 비집는 어깨, 놓치지 않으려는 발걸음. 내 앞의 사람도 본능처럼 빈자리를 향해 몸을 내밀었다. 그 순간, 옆 사람과 어깨가 세게 부딪혔다.


“아, 좀 조심하시죠!”

“조금만 앞으로 가시죠.”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순간 움찔했다. 이미 꽉 찬 버스 안에서 더 나아갈 틈은 없었지만, 발끝은 본능처럼 몇 센티미터씩 밀려났다. 한숨과 짜증 섞인 기운이 공기 속에 뒤엉켜 흘렀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도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했다. 표정은 굳어 있었고,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좁은 통로에서는 가방이 부딪히고, 작은 고성도 터져 나왔다. 마치 모두가 오늘 하루를 앞두고 마지막 결투를 치르는 전사 같았다.


나 역시 빠른 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늦어서는 안 된다는 조바심, 남보다 뒤처질 수 없다는 본능이 발끝을 재촉했다.


잠시 후 창문에 비친 얼굴을 보았다.
습기에 김이 서려 흐릿하게 일그러진 얼굴. 피곤과 초조, 체념이 뒤섞인 낯선 표정.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싸우듯 하루를 시작하는 출근 길 속에서 벌써 지치면 안되는데...’


지하철역을 나서자 도로 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회색 빌딩 사이로 가을 햇살이 번졌지만, 그 빛은 차창에 비친 긴장된 얼굴들을 지우지 못했다. 차선마다 차들이 깜빡이를 켜고 들어서려 했고, 그 길을 내어주지 않으려는 다른 차들과 엇갈리며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쾅'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두 대의 승용차가 정면으로 멈춰 서 있었고, 파편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운전석 창문이 열리며 거친 고성이 오갔다. 이미 차는 모두 멈춘 뒤였다. 양보하지 않으려던 마음이 부딪혀 결국 둘 다 길 위에 서 버린 것이다.


나는 걸음을 멈춘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출근길의 치열함이, 버스와 지하철에서의 부딪힘이, 결국은 이 장면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가슴을 찔렀다.


‘치킨게임은 우리 삶 속에도 있다. 바쁜 아침, 서로 앞서 가려는 발걸음과 차선 경쟁, 그리고 양보하지 않으려는 마음. 그 충돌 끝에 남는 건 불쾌한 기분이거나, 때론 이렇게 도로 위의 멈춤일 뿐이다.’


그때 마음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용기는 끝까지 버티는 게 아니라, 한 발 물러나는 것일지도 몰라. 차선을 내어주고, 자리를 내어주고, 먼저 가시라 말하는 여유. 그게 오늘 하루를 살리는 기술일지도 몰라.”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손에 들린 식어버린 커피 컵은 더 이상 뜨겁지 않았지만, 그 온기만큼은 아직 남아 있었다.


마흔의 아침은 치킨게임이 아니다.
지는 법보다, 함께 가는 법을 배우는 시간.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오늘 내가 버텨낼 가장 중요한 삶의 기술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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