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세부 시골 마을에서의 여름휴가
세부의 시골 마을로 여행지를 고른 건,
그저 며칠 쉬어보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려 이곳에 발을 디딘 순간,
내 안에 있던 시계가 ‘딸깍’ 하고 멈춰버렸다.
아침 공기는 여전히
밤의 시원함을 품고 있었다.
머리 위로는
야자수가 천장을 대신하고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잎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났다.
‘사락… 사락…’
마치 오래된 이야기들이
먼지를 털고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소리였다.
휴대전화 신호는
거의 잡히지 않았다.
처음엔 불안했다.
‘혹시 중요한 연락이 오면 어쩌지?’
세상과 단절되는 기분이 낯설었고,
심지어 초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자,
그 불편함이
오히려 나를 가볍게 만들었다.
마치 주머니 속 돌멩이들을
하나둘씩 꺼내놓아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침 식사는 단출했다.
달걀로 만든 스크램블, 단짠 양념이 스며든 얇은 돼지고기,
그리고 뜨겁지도 차갑게 식지도 않은
딱 먹기 좋은 온도의 인심 좋은 밥 한 공기.
식당 옆자리의 노부부는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엔 서두름이 없었다.
마치 시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시간 속에 ‘머무는’ 사람들 같았다.
그 모습이 괜히 마음을 울렸다.
점심 무렵,
나는 숙소 앞 바닷가로 걸어갔다.
모래는 거칠었고, 미역줄기가 발바닥에 스쳤다.
멀리서 아이들이 부르는 웃음소리가
파도 소리에 묻혀 들려왔다.
바닷물은
얕게 밀려와 발목을 감싸고,
이내 부드럽게 물러갔다.
그 순간, 문득 생각이 들었다.
“쉰이 넘으면…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동안 달렸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많이.
하지만 정상을 향해 달리는 동안,
길가에 피어 있던 작은 꽃,
바람에 날리던 먼지 속 햇살,
그 모든 것을 몇 번이나 놓쳤는지 모른다.
물론 나는 아직 정상에 이르지도 못했다.
어쩌면 아직 중간 허리에도 닿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자꾸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30대와 40대를 달려왔을까.
그리고 50대의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나는 사람들의 욕망을 오래 지켜봤다.
주위엔 쉰이 넘어서도 임원이 되기 위해,
하루를 온통 ‘인맥 관리’에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은 뒷전이고, 술자리와 전화로 시간을 메우는 삶.
그 끝은 허망함이었다.
그리고 때론 배신이었다.
대학원에서도 본 적이 있다.
‘인맥’만을 좇아 약삭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
팀 프로젝트에선 자기 몫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마치 잇속만 챙기는 것이 능력인 양,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이들.
그 옆에서 묵묵히 일하는 원우들의 눈빛 속에는
말로 다 전하지 못한 피로와 한숨이 고여 있었다.
그들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과거의 방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인생이란 길을 걸어가겠지.
세부 바닷가에 앉아 그 장면을 떠올리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더 뚜렷하게 다가온다.
여기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샤워를 하려면
졸졸졸 떨어지는 미지근한 물줄기를 기다리며,
한참을 가만히 서 있어야 한다.
금속 샤워기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타닥, 타닥, 바닥 타일에 부딪히며 리듬을 만든다.
처음엔 조급하고 답답했지만,
이틀이 지나자 금세 익숙해졌다.
이제 그 느린 리듬은,
가파르게 뛰던 내 초조함을 서서히 가라앉히고
숨을 고르게 만든다.
식당에서 식사를 주문하면,
부엌 안에서는 마늘과 양파를 써는 ‘탁탁탁’ 소리,
기름이 달아오르며 재료를 감싸는 ‘치익’ 소리가 차례로 들려온다.
풍기는 냄새 속엔 바닷바람의 소금기와
갓 지은 밥에서 피어오르는 고소한 김이 섞여 있었다.
밥이 나오기까지의 기다림은,
이곳에선 불편이 아니라,
한 끼를 예열하는 의식 같았다.
그런데 도시의 어떤 사람들은,
나눌 수 있는 몫을 움켜쥐고,
심지어 남의 몫마저 슬그머니 빼앗으며,
그걸 살아남는 재주라고 부른다.
여기 바닷가의 물결처럼 흐르는 삶을 본다면,
그들의 방식이 얼마나 초라한지 깨달을까.
세부의 바닷가에 앉아, 결심했다.
“내 오십 이후의 삶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숨 쉬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해질 무렵, 바다는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아이들이 놀던 자리에 물결이 번져오고,
모래 위 발자국들이 서서히 지워졌다.
나는 파도가 지워가는 그 발자국을 오래 바라봤다.
‘욕망도, 야망도, 결국 이렇게 사라지는 거겠지.’
그날 저녁,
숙소 식당에서 수평선 너머로 주황빛이 스미는 하늘을 바라보며,
산미구엘 라이트를 한 모금 마셨다.
탄산이 목을 스치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래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쉽게 네 방식을 바꾸진 못할 거야.
하지만… 기억은 남기자.”
50대가 되면,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을지 모른다.
그 이유는 체력일 수도 있고,
사회적 한계,
또는 나를 향한 시선과 편견 때문일 수도 있다.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버티듯’ 살아가는 날들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생각에 다다르자,
나는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조용한 탄식을 흘렸다.
‘그래, 이제는… 느리게 가야지.’
밤이 찾아왔다.
하늘엔 별이 너무 많아,
까만 천 위에 은가루를 흩뿌린 듯했다.
바다 위에 비친 별빛은
잔물결에 부서졌다.
파도 소리와 함께
내 안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아무리 애써 살아도
결국은 모두 퇴직하는 날이 온다.
누가 임원이었든, 직원이었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결국엔 다 같은 동네 아저씨일 뿐.”
이제 세부에서의 시간이 끝나간다.
다시 바쁜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세부의 바람과 바다,
그리고 이 고요 속에서 내린 결심만은
잊지 않고자 애쓸 것이다.
내기 기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는, 더 높이보다
더 깊이.
그게 내 남은 길의 방향임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