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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커피 한잔이 그리운 날

어느새 삶의 좌표는 ‘꿈’이 아니라 ‘기한’으로 바뀌어 있었다

by 광화문덕

'게을러진 걸까, 아니면 나이 들어 기력이 떨어진 걸까'


요즘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 부쩍 힘들어졌다.


예전엔 알람이 울리면 금세 일어나곤 했다. 아니, 새벽 4시 반이나 5시만 되어도 저절로 정신이 맑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알람을 두 번, 세 번이나 꺼내린 뒤에야 겨우 몸을 일으킨다. 몸과 마음은 일어나기보다 차라리 더 누워 있고 싶다는 욕망에 지배된다.


오늘도 스스로를 억누르듯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말과 연초는 인사고과가 중요한 시기다. 출퇴근 기록 하나에도 눈길이 쏠리는 시기다. 지금 지각은 한 해 농사 전체에 부정적인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 강제로라도 몸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각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다. 선배들에게도, 후배들에게도 내가 쌓아온 성실한 이미지는 순식간에 게으른 이로 덧씌워질 수 있다. 늘 명심해야 한다. 직장에서 한 번 각인된 이미지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둘러 샤워를 하고, 옷을 대충 걸친 채 부랴부랴 출근길에 나섰다.


가게 유리창에 스친 내 얼굴은 낯설 만큼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무게가 이미 오늘 하루를 예고하는 듯했다.


요즘 들어 가족과의 대화가 부쩍 줄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실이 마음을 한층 더 무겁게 짓누른다. 식탁 위에는 여전히 같은 반찬이 놓여 있지만, 오가는 건 짧은 말 몇 마디뿐이다. 예전에는 사소한 이야기에도 웃음이 터지던 자리였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작은 실수나 우스운 말 하나에도 식탁이 금세 웃음바다가 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필요한 말만 흘러나올 뿐이다.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마음은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듯해 괜히 서글프다. 혹시, 이게 갱년기라는 걸까.


출근길, 부슬비를 맞으며 걷는다.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다시 돌아가서라도 집어 들었겠지만, 요즘은 그냥 빗방울을 맞는다. 이 정도의 비쯤은 그냥 흘려보낸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얼굴에 닿는 차가운 물방울이 무뎌진 감각을 깨우고, 내 안의 감성을 더 깊숙이 자극한다. 순간, 나는 마치 오래된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우스우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장면처럼.


정류장에는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 속에서 우산을 접고 닦아내는 소리, 젖은 어깨, 늘어진 눈빛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버스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몸을 밀어 넣었다. 나도 그 무리 속에 섞였다.


차창에 맺힌 빗방울이 흘러내리며 바깥 풍경을 일그러뜨렸다. 그 왜곡된 창 속에서 내 얼굴마저 낯설게 보였다. 나는 그 낯선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어쩌면 저 얼굴이 지금의 나를 가장 솔직하게 비추는 건 아닐까. 피곤과 불안, 조바심과 체념이 뒤섞인 표정. 그 속에서 ‘살아내고 있다’는 흔적도 함께 묻어 있는 얼굴.


'이게 바로 지금의 나구나'


낯설지만, 부정할 수 없는 내 모습이었다.


“휴…”


무심코 내쉰 한숨에, 앞자리 아저씨가 고개를 돌려 나를 흘끗 본다. 나는 괜히 시선을 피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주말 내내 이유 없는 답답함과 예민함이 따라붙었고, 스마트워치의 스트레스 지표는 줄곧 ‘높음’을 가리켰다. 문득, 오래전 팀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너는 다 좋은데, 너무 예민해.”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지금도 그 말은 오래된 낙인처럼 내 마음에 남아 있다.


'나는 정말 예민한 걸까? 아니면 그저 나답게 살아온 걸까?'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들어섰다. 계단을 내려가자 눅눅한 공기와 지하 특유의 먼지 냄새가 섞여 코끝을 찔렀다. 긴 환승 통로. 젖은 운동화가 타일 바닥 위에서 미끄러질 듯 덜컹거렸다. 사람들은 말없이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았고, 어떤 이는 졸린 눈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 무표정한 얼굴들 속에 나도 섞여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아,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


전동차가 들어오자 굵은 바람이 터널을 따라 밀려왔다. 객실에 들어서니 습기와 사람들의 체온이 뒤엉켜 더 무거웠다. 창밖 유리에 번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50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지금 뭔가를 이루지 못하면 너무 늦어버리는 건 아닐까?'


조바심이 마음을 조였다. 어느새 삶의 좌표는 ‘꿈’이 아니라 ‘기한’으로 바뀌어 있었다. 뭘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놓쳐선 안 되는지 알 수 없는데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압박만이 나를 몰아붙인다. 사면초가. 그 말이 오늘따라 더 가깝게 다가왔다.


불현듯, 젊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서른 살 무렵, 밤새워 취재했던 내용들을 정리해 가며 기사를 붙들던 순간들. 마감이 무섭긴 했어도, 그 무서움마저 짜릿했다. 삼십 대 초반, 야근 후 새벽 공기 속에 마셨던 '카누' 봉지 커피의 쓴맛조차 청춘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커피는 피곤을 쫓는 도구가 아니라, 하루를 버티게 하는 작은 의식이 되어버렸다.


사무실 회전문 옆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자 익숙한 공기가 감쌌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나는 탕비실로 향했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는 특별할 것 없는 맛이었지만, 첫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몸이 조금 풀렸다. 빗물에 젖은 어깨도, 답답한 마음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부슬비처럼 그냥 맞으며 걸어가면 돼. 그리고 커피 한 잔이면 오늘도 버틸 수 있겠지.”


내게 커피는 단순히 카페인이 아니다.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를 때, 기대는 아주 작은 숨구멍. 월요일 아침을 견디게 하는 은밀한 의식. 하루를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가장 사소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위로다.


사실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커피 한 잔에서 느껴지는 작은 위로와 행복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결국 또 하소연만 늘어놓고 말았다.


몽롱한 아침, 자꾸만 가라앉는 기운 속에서 문득 생각한다.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무언가가 필요한 시간, 오늘 같은 아침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커피가 유난히 그립다.


진한 향이 코끝을 스치고, 뜨거운 온기가 몸속을 적셔주는 그 짧은 순간. 그 순간만으로도 하루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가 생긴다.


진하게 내려진 한 잔이 주는 카페인, 그리고 입안을 감싸는 묘한 행복감. 지금 이 순간, 그 무엇보다 간절하다. 이 순간만큼은 왜 사람들이 밥은 거를지언정 비싼 커피를 기꺼이 사 마시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맛있는 커피 한 잔. 내가 좋아하는 풍미의 깊고 진한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의 시작은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 작은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오늘도 거리의 어느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기꺼이 주문할 것이다. 커피 값은 단순한 가격이 아니라, 하루를 버티게 하는 위로의 값일 테니까.


월요일 아침 출근길. 또 한 주가 시작되고, 눈 깜짝하면 금요일이 찾아올 것이며, 주말은 다시 번갯불에 콩 볶듯 빠르게 흘러가겠지.


나는 빗방울 젖은 어깨를 움츠리며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향해 속으로 소심하게 중얼거려 본다.


“오늘도, 우리 모두 힘내자. 그리고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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