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가끔 혼술을 하며 지난 선택들이 내 삶에 남긴 무늬를 더듬어본다
스무 살, 대학교 OT.
1999년 2월의 그날, 나는 처음으로 소주잔을 들었다.
삼겹살집. 아직 낯설고 들뜬 신입생들 사이에서
누군가 따라준 반투명한 소주 한 잔.
유리잔 너머로 비치는 형광등 아래,
내 인생의 첫 술이 그렇게 목을 탔다.
아직도 기억난다.
술을 한 모금 삼킨 뒤 목구멍이 싸해지던 감각.
옆자리 선배는 “오~! 너 술 좀 마시는데?”라며 웃었고,
나는 왠지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던 나이,
이룰 것도, 놓칠 것도 많았던 그 시절.
그렇게 시작된 내 술 인생은
27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었다.
처음엔 설렘이었고,
이후엔 습관이었으며,
어느새 삶이 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술이 아니었더라면
내 인생은 지금과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술로 인해 얻은 인연도 있고,
술로 인해 떠나보낸 소중했던 이들도 있다.
좋았던 날의 기억들도 있다.
친구들과 밤새 웃고 떠들던 자리,
누군가와 깊은 얘기를 나누던 순간.
그러나 대부분의 술은
부끄러운 기억과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으로 남았다.
가끔은 ‘지우고 싶은’ 날도 있다.
기억나지 않는 밤,
헛소리와 실수,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후회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다.
후회의 반복보다,
앞으로의 선택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마흔을 넘기고,
반백에 가까워진 지금.
이제야 조금씩 배워간다.
요즘은 혼술을 하곤 한다.
나의 과거와,
지금 이 순간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내가
서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다.
가끔은 지난 선택들이
내 삶에 남긴 무늬를 더듬어본다.
어떤 선택은 내게 아픔을 남겼고,
어떤 선택은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
이제는 안다.
젊은 날의 실수와 부끄러움도,
결국 나라는 이야기를 완성하는 조각이라는 걸.
앞으로도 또 다른 술잔을 들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내 삶의 지난 선택을 용서하고,
내일의 나를 조금 더 사랑하려 한다.
지금 이 순간,
막막함도, 아쉬움도
모두 ‘살아 있음’의 증거임을 믿으며.
어떤 선택도, 어떤 실수도
지금의 나를 만든 ‘이야기’라는 걸
조금은 받아들이며,
오늘도 새벽 아침 공기를 마시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되뇌어본다.
다시 한번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삶의 기회 같은
더 의미 있게 살아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