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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Apr 18. 2016

#48. 보길도에 내려놓고 온 것

2007년 8월 4일 태풍이 몰아치던 날의 기록

2007년 8월 4일 새벽 6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든 돈과 돼지저금통에 모아둔 돈을 모두 꺼내 집을 나왔다. 약 20만 원 남짓... 당시 내 나이는 28살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출가란 의미가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아들, 난 너를 더는 뒷바라지해줄 여력이 없어... 미안해..."


엄마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내게 대뜸 이 말부터 하셨다. 이 말이 내 마음을 참 아프게 했다. 난 엄마한테 뒷바라지 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새로운 꿈을 꾸려고 하니 그저 바라만 봐 달라고 했다. 기자 준비를 하는 데에는 학원비가 들지 않는다. 꼭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험생활을 병행했다.


그런데도... 집안의 반대는 심각했다. 아버지는 그냥 하던 대로 살면 편한데 왜 그렇게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느냐고 만류하셨고, 어머니는 계속 자신의 능력 없음을 한탄하셨다.


너무도 헌신적이기만 하셨던 부모님이 계셨기에 난 더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결단을 내린다는 것이 지난 28년 동안 키워준 부모에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지원마저 힘들 것 같아서였다.

이대로 살 것인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인가?

난 선택을 해야 했다. 출가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 이대로 부모님의 뜻을 받들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난 스스로 되물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왜 그토록 하고 싶은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때 정리한 내용은 대략 이랬다.


(1)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다.

(2)어두운 곳을 한 줄기 빛을 비춰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3) 방송에서 나오는 기자들의 모습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추상적인 답들이지만, 그 안에 내가 되고 싶은 것은 있었다. '방송기자...'.


지금 돌이켜보면, 난 당시 남들에게 ㄱ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용산역

하필 배낭에 짐을 싸서 나온 날은 서울에도 비바람이 몰아쳤다. 라디오에서는 태풍이 북상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나오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목적지 없이 나와서다. 사실 이전까지 한 번도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었기에... 배낭을 메고 나온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조금은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베어야 하기에... 용산역으로 향했다. 당시 내게 여행하면 떠오르는 것이 '용산역'이었기 때문이다. 용산역에 도착해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어디로 갈지 몰라서였다.


그러다 '목포'란 글자가 낸 눈에 크게 들어왔다. 당시 '목포는 항구다'란 영화가 개봉했을 때였다.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도 있어서 목포로 목적지를 정했다. 항구가 보고 싶었다. 갈매기도, 바다도 보고 싶었다.

6시간 남짓한 여정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선택한 결정이구나'


부모님의 뜻을 따르거나, 늘 남들의 결정에 맞춰 살아왔던 내가 지금은 나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여행을 시작했다는 것이 생소했다.


가방에서 메모장과 펜을 꺼내 들었다. 생각나는 단어를 적었다.


내가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아니면 지금 이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적기 위해서였다.

목포역

그러는 사이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목포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빠져나온 나는 무척 실망했다. 내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역 앞은 용산역 앞과 다를 바 없었다.

"항구가 없네...."


'목포는 항구다'란 영화 제목과 달리, 역 앞은 번화가였다.


실망도 잠시, 배가 고팠다. 오후가 되도록 밥 한 끼도 못 먹었다. 역 앞에 김밥천국이 보였다. 들어갔다. 김밥 한 줄을 시켜 먹으며 다음 목적지를 고민했다.


다음 목적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급기야 '난 여기에 왜 온 걸까'란 회의감이 들었다.


김밥을 다 먹고 밖으로 나왔다. 터벅터벅...


주위를 살폈다. 시외버스터미널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였다. 내키는 대로 가기로 했다. 목적지가 없으니 방황을 피할 수 없었다. 내 주위로 수많은 이들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 다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만 빼고... 난 철저히 이방인이었다. 목적지를 모르는 이방인...

시외버스터미널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땅끝마을 해남행 표를 끊었다. 땅끝에 가면 뭔가 내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시간가량을 버스로 이동했다. 버스 안에서의 생소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투, 대화 속에서 난 철저하게 소외됐다고 느꼈다.

버스는 땅끝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서도 실망했다. 땅끝마을에 조개구이와 모텔촌 외에는 없었다. 나를 찾을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가지?'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큰 배가 보였다. 꽤 큰 배였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배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그런데 배를 타는 승객은 별로 없었다.

'어쩌면 저 배를 타고 들어가면 조용한 곳에서 나를 찾을 수 있을지 몰라'


배는 왕복표를 끊기 위해 갔다.


"학생, 지금 태풍이 올라와서 다들 올라오는데 그래도 들어갈 거야?"


"네??? 네...."

보길도

'보길도'로 들어가는 배였다. 처음 타보는 큰 배는 내게 경이롭기까지 했다. 무서울 정도로 매섭게 부는 바닷바람이 아이러니하게도 내 마음속 고민을 날려주는 듯했다.

'섬에서 명상을 할 수 있겠구나'


그제야 난... 집에서 나온 지 10시간 만에 처음으로 웃었다.


배를 1시간가량 타고 들어가니 도착했다. 조그만 섬이었다. 매우 조용했다.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정말 외지인은 나뿐이었다.

민정이네 민박

태풍이 온다고 했으니, 숙소부터 골라야 했다. 비가 오면 낭패를 볼 수 있어서였다. 마침 '민정이네 민박'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전화를 걸었다. 3만 원이라는 말에 바로 찾아갔다.


어르신 두 분이 날 반갑게 맞아주셨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부부셨다. 난 조용한 별채로 안내됐다. 마당이 널찍했고, 방이 3개가 있었는데 난 가장 구석 자리 방을 내주셨다. 큰 붙박이 장롱과 햇살이 적당히 들어오는 창문이 있는 방이었다.

"학생 밥 먹었어? 안 먹었으면 같이 밥 먹자"


"네..."


주인 어르신께서 나를 마치 아들처럼 대해주셨다. 식사비를 따로 드릴 수 없었음에도 좋은 반찬에 밥을 듬뿍 담아 주셨다. 감사하단 인사밖에 못 해 죄송스러웠다.


허기진 배를 채운 뒤 섬 주위를 서성였다. 조용히 앉아서 명상할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조그만 초등학교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바다가 펼쳐 져 있었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에 나오는 그런 분위기였다.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명도...

보길도 밤바다

바다 앞 자갈로 이뤄진 곳에 주 앉아 가방 속에서 메모장과 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나에 대해 생각했다.

그 어떠한 소음도 없는 그곳에서 난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넋을 놓았다. 어릴 적 되고 싶었던 꿈, 내 삶의 과거와 현재 등등...


자정이 넘어서야 난 숙소로 돌아왔다.


주인 어르신께서는 내가 걱정되셨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나가려는 나를 불러 삼계탕을 끓여주셨다.


내가 고민이 많아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그런 내 모습이 애처로워 보이셨던 것 같다. 식사하면서 주인 어르신께서는 객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자기 딸이 생각나신다면서 "힘내라"고 응원해 주셨다.


용기

오전부터 오후까지 8시간 정도를 멍하니 바다를 보다가 결론을 지었다. 아주 단순하게 결론이 나왔다. 실제로 단순했다. 내 용기가 문제였다. 두려움을 맞설 용기...

도전엔 용기가 필요한데 난 그것을 남들에게 달라고 하고 있었다. 그러니 벽에 부딪혀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내 삶의 결정을 남들의 지지로 선택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때 난 알게 됐다. 난 이제 내 삶의 순간순간마다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을. 무시당하면 좌절하지 않고 이겨낼 용기, 세상의 큰 벽에 부딪혀도 끝까지 부딪힐 용기, 지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서 걸어갈 용기...

지금의 나, 시작점...

이 날을 겪은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미디어/방송 시장에 진입한 내가 '용기'란 것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더라면 미디어/방송 시장을 저주하며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날을 기록하는 이유는, 지금의 내가 있게 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이날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가 존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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