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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Aug 23. 2016

#62. 선배의 혹독한 배려

나를 성장하게 만든 선배의 충고..."함부로 믿지마"

어디냐?


"네 형님, 저 곧 출발합니다."


기사 마감하고 가방을 챙겼다. 친형처럼 모시는 선배와의 저녁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 선배는 나를 굉장히 예뻐라 해주셨다. 같은 매체가 아니었음에도 늘 챙겨주셨다. 그 선배는 인품도 훌륭했을 뿐 아니라, 내게는 멘토 같은 분이었다. 당시 난 그 선배와 친하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뿌듯했다. 존재만으로 든든한 그런 분이었다.


선배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꼭 그 선배를 만나기로 한 날마다 마감이 늦어졌다. 아니면 갑자기 팀장의 지시가 떨어다. 선배는 매번 홀로 식당에서 나를 기다려야 했고, 이번에는 1시간이나 늦었다. 선배는 결국 화가 나셨다.


"너만 마감하냐?"


"죄송합니다... 선배 화 푸세요..."


이날 술자리는 가볍게 끝났다.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노력했지만, 분위기가 더 무거워질 뿐이었다. 상대의 기분을 잘 못 풀어주는 능력 부족 탓도 있다.


물론 나에 대한 선배의 각별한  덕택에 선배는 나를 변함없이 아껴주셨다.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너 내 얘기 하고 다니냐?"


"어... 저... 그게 선배... 선배랑 친하다고 얘기를 하고 다니긴 해요..."


"너 앞으로 어디 가서 내 얘기 하지 않았으면 한다. 너랑 내가 이야기한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주변에 말하고 다니면 어떡하냐?"


순간 뜨끔했다. 내가 선배 이야기를 하고 다녀서 선배가 곤혹스러운 상황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난 1년 차였고, 사회경험이 없었다. 나로서는 친하면 속 이야기까지 해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너무 순진했다. 그들의 일이 기자들과 밥 먹으면서 들은 이야기를 내부 보고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난 선배의 존재감으로 나를 과시하려고 했던 것 같다. 호가호위하려고 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선배와 친하다는 게 당시 내겐 큰 자랑거리였으니 말이다. 나를 내세우기보다 선배를 내세워 나의 존재감을 포장하려고 했다.


선배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배께 마음을 담아 거듭 사과했다. 선배는 무언가 다짐하신 듯 긴 글을 보내주셨다. 거기에 들어있는 단어 중에 기억남는 단어는 마지막에 있던 한 문장이었다... 

앞으로 연락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너무도 충격이었다. 선배는 나에게 굉장히 실망했던 것 같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것 같다.


나는 거듭 죄송하다고 말한 뒤에 더이상 메시지를 남기지 못했다. 면목이 없어서였다.


마음이 시렸다. 나의 생각 없는 행동 하나로 존경하는 선배를 잃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자책도 많이 했다. 앞으로 말조심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한 달...

선배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반성 좀 했냐?

너무 반가웠고 기뻤다.


"앞으로 조심하렴. 네가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너를 이용할 수 있어. 함부로 사람을 믿지 마"


나는 바로 전화를 걸어 선배께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선배는 내게 진심 어린 충고를 잊지 않았다. 연차에서 나오는 경험이 담겨 있었다. 


6년 뒤...

나는 최근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번에는 내가 선배와 비슷한 상황이 됐다. 개인적인 이유로 후배에게 내 이야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이를 무시했고 그 결과 난 약간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후배에게 실망했다. 내가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음에 자책했다. 그런 과정에서 지난날의 내 경험이 떠올랐다. 8년차가 되어서야 난 당시 선배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선배의 배려 덕택에 솔직히 후배를 탓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때 내가 선배에게 귀한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난 지금도 '떠버리'가 되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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