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이란 것을 일반화할 수 있을까?
미식이란 무얼까
요즘 미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책도 샀다.
1700년대에 살았던 프랑스 귀족이 쓴 미식에 관한 글이 담긴 책이다. 읽다보면 귀족의 자부심과 긍지는 느껴지지만 내가 기대했던 미식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주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책을 산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옛날 귀족들이 생각한 미식에 대해서 생각해볼만한 여지는 충분히 줬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음식을 먹으며 했던 그들의 생각, 음식에 어떤 의미를 두었는지, 왜 칠면조로 손님을 대접했는지 등에 대한 다양한 당시 시대상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그 이상은 없다. 결국 미식이란 개념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미식이 꼭 고급요리여야 하는가
아침 식사를 하다가 불연듯 깨달았다. 역시 깨달음은 불시에 나를 찾는다.
그동안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미식의 필수조건은 소식이며, 미식은 고급요리를 통해 올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난 믿었다.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포만감이 없어야 하고, 그러려면 소량을 먹어야 한다고 말이다. 한계효용의 법칙의 대표적인 사례로 식욕을 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대식가는?
천성적으로 대식가가 있다. 그는 배불리 먹어야 행복함을 느낀다. 포만감이 충족되지 않으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그에게는 불쾌함을 줄 뿐이다.
그에게 미식의 기준은 맛과 양이 모두 충족해야 하는 것이다.
채식주의자에게도 똑같다. 그는 육식을 통해서 맛의 쾌감을 극대화할 수 없다. 육식을 좋아하는 이는 아무리 잘 짜여진 채식 식단보다 한 점의 고기에서 더 큰 만족을 느낄 수 있다.
빵을 너무도 사랑해 온종일 빵을 먹는 사람에게도, 밥의 단맛에 푹 빠져있는 이에게도 그들의 최고의 맛의 쾌감은 그들이 사랑하는 것을 먹었을 때 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의문이 들었다.
'과연 미식이라는 것이 보편화해서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다.
사람들이 맛집이라며 성지순례를 하는 곳이나 미슐랭가이드에서 별인증을 해준 곳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모든 이들에게 맛의 기쁨을 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내가 생각하는 미식
내가 생각하는 미식,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란 건강한 음식을 취하는 것이다.
건강한 음식이라 함은 자극적이지 않은 자연의 맛의 어울림을 최대한 살리고자 한 요리를 말한다.
조리 과정에서 인공 조미료 등이 아닌 자연이 주는 재료를 통해 그 안에서 맛을 어우러지게 하는 것, 그런 요리를 먹는 것이 미식 아닐까.
그러려면 먹는 이도 요리하는 이만큼 잘 알아야 한다. 재료의 특성과 재료 간의 궁합에 대해 많이 연구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재료로 잘 만든 것인지, 아니면 좋은 재료만 가득한 음식인지 구분할 줄 아는 눈이 생긴다.
이것이 자연의 맛이지
요즘 '나는 자연인이다'란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배울점이 많아서다.
"생선이라도 다 같은 맛이 아니여. 생선들도 저마다 고유의 맛이 있지"
이 이야기를 듣고 감탄했다. 그동안 생선은 모두 똑같다고 치부해왔다. 맛을 느끼기 보다 보기에 좋은, 어디에서나 먹어봤음직한 또한 그러한 요리를 만드는데 집착해왔던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자연인은 달랐다.
"우리는 매운탕하면 붉은 국물의 매콤한 맛을 생각하지. 근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여"
자연인은 자연이 준 생선 본래의 맛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물에 생선을 넣고 거기에 마늘과 파, 고추를 넣고 끓여냈다. 매운탕에 그외의 조미료는 없었다.
깨달음을 얻었다.
'미식이란 주요 재료가 가진 본래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입이 즐거운 요리, 그것을 먹는 즐거움.'
그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확실한 것은 아직 초보단계인 내게, 미식이란 개념은 너무 어려운 경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매순간 맛에 대해 고민하다보면 언젠가 미식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