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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Jan 05. 2019

#75.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

당시에는 모든 걸 내놓을 정도로 간절했지만...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진동 소리가 요란하다. 오전 보고를 마무리하고 조금 쉴만하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 뜬 번호를 봤다. 모르는 번호였다. 순간 고민했다. '받을까 말까'...


조금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제보 전화일 수 있으니 받았다.


"신동진 기자님이시죠?"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대방은 이미 나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저는 ㅇㅇㅇ입니다.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잠시 뵈었으면 하는데요"


상대는 전화상으로는 용건을 말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그래서 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약속한 날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무슨 용건일까 너무도 궁금해서였다. 상대를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마치 007영화를 찍는 것 같은 스릴이 느껴져서다.


'딸랑딸랑'


문에 걸어놓은 청명한 종소리가 울리며 들어오는 한 남성이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성금성금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미 내 얼굴을 알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신동진 기자님?"


중후한 외모와 멋스럽게 입은 정장, 코트가 그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왠지 모를 상대의 아우라에 면접에 임하는 아이가 되어버린 기분이랄까. 어른 앞에서는 아이가 되는 것 같다.


"저.... 무슨 일로...."


"뭐 드시겠어요? 차부터 좀 시키고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시죠"


상대는 능수능란했다. 마치 나를 손바닥 위에 놓고 모든 걸 다 내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에서는 그 어떠한 교만함과 권위감은 없었다. 나를 하대하거나 하지도 않았으며 교양있는 말투와 상대를 배려하는 단어를 사용하며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네??? 이직이요???"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실 당시 난 이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조직에 환멸을 느껴서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강력 주장하는 글을 쓰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이니.... 이외에도 많지만....


이직 제안은 이상적이었다. 연봉부터 처우, 게다가 매체 영향력 모두가 지금보다 훨씬 나았다. 게다가 사실 가고 싶은 매체였기도 했다. 어쩌면 언론사를 준비하는 모든 이가 선망하는 회사일지도 모르겠다.


"제안에 응하시겠어요? 시간이 별로 없으니 생각해보시고 연락주세요"


상대는 쿨했다. 나를 보자고 해놓고 전혀 내게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상대는 나 아니어도 올 사람은 많다는 뉘앙스를 풀풀 풍겼다. 역시 프로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럼에도 난 상관없었다. 이미 내 마음은 그 회사의 정문 앞에서 출근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직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방 안에 누웠다.

집에 도착하니 멍했다. 집안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붕 떠버렸다.


잠도 오지 않았다.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본 지가 참 오랜만이었다. 수년이 흘렀으니... 며칠을 끙끙대며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또 고치고를 반복했다. 무언가 계속 부족하다고 느껴져서다.


메일이 발송되었습니다

시간이 다 됐다. 생각이 있다면 오늘까지 이메일로 이력서와 자소서 등을 메일로 보내 달라고 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한 후에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며칠 뒤

1차 면접 일정이 잡혔다는 통보가 왔다. 휴일이라 눈치 보지 않고 면접에 임할 수 있었다. 차수가 올라갈수록 이직에 대한 마음은 점점 더 커졌다.


1차 면접도 합격이 되었고 이제 2차 면접 날이 다가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이미 난 이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강렬함이 내 몸과 마음을 휘감고 있었다.


모든 면접 과정이 끝났다. 그리고 난 이미 이전 직장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떠나버렸다. 지금 전형이 진행되고 있는 이 회사에 마음을 다 빼앗겨 버렸다.

하지만...

최종 면접에서 난 떨어지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마음도 허망함으로 가득해졌고 그 무얼 해도 즐겁다는 기운이 올라오지 않았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 것이다.


무기력해짐도 찾아왔다. 어쩌면 이 역시도 시련과 같은 것이리라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간절했기에... 너무도 그 회사에 대한 기대감이 커서였기에... '탈락'이란 통보는 내게 큰 아픔과 시련의 날들을 주었다.


좌절감과 패배감에 빠졌다. 늘 그렇듯이 시간이 필요했다.

몇 년이 지나고....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 회사로 이직하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너무도 가고 싶었던 회사였기에 더 멀리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당시에 불합격한 것에 감사하고 있다. 당시에는 너무도 간절하고 그것이 아니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격만이 내 삶의 전부인 양 착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왜 그때 내게 그것이 허락되지 않았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시련과 아픔을 이겨내는 동안에는 너무도 힘들지만 그 과정에서 더 성숙해지고 단단해졌다. 물론 당시로부터 이 마음을 이겨내는 동안에는 너무도 힘들었지만 말이다.


오춘기(?)를 겪는 중...

요즘 불면증과 요동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심적 불안함이 이토록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마음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얼마나 하루하루를 이겨내며 살아가는지도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난 요즘 이런 생각을 하며 힘든 나날을 이겨내고 있다.


'지금 이러한 나날들을 잘 이겨내면 먼 훗날 내가 지금의 이런 심적 고통을 겪은 것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이 왜 일어나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중에는 알게 된다. 인생은 현재에 일어나는 무수히 많은 점이 이어져 미래의 점을 찍고 그 점들이 모여 내 삶의 여정을 만드는 것이니...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독여본다.


'지금 내가 이토록 심적 고통을 받는 것도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오늘도 잘 이겨내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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