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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Mar 18. 2017

고통을 통한 성숙

'당연한 건 없다'는 인생을 배웠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사실 최근 많은 일이 있었다. 글로 다 옮겨 담지 못할 만큼. '언젠가는 글로 풀어낼 날이 있겠지'라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왜 기자를 그만뒀냐고. 어떻게 답을 해야 할 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거다. 한 가지 일이 벌어지는 데에는 굉장히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그 여러 변수 안에서는 내적, 외적 변수가 모두 존재한다. 사람에 따라서 환경을 탓할 수도 있고, 자책할 수도 있다.


내 경우 처음에는 외적 변수에 대한 원망이 컸다. 그러다 알게 됐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왔을 수 있다는 것을.


당시 느꼈던 외적 변수에 대한 심경은... 소설가 김훈씨가 최근 작품을 내놓으며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했던 말로 갈음하고자 한다...

나는 다 안다. 내 선배들은 정말로 잘 알 거다. 1980년. 내가 1974년에 입사해 1년 수습하고 5년 반 차 기자였다. 그때 나를 지휘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일을 써야 되나. 자신이 없다.
당연한 것은 없다

최근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 지난날 내가 당연시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매달 꼬박꼬박 어김 없이 들어오는 월급, 직장이 있다는 것에 따른 심리적 안정감, 밥을 먹고 난 뒤 고민 없이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시간적 여유, 선뜻 누군가를 위해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심적 여유, 어떤 사람들과도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자신감 등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전세자금 대출상환 압박과 전달 맘놓고 긁었던 카드값 고지서 등 금전적 요인은 심적 안정감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난 그 누구를 만날 수도 없는 상태가 됐다.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저 아래 지옥 불구덩이로 치닫고 있었다. 사람을 만날 시간은 많았지만, 그 또는 그들과 만나 소비할 돈은 없었다. 만남이란 단어를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요즘 뭐 하세요?

대외적 관계에 소극적이 될수록 전화기는 분주해졌다. 대부분의 전화는 받지 않았다. 회신도 하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큰 탓이기도 하다.


간간이 지인들과 통화하기도 했는데, 휴대전화 속에서 들려오는 말 중 "요즘 뭐 하고 지내(니)?"란 말은 심적으로 나를 힘들게 했다.


나를 돌아봤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너무 쉽게 이 짧은 한 문장을 고민 없이 말했던 것은 아닐까...' 지난날에는 단순히 안부로 치부됐던 짧은 인사 문장이었음에도 내겐 이 문장이 주는 파괴력은 굉장했다. 영어회화를 배우러 가면 아주 쉽게 배우는 단어임에도 말이다.


어쩔 수 없는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직업에 대한 질문 또는 자기소개.... 이 질문을 받으면 얼굴이 화끈해져 옴을 느꼈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특히나 브런치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나를 이미 알고 있던 분들이 반갑게 인사해줬을 때에는 '그 마음을 알기에...' 난 어색한 미소로 화답해야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용기를 내서 내게 다가와 준 이에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방황의 날들

추운 겨울날 온종일 걷기도 했다. 목적지는 없었고 그저 밤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PC방이란 곳에서 하루를 보내보기도 했다. 10년 만에 와보니 PC방은 최첨단 시설이었다. 특히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기계식 키보드의 키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애정을 가지고 즐겨하던 브런치와 페이스북 등 SNS는 최대한 자제하려고 애썼다. 특히 부정적이거나 우울한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았다. 허세 글만 쓰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단순히 신세 한탄의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

당시 하루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잠자는 때였다. 잠잘 때만큼은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다. 꿈속이 천국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현실은 불안의 고통이었다. 아내를 볼 면목이 없었다. 아들에게 사탕하나 사줄 여유도 없었다.


하루하루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나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겨울잠을 자고 싶다.
자고 일어나면 마치 내가 겪고 있는 모든 것들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소중한 사람들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 때 '소중한 사람들'이 보였다. 많은 이들이 날 떠나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 존재를 잊어갔다.


그중에 어떤 이들은 내가 그들을 잊을까 자신의 존재를 내게 각인시켜줬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내 자아를 진심으로 보듬어줬다.


"어려움을 겪어봐야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는 옛말이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다시 긍정적인 나로
내 스스로가 알아서 변화하지 않으면
세상이 나를 변화하도록 만듭니다.
물론 후자가 훨씬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성장을 위해선 변화는 필요합니다.
- 혜민스님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됐다. 내게 일어난 일이 나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믿음이 생겼다.

그저 난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다.
난 내게 주어진 사명이 있을 것이다.
어떤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현재를 충실히 살면서 위기를 극복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라고.


어느 순간 난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의 나를 통해 앞으로의 나는 더욱 성숙해질 것이라고 말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지금의 고통은 선택이 아닌 필수일 것이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사리분별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문구가 바로 '사리분별'이다.

사리분별이란, 드러내고 숨길 것을 분간해 내는 능력.
세상의 모든 것에는 사(事)와 리(理)가 있다.
아무에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철없는 어른이 아니라 이제는 조금더 신중하고 무게감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내게 주어진 성장통이라 믿기로 했다.

철부지라는 말은
'절부지節不知'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한마디로 계절을 모른다는 뜻이다. 농사는
시기를 놓치면 1년을 망치기에 우리 조상들은
철을 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구분하는 일. 철에 맞춰 심어야 할 때
심고, 가꾸고, 거두는 일은
중요한 지혜였다.
- 정희재의《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중에서 -
삶의 변화

사실 지난날 나는 내가 속했던 조직에 불평불만이 많았다. 내가 가진 것들에 만족하기보다 늘 더 나은 것을 갈구하기만 했다. 내가 가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가볍게 치부했다. 경솔하게도...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내가 오늘도 웃으며 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만으로도 축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생겼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감사함은 지친 내게 활력소 같은 존재다.


이젠 안다. 매달 꼬박꼬박 어김 없이 들어오는 월급, 직장이 있다는 것에 따른 심리적 안정감, 밥을 먹고 난 뒤 고민 없이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시간적 여유, 선뜻 누군가를 위해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심적 여유, 어떤 사람들과도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자신감 등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다시는 잃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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