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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찌 Sep 05. 2020

사전의 자존심

시대와 세대

어느 한 서점.

먼저 소설이 먼저 운을 뗀다.


"난 말이야 세상의 어떤 이야기도 다 담을 수 있지."


그 옆에 에세이가 받아친다.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나만 한 책은 없을걸."


위쪽의 교양서가 차분히 말한다.


"난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그 이상의 가치를 생각하게끔 만들지."


앞쪽에서 만화가 질세라 거든다.


"인기를 말할 때 나를 빼면 섭섭하지~"


각종 책들이 너 잘났니 내 잘났니 아웅다웅 옥신각신하던 그때,


"야! 다들 조용해! 너 만화책! 넌 글도 별로 없는 주제에 무슨 큰소리치고 있어!"


일순간 정적이 되었고 모든 책들의 시선은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그곳엔 사전이 있었다.

사전은 대중적이지 않으면서 가장 대중적인 각 가정의 필수품, 아니 필수 장식품이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상식 그리고 단어로 구성된 사전은 그 내용만큼이나 거대하며 가격 또한 비쌌다.

그래서 권위 또한 상당했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만 같았다.

.

.

.

시간은 흘러 세상은 온라인 시대로 바뀌게 되었다.

내용이 디지털화되어갈수록, 서점은 많이 사라졌고 책들의 입지는 좁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책들도 꾸미기 시작했다.

독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 표지 디자인도 신경 쓰기 시작했으며, 좀 더 직관적이고 읽기 편하게 바뀌려고 노력했다.

사전은 그런 책들의 노력을 영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우리 책들은 말이야. 기록을 저장하고 문학을 창조한단 말이야. 껍데기보단 내용이라고.'


사전은 자존심에 현실을 애써 부인하고 권위를 지키려 애써보지만 이젠 누구도 더 이상 찾지 않았다.

.

.

.

어느 도서관.

먼저 소설이 먼저 운을 뗀다.


"내가 한창 잘 나갈 땐 말이야 티브이 광고도 했다니깐."


그 옆에 에세이가 받아친다.


"광고가 뭔 대수라고 난 그 당시 젊은이들을 행동하게 만들었지."


위쪽의 교양서가 차분히 말한다.


"책의 기본이 뭐냐 판매 아니야~ 난 천만 부 이상 팔렸다니깐."


앞쪽에서 신문이 질세라 거든다.


"나는 너네들과 달리 매일 새롭게 태어나지."


각종 책들이 너 잘났니 내 잘났니 아웅다웅 옥신각신하던 그때,


"야! 다들 조용해! 너 신문! 넌 근본도 없는 주제에 무슨 큰소리치고 있어!"


일순간 정적이 되었고 모든 책들의 시선은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그곳엔 사전이 있었다.


"너네들 쓰고 있는 말과 글 그리고 지식과 상식! 그거 전부 내가 다 기록한 것들이야. 이 세상을 발전시키는데 내가 얼마나 공헌한 줄 알아? 지식을 저장하고 가르치고 내가 얼마나..."

"어 쉿! 사람 온다!"


개관시간이 되고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필요한 분야 책을 찾거나 읽었다.

아빠 손을 잡은 한 아이가 사전 앞에 선다.


"아빠 이 책은 뭐야?"

"응 사전이라고 하는데 공부할 때 보는 책이야."

"와 진짜 두껍다. 아빠도 이걸로 공부했어?"

"그럼."

"나도 나중에 이걸로 공부해야겠다!"


아이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아빠를 쳐다본다.


"아니 이젠 여기서 찾으면 돼."


아빠는 스마트폰을 꺼내며 빙그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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