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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찌 Aug 08. 2020

아이와 고양이

환경에 따른 시선


어둑어둑해지는 하늘.

잠에서 깨어난 아이는 힘껏 기지개를 켠 후 방 안을 둘러봤다.

곧 엄마가 올 시간이었다.


띠. 띠. 띠. 띠리리


현관에서 도어록 소리가 났다.


'엄마다 엄마!'


아이는 반가운 마음에 냉큼 현관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아이를 꼭 안았다.

그리곤 사랑스럽게 쳐다봤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커다오.'


아이는 엄마 품이 답답해 빠져나왔다.

그래도 엄마는 마냥 아이가 사랑스럽기만 했다.

아이는 호기심이 강했다.


움직이는 자동차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알록달록 건물들


아이는 매일 창 너머 세상을 관찰을 하며 동경했다.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꼈다.


'바깥세상은 무섭고 위험해'


아이는 조르고 보채도 봤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엄마의 과잉보호와 비례해 호기심은 더욱더 강해졌다.

.

.

.

오늘도 아이는 엄마가 출근한 사이 바깥세상을 보고 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잿빛 하늘 아래 알록달록 움직이는 우산들로 눈이 즐거웠다.


'응?'


아이는 골목 한구석 쓰레기 더미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곳엔 온몸이 젖어 덜덜 떨고 있는 고양이가 먹을 것을 찾아 비닐 더미를 헤집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저곳 살피다 한 봉지를 잡고 발톱으로 뜯어내었다.

흘러나오는 각종 쓰레기와 음식 오물들

고양이는 허겁지겁 먹으려는 찰나 아이의 기척을 느끼고 위를 쳐다본다.

고양이와 눈을 마주친 아이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 순간 아이는 창에서 벗어난다.

아이는 텅 빈 방 안에서 엄마가 차려 놓고 간 밥을 먹기 시작한다.

배부름에 오늘도 꿀잠이다.

시간이 흐르고 배가 고파 아이는 깬다.

엄마가 오고도 남을 시간인데 어째 조용하다.

아이는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띠. 띠. 띠. 띠리리


엄마는 비틀거리며 곧장 침대로 향해 아이를 안는다.

술 냄새가 진동한다.

엄마는 피곤한지 그대로 곯아떨어진다.

아이는 역한 냄새에 엄마 품에 빠져나온다.

그 이후 엄마는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휴대폰 보는 날이 많아진다.

아이는 그렇게 변하는 엄마가 섭섭하지만 이해하려 한다.

귀가 때 엄마품에 안기며 애교를 부린다.

아이는 엄마가 전부니까.

.

.

.

띠. 띠. 띠. 띠리리


어쩐 일로 오늘은 일찍 귀가다.

엄마에게 달려가던 아이는 멈칫한다.

엄마 뒤에 낯선 남자가 있다.

아이는 무서워 창쪽으로 도망간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달랜다.

남자도 웃는 얼굴로 다가오지만 아이는 섭섭할 뿐이다.

엄마가 그동안 소홀했던 이유를 그제서야 깨닫는다.

아이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알록달록 화려한 빛과 쿵쿵 들리는 소리는 아이로 하여금 유혹을 한다.

이윽고 아이는 반항을 결심한다.


'없어져봐야 알지.'


시간은 흐르고 남자는 자리에 일어난다.

아이는 남자가 문을 열기만 기다린다.

그리고 힘껏 달린다.

뒤에서 엄마의 외침이 들린다.

.

.

.

밑에서 보는 세상은 위에서 보는 세상이랑 정말 다르다.

그저 세상은 답답하고 막혀있는 벽과 벽 사이일 뿐이다.

화려한 불빛과 알록달록한 색들은 벽들 사이에서 잠시 스칠 뿐이다.

낮에 한바탕 비 온 탓일까 매우 추웠다.

아이는 후회가 들기 시작한다.

당장 집에 돌아가고 싶지만 스스로 발걸음을 돌리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엄마가 찾으러 오겠지? 그때 못 이기는 척 들어가는 거야.'


아이는 돌아다닌다.


야옹야옹


어디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낮에 봤던 그 고양이의 눈빛이 느껴진다.

아이는 동공이 커지며 심장이 요동친다.

낮에 봤던 불쌍하고 처량한 몰골이 아니다.

뛴다 그냥 뛴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는 정신없이 뛴다.

점점 시끄러워지고 점점 밝아진다.


'그래 저기로 가면 될 거야.'


탁 트여서 안도한 순간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함께 아이는 정신을 잃는다.

.

.

.

한참 후 아이는 깨어난다.

다리가 욱신거린다.

아이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엄마! 엄마!

멀리서 엄마의 그림자가 보인다.

아이는 후회와 안도를 느끼며 엄마품에 꼭 안 낀다.

병원으로 간 엄마는 아이와 수술 후 만남을 약속한다.

수술은 잘 됐고 아이는 엄마를 기다린다.

하루 이틀

퇴근 후 금방 올 것 같았던 엄마는 소식이 없다.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들도 달라진다.

불안해진다.

틈을 타 도망가기를 마음먹는다.

.

.

.

더 이상 아이에겐 세상은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그냥 더럽고 시끄럽고 복잡하고 위험한 곳일 뿐이다.

어서 집에 빨리 가야 된다.


'엄마는 바쁠 거야 내가 이해해야지.'


정처 없이 돌아다닌다.

넘어지기도 하고 구르기도 한다.


'집이다'


드디어 익숙한 풍경의 냄새가 느껴진다.

처음으로 바깥에서 바라보는 우리 집이 이렇게 좋았던가.

어둑어둑해지는 하늘.

아이는 숨어서 엄마를 기다린다.


'와락 안기면 놀라면서도 기뻐하겠지?'


멀리서 귀가 중인 엄마가 보인다.

아이는 살금살금 다가가 엄마에게 와락 안 낀다.


"꺅!"


엄마는 비명소리와 함께 아이를 내동댕이 친 후 기겁하며 줄행랑을 친다.

아이는 어안이 벙벙하다.


'왜? 왜? 왜?'


황당하고 서러워 눈물이 나온다.


야옹야옹


어디서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쪽을 본다.

그곳엔 하얗고 예쁜 고양이가 아이를 내려다보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이가 바깥세상을 동경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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