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49일. 체코 3일 ~ 다시 터키 1일.
*이번 글은 이동하는 내용만 있어요. 이동시에 사진을 찍지 않아 다음날 여행했던 이스탄불 사진을 첨부하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평소보다 양도 아주 적어요. 눈요기로 쉬어가며 봐주세요.
원래 계획은 오전에 잠깐 프라하를 산책하고 쉬다가, 오후에 공항 가는 게 목표였어. 그러나 어제 너무 많은 사람들 속에 다니다 보니 지쳤나 봐. 아침에 늦게 일어나긴 했지만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다시 잠들어 버렸어. 그리 오래 자지는 못하고 깨버렸어. 그래도 침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어.
그렇게 있다가 나가기는 늦어서 짐 정리도 하고 오랜만에 한국에도 전화했어. 전화하니 '며칠 지나면 이번 유럽 여행도 끝이구나'라는 게 확 느껴졌지. 전화하려고 사람 없는 곳을 찾다가 게하를 자세히 구경할 수 있었어.
유럽의 오래된 도시를 구글맵으로 보면 가운데가 빈 네모난 형태로 한 블록을 이루는 것을 알 수 있어. 이게 한 건물이 아니라 여러 개의 건물이 붙어 이루고 있어. 빈 공간은 건물 뒤편으로 정원 또는 주차장으로 이용하거나 부가 건물을 짓어 사용하기도 해. 예전 한국에는 잘 없었지만, 요즘 생기고 있는 가운데가 비어 있는 타워형 아파트와 비슷할지도?
이 게하도 과거 유럽식으로 오래된 큰집이라 옛 유럽 가정집의 구조 같은 걸 알 수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어. 그래서 프라하에서 빈둥되는 것도 나름 괜찮은 경험이었지.
어느덧 점심때가 되어 짐 정리를 끝내고, 식당에서 점심 먹으며 게하 사람들과 수다를 떨었어. 이날은 유럽에서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유독 많아서 유럽의 생활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어. 특히 클래식 전공하는 학생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신선하고 재밌었어. 클래식 본고장에서 공부한다는 게 부럽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혼자 생활한다는 것도 대단하다고 느껴졌어. 그러다 클래식의 도시인 프라하에서 공연 하나 보지 않았다는 게 아쉬웠어. 너무 건축물에만 빠져 있었나 봐. 뭐, 다음 올 때 해야지.
그러고 보니 유럽 와서 교환학생이랑 유학생들을 꽤 많이 만난 거 같아. 다들 내 전공을 들을 때마다 왜 유학가지 않았냐? 왜 더 공부하지 않았냐?라고 물어. 박사 할 타입이라나? 잘 받아넘기다가 짤츠에서 대학원생들이랑 이야기하다 너무 무거운 분위기가 되어서, 이후에는 '그냥 여러 일이 있었어'라고 간단히 넘겼어. 나도 했다면 잘하며 지냈을까?
짐을 챙기고 독일에서 클래식 전공한다는 학생과 같이 게하를 나와 이야기를 하다, 인사를 나누고 중앙역으로 향했어. 잘 따라 주고, 잘 맞는 부분도 있고, 클래식에 관해서 물어볼 수 있어서 '어제 만나서 같이 여행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었어.
중앙역(Praha hl.n.)에서 공항버스를 탈 수 있어. 공원을 거쳐 아래에 있는 현대식 역으로 들어가 끝부분까지 가서, 위층에 있는 19세기의 오래된 중앙역으로 올라갔어. 이 역 앞이 공항버스 정류장이야.
덕분에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오래된 역을 구경할 수 있었어. 정말 아래층과 너무나도 달라. 그리고 이곳은 표 예매나 탑승 같은 업무를 하지 않아. 다들 아래층에서 예매하고 지하를 통해 바로 플랫폼으로 나가. 그래서 사람도 거의 없었고 나처럼 구경하는 몇몇 뿐이었지. 그래서 박물관 같은 느낌이었어. 역 외관 끝쪽에 공사하고 있어서 더 사람이 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이렇게 그냥 놔두기에는 크기도 하고 역사도 있고 여러모로 조금 아까운 건물이었어.
버스 줄이 점점 길어져서 많은 구경은 하지 못하고 줄을 섰어. 10분쯤 기다리자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어. 가는 길에도 프라하 성을 볼 수 있어서 이틀 동안 있었던 일이 생각나 좋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했어. 이런 감정이 여행의 끝자락 같은 건 가봐.
한국어가 가득한 공항에 도착하니 오늘도 한국 사람들로 가득했지. 아! 다른 공항에 비해 한국 직원도 상당히 많아. 그래서 영어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항 업무를 쉽게 볼 수 있어 좋았어. 프라하에 한국인이 많은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어. 또 좋은 건 무료 와이파이! 덕분에 오랜만에 무한도전 하이라이트를 보며 탑승을 기다렸어.
4시간을 날아가 사비아 괵첸 공항에 도착했어. 이곳은 저가 항공사가 이용하는 곳으로 아타튀르크 공항보다 작고 도심에서 멀어. 그래서 이스탄불이 유럽여행의 출발점이었지만 아타튀르크 공항만 가 보았기에 새로운 느낌이었어. 그러나 이곳도 입국심사가 너무너무 오래 걸려.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내리더니 뛰어가던 이유가 있었어. 심사를 기다리는 줄 끝은 이미 입국심사대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어. 이건 분명히 앞 비행기가 아직도 입국 심사를 마치지 못한 거였어.
'아..... 귀찮아.'를 하고 있을 때, 앞 뒤에서 한국말이 들렸어. 프라하 공항에서 출발해서 그런지 한국인이 많았나 봐. 보통이면 아무 말도 않겠지만 너무 지겨웠는지 앞쪽 일행에게 '원래 이런 곳이에요. 한국과 달리 엄청 느려요'라고 말해버렸어.
밖은 점점 해가 짐에 따라 노랗게 변하기 시작하는데, 겨우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다니 답답했어. 그리고 오랜만에 2시간 넘는 비행이라 상당히 피곤했어. 시간이 지나 이제 입국 심사대가 보이기 시작하자, 다음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을 길게 만들었어. 그런 광경을 반복적으로 보며 한참을 기다려서야 간단한 입국 심사를 마칠 수 있었어. 입국 심사가 늦어진 덕분에 짐은 얼마 기다리지 않고 찾을 수 있었지. 시간에 맞춰 내어주나 봐.
ATM에서 터키 리라를 인출한 뒤, 길 건너 공항버스를 타러 갔어. 버스가 굉장히 많아서 탁심 가는 버스를 잘 찾아야 돼. 버스기사에게 탁심 가냐고 확인하는 게 좋아. 터키는 처음 올 때도 그랬지만 늘 정신없는 곳인 거 같아. 뭔가 시스템도 없고 주먹구구식 느낌이라 번잡하고 답답해. 귀차니스트에 효율을 따지는 성격이라 그런 걸 지도 몰라. 출발 전에 기사가 티켓을 받아. 이때 티켓을 사도 돼. 출발 시간을 딱 지키는 게 아니라 사람이 차야 출발하는 거 같았어.
달리는 버스에서 본 이스탄불은 허허벌판에서 작은 주택들이 모여있는 곳을 지나, 가면 갈수록 높아지는 고층 아파트들이 나타나고, 한국처럼 산 중턱에도 아파트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어. 그걸 보고 놀랐지. 터키도 넓으니 동네마다 많이 다르다는 걸 알았어.
1시간쯤 지나 탁심 광장(Taksim)에 도착했어. 오르막 도로에 내려줬는데, 너무 어두워져서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쉽게 되지 않았어. 이스탄불에서 가장 핫하다는 탁심 광장이라지만 주택가 골목 같았어. 이럴 땐 사람들을 따라가는 게 정석이지. 그렇게 따라 내려가니 찾던 광장이 나왔어.
마지막 여행지라 멀리 많이 다니지 않고 편하게 산책할 생각이라서 게하를 술탄 아흐메트 광장(Sultanahmet Meydanı) 가까이 잡았어. 그래서 이곳에서 푸니쿨라(F1)를 타고 다음 정거장인 카바타쉬(Kabatas) 역에서 내린 후에 트램을 타고 귤하네(Gülhane) 역에서 내려야 했어.
그래서 두리번거리며 푸리쿨라를 찾고 있는데, 한국인 대학생이 말을 걸어왔어. 경찰대 학생이라 그런지 내 나이를 듣고선 자세가 확 달라지더라. 그러곤 방향이 같으니 자신이 안내하겠다고 했어. 그래서 이번에도 날로 먹으며 편하게 갈 수 있겠다 싶었지.
푸니쿨라가 지하에 있다고 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어. 그리고 자동 발매기에 가서 표를 발매하려는데 영어가 안 보였어. 그때 뒤에 서 있던 이스탄불 3명의 청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차례대로 설명해줘서 쉽게 할 수 있었어. 난 유럽 여행 첫 여행지에서 이스탄불을 구경한 친구에게 이스탄불 교통카드를 받아 가지고 있어서 그 청년들이 충전해줬어. 이곳도 엄청 친절한 거 같아. 근데 우리가 도움을 받았는데 왜 우리보다 더 좋아하는 걸까?
그나저나 중요한 건 이곳은 막힌 지하가 아니라 차가 쌩쌩 다니는 지하도로(Cumhuriyet Cd.)였어. 지하철이나 푸니쿨라가 다니는 게 아니라 버스만 다니고 있었어. 그래서 이곳이 아닌 거 같다고 말했더니 안내하던 학생이 줄을 서 있는 아저씨한테 물어서는,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이동했어. 하지만 다시 오니 그 반대편이었어. 학생이 너무 뻘쭘해하면서 '죄송합니다.' 하길래 웃으면서 '괜찮아 이번에는 내가 찾아볼게'하고 내가 나서기로 했어.
우선 탁심광장으로 다시 돌아가 지하철(M2) 마크를 찾았어. 그곳으로 들어가니 푸니쿨라(F1) 역이 있었어. 안내판을 따라 플랫폼으로 가자 폭이 넓은 지하철 같은 것이 있었어. 그리고 이내 출발하자 비스듬히 막 내려가는 거야. 뭔가 엄청 신기했어. 푸니쿨라라는 말이 케이블 카라는 뜻 이래. 그래서 도르래를 사용해서 이동해서 엄청 큰 엘리베이터를 탄 느낌이랄까?
신기한 짧은 경험을 하고는 다음 정거장에 내려 트램을 탔어. 푸니쿨라도 사람이 많았지만 트램은 더 많았어. 가면서 일행과 여행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까 헤맨 것 때문에 계속 죄송하다는 거야. 여행에서 길 찾는 일은 흔한 거니까 딱히 신경 쓰지 않았어. 그래도 그런 행동에 어린 대학생이 착하고 매너가 좋다고 느껴졌어. 그리고 숙소도 내가 있는 곳으로 옮기고 싶지만 이미 약속한 일행이 있어서 어쩔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어. 아니, 처음 보는 사람인데 말이야. 내가 붙임성이 없어서 이런 붙임성 있는 사람이 편해. 그래서 나도 조금 아쉽긴 하더라. 길을 헤매긴 해도 재밌을 거 같았어. 길 찾는 건 내 특기니깐. 경찰대 학생이 인사를 하며 먼저 내리고 난 귤하네역에서 내렸어.
게하까지 30m 거리를 걸었어. 그러던 도중에 동네 꼬마가 다가와서는 웃으며 말을 걸었어.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추고 얼굴을 내려 가까이 하니 돈을 달라고 했어. 이미 경험해본 친구한테서 들었기에 돈은 주지 않았지만 너무 당황했어. 한 명이 오니까 여러 명이 따라 다가왔어. 그래서 더 당황스럽고, 조금 무섭기까지 했어. 다행히 미안하다고 말하자 다들 돌아갔어. 이후 걸어가는 길에 몇 명의 꼬마가 더 그렇게 다가왔어. 그중에 20살 넘어 보이는 사람이 뒤에서 지나가면서 돈을 달라고 말을 해서 쳐다보기만 했더니, 쿨하게 원래 가던 길었다는 듯이 내 앞으로 길을 따라 걸어가는 거야. 정말 어이없더라. 맡겨놨나? 공항부터 오면서 수많은 고층 아파트와 친절한 청년들을 만났는데, 이건 갭이 너무 크잖아. 다만 당황 속에서 안타까운 건 신발도 신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있다는 거야. 한 명 주면 더 몰려든다는 친구의 충고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주지 않았지만 너무나 복잡한 마음이었어. '참, 이 나라도 여러모로 할 일이 많고 복잡하구나' 싶었어.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생각들을 하면서 한밤중이 되어서야 드디어 게하에 도착했어.
게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장님이 한국말을 하는 거야. 뭐지? 앞의 당황스러움보다 더 당황했어. 사장님이 내 이름을 말하자 맞다고 대답했어. 오늘 내가 마지막 여행객이었어. 이렇게나 오래 걸릴 줄 몰랐어. 저녁쯤 도착해 광장 앞에 산책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열린 가게가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어. 예약한 4인 도미토리에는 한국인만 있었어. 인사를 하고 이곳에 대해 들을 수 있었지. 한국의 TV에 나올 만큼 유명한 곳 이래. 사장님이 한국말을 아주 유창하게 하시고 여러 가지 일들을 잘 해결해 주신다고 했어.
다들 오늘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내일 같이 여행하기로 했어. 갓 전역해서 함께 여행 온 친구 두 명, 어학연수 끝나고 장기간 여행 중인 한 명이었는데, 다들 명문대에 똑똑하고 영어도 잘해서 졸졸 쫓아다니기만 하면 될 거 같았어. 나이만 많은 난 아까 경찰대 학생처럼 헤맬 때만 나서면 되지. 괜히 나대지 말고. 어차피 이 근처를 걸어 다닐 계획밖에 없는 걸. 씻고 이야기하다 보니 자정이 되어버렸어. 내일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이자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던, 천오백 년의 수도를 걸어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며 잠이 들었어.
본래의 계획은 이틀을 한편으로 하려고 했으나 분량이 너무 길어져 프라하 때처럼 나누었어요. 저처럼 비행기, 버스, 푸니쿨라, 트램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이동하시는 분이 많을 거 같아서요. 아직 다녀오지 않으신 분은 미리 알아두고 가지 않으시면 피곤한 상황에서는 몸보다 마음이 불편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TMI로 전해드린다면 예상이 가능한 상황에 덜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 자세히 적어봤어요. 그런데 재미가 있을지. 거기다 사진도 없으니 충분히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휴대폰 사진이라도 찍어야 했나 싶은데, 워낙 사진을 잘 안 찍는 여행 타입이기도 하지만 짐을 메고 끌고 있는 상황에 혼자 몸으로 길거리에서 휴대폰을 꺼내는 건 한국과 달리 상당히 위험한 일이에요. 캐리어를 놓고 소매치기를 쫓아가다 다른 소매치기에 캐리어가 도둑맞는다는 충고를 여러 번 들었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조심.
그렇게 말해도 글을 위해서는 조금 아쉽기도 하네요. 다만 작은 부탁이 있어요. 제가 글에 위치명을 남겨두었어요. 글을 따라 구글맵의 거리뷰를 보는 건 어떨까요? (중앙역 - 프라하 공항 - 사비아 괵첸 공항 - 탁심 광장 - 탁심 광장 지하도로 - 탁심 광장 푸니쿨라 역 - 카바타쉬 역 - 귤하네 역) 그러면 조금 도움이 되실 거 같아요.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 중간에 위치한 만큼 다양한 모습이 있는 거 같아요. 다음 편부터 이스탄불 여행 시작합니다~